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 “빈산서 네 이름 부르니 비록 이승과 저승 달라도 들을 수 있기를”

입력 | 2021-05-27 03:00:00

[한시를 영화로 읊다]〈17〉아들의 무덤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 어머니는 큰아들의 무덤에서 “자식 묘를 찾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 나쁜 짓 한 것도 없는데”라고 말한다. 영화사 진진 제공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걸어도 걸어도’(2008년)엔 자식들이 찾아와도 살가운 말 한마디 없는 권위적인 아버지가 나온다. 가족은 함께 왁자지껄 즐겁지만 아버지의 모습엔 어딘가 쓸쓸함이 배어난다. 영화가 진행되면서 가족이 모인 이유가 드러난다. 그날은 죽은 큰아들의 기일이었다. 세상을 뜬 뒤 한참이 지났건만 아버지는 여전히 그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명말청초의 대학자 황종희(黃宗羲·1610∼1695)도 마찬가지였다.



아수(阿壽)는 황종희의 넷째 아들로 그의 각별한 사랑을 받았다. 아버지는 어린 아들과 한 밥상에서 먹고 같은 침상에서 자며 외출할 때도 꼭 손을 잡고 다녔다. 격변의 시대 속 고뇌하던 아버지에게 아수는 늘 위안이 되었다(‘亡兒阿壽壙志’). 그런 아들의 요절은 시인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극도의 비통함 속에서 황종희는 아들을 애도하는 20수가 넘는 시를 썼다. 아들을 묻는 날 아버지는 “하늘 어두워져 난 돌아가려는데, 달빛 어둑하건만 넌 누구와 함께 하려니(天昏吾自去, 月暗汝誰群)?”(‘至化安山送壽兒’)라고 읊었다. 한 해가 지난 뒤 다시 찾은 무덤 앞에서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불러보지만 슬픔은 여전히 마음에 사무친다.

난니 모레티 감독의 영화 ‘아들의 방’(2001년)에서도 아버지는 갑작스러운 아들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과의 약속을 어긴 탓에 아들이 사고를 당했다고 자책한다. 아버지는 괴로움을 잊기 위해 운동을 하고 큰 소리로 음악을 들어보지만, 이 시처럼 아들과의 추억들만 자꾸 떠오른다. 죽음은 하느님의 섭리이니 받아들이라는 신부의 강론에 분노하기까지 한다. 그는 훌륭한 정신건강의학과 의사였지만 정작 자신의 트라우마를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한다. 아버지는 “그날 아침 약속대로 아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면”이란 생각을 반복하지만 아들의 죽음은 결코 되돌릴 수 없다.

우리 사회 도처에서 자식 잃은 부모의 슬픔을 목도한다. 영화 ‘걸어도 걸어도’에서 어머니는 아들의 무덤을 참배하며 “자식 묘를 찾는 것만큼 힘든 일이 있을까?”라고 말한다. 가슴에 묻는다는 말로도 창자가 끊어지는 고통이란 말로도 그 슬픔을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자식 잃은 부모들께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