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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멀어질라”… 日, 백신 접종률 높이기 위한 ‘전시체제’ 돌입

입력 | 2021-05-27 03:00:00

[글로벌 현장을 가다]




일본 도쿄 지요다구 정부 합동청사 3호관에 설치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규모 접종센터에 65세 이상 고령자들이 입장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자위대까지 투입해 도쿄와 오사카에 대규모 접종센터를 한 곳씩 만들었다. 아사히신문 제공

박형준 도쿄 특파원

《24일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간다 지하철역. 개찰구를 빠져나오자마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접종 장소를 가리키는 붉은색 화살표가 보였다. 10여 분 걸어 정부 합동청사 3호관에 도착했다. 일본 정부가 이날 가동하기 시작한 대규모 코로나19 백신 접종센터가 있는 곳이다. 접종을 기다리는 시민들, 취재진, 건물 안팎에 포진한 안내 도우미 등으로 북적였다.》



이날 국제 통계 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 기준 일본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5.2%다. 이스라엘(62.9%), 영국(56.1%), 미국(49.0%), 독일(40.3%) 등보다 훨씬 낮다. 미국 중국에 이은 세계 3위 경제대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 회원국 중 최하위 백신 접종률을 기록하자 주요 언론은 ‘백신 패전’이라는 표현까지 써 가며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정권의 방역 정책을 연일 질타하고 있다.

코너에 몰린 스가 정권은 자위대 의료진까지 투입해 도쿄 한복판에 하루 1만 명의 접종이 가능한 대규모 접종장을 마련했다. 자위대가 정부의 방역정책에 동원된 것도 사상 처음이다. 스가 정권이 백신 접종률 증가를 전시(戰時) 상황에 맞먹는 중대한 과제로 보고 있다는 의미다. 일본은 왜 ‘백신 접종 후진국’이 됐을까.


국내 임상시험에 집착한 후생성

지난해 12월 기준 일본은 미국 화이자와 모더나, 영국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총 2억9000만 회분 확보했다. 1억2000만 전체 인구가 두 번 이상 맞을 분량이다. 당시만 해도 이 정도 분량의 대규모 백신을 선제적으로 확보한 나라는 많지 않았다.

문제는 일본이 이 백신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했다는 데 있다. 주무 부처인 후생노동성이 미 식품의약국(FDA), 영국 국가건강서비스(NHS) 등에 비해 백신 사용 승인을 지나치게 늦게 내렸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의 보건당국은 속전속결로 백신 사용 승인을 내리고 지난해 12월부터 공격적으로 접종한 반면 화이자의 일본 내 승인에는 석 달이 걸렸다.

화이자는 지난해 12월 18일 일본에 승인 신청을 했다. 해외 임상시험 실적이 충분하면 자국 임상시험 결과가 없어도 백신을 승인하는 국가가 많지만 일본은 반드시 국내 임상시험을 거치도록 했다. 후생노동성은 일본인 160명의 임상시험 결과가 나온 올해 2월 14일에야 화이자 백신을 승인했다. 이미 이스라엘의 접종률이 30%를 넘고 미국과 영국도 10%를 넘은 시점이었다.

후생성이 ‘신속’보다 ‘안전’에 방점을 찍으면서 일본의 백신 접종률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대폭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모더나와 아스트라제네카 역시 일본 내 임상시험을 거쳐야 했다. 두 회사 모두 이달 21일 승인을 받았다.


접종 총괄 사령탑 부재

일본의 백신 접종은 중앙정부가 백신 확보 및 배송을 책임지고 1741개 지방자치단체가 실제 접종을 맡는 식으로 이뤄진다. 접종에는 초저온 냉장고 등 백신 보관시설이 필요하므로 중앙정부는 일단 확보한 백신을 각 지역 대형병원에 상자째 배송했다. 이를 각 지자체가 소량으로 나눈 후 관할 병원에 다시 보내주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정확한 지침이 전달되고 원활한 공조가 이뤄지지 못해 지역별로 접종률이 천차만별이다.

후생노동성은 백신 배송 관리체계 ‘브이시스’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각 지자체가 지역 내 동네 병원으로 배송한 백신의 현황까지는 상세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모두 정확한 백신 재고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배송을 총괄하는 사령탑이 없는 게 문제”라고 질타했다.

이중, 삼중 예약이 가능하다는 것도 문제다. 일본의 백신 접종은 △동네 병원 △지자체가 설치한 집단접종 장소 △중앙정부가 설치한 대규모 접종센터 3곳에서 가능하다. 현재 동네 병원에 예약한 사람이 집단접종 장소와 대규모 접종센터에도 별도 예약이 가능하다. 3곳 모두 예약한 국민이 1곳에만 나타나면 나머지 2곳의 백신은 버려질 가능성이 크다.

상당수 지자체가 ‘선착순’ 접수를 택한 점도 비판받고 있다. 아침부터 기다려도 접종을 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는 불만이 전국 곳곳에서 속출하고 있다. 인터넷과 전화를 통한 ‘예약제’를 택한 곳도 한꺼번에 워낙 많은 사람이 몰리다 보니 온라인 예약이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와중에 집권 자민당의 사토 쓰토무(佐藤勉) 총무회장은 25일 국회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면 입법 기능이 마비된다며 국회의원에 대한 코로나19 백신 우선 접종을 주장했다. 마이치니신문 등에 따르면 그는 “중요한 논의를 하는 국회의원이 백신을 맞지 않는 것은 위기관리의 문제”라며 여론이 무서워 국회의원의 우선 접종을 실시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연립 여당인 공명당에서조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백신을 빨리 맞고 싶어하는데 국회의원만 힘들이지 않고 먼저 맞는다면 ‘의원은 상급 국민이냐’는 국민 분노를 부를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의료진 부족도 심각

의료진 부족 또한 심각하다. 최근 스가 정권은 각 지자체에 7월 말까지 65세 고령자 접종을 마치라고 지시했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도쿄 인근 요코하마시는 시내 33곳에 집단접종센터를 설치했고 의사 약 800명을 확보했다. 시 보건당국 관계자는 23일 요미우리신문에 “7월 말까지 고령자 접종을 마치려면 현 수준의 의료진으로는 불가능하다”며 “의사를 구할 수 없다”고 난색을 표했다.

요미우리신문이 집단접종센터를 설치한 71개 지자체에 설문을 했더니 약 30%인 19개 지자체가 ‘의사 부족’, ‘(의사 확보 전망이 서지 않아) 필요한 인원 수를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중앙정부는 의료법상 의사와 간호사만 주사를 놓을 수 있다는 방침을 개정해 지난달부터 치과의사도 주사를 놓을 수 있도록 했다. 이달 25일에는 소방서에서 일하는 긴급구조대원, 병원의 임상 검사원이 주사를 놓는 것도 허용했다. 이에 따라 이달 17일 일본의 일일 백신 접종 건수는 최초로 50만 건을 넘겼다.

7월 23일 개막하는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명운을 걸고 있는 스가 정권은 조만간 반드시 ‘하루 100만 명 접종’을 이뤄내겠다는 뜻을 거듭 피력하고 있다. 스가 총리의 승부수가 맞아떨어질지는 곧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뒤늦게나마 백신 접종 속도를 드라마틱하게 높일 수도 있고, 현실을 도외시한 무리한 지시로 일본 전체의 의료 과부하만 높아질 수도 있다. 후자가 나타난다면 도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는 물론이고 스가 총리의 임기에도 상당한 악영향을 줄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