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작은 차이가 스타일을 완성하는 법이다. 올여름 가장 집중해야 할 아이템으로 꼽는 반바지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어떤 반바지를 선택해야 세련된 여름을 맞을 수 있을까. 핵심은 길이에 있다. 1인치 길이 차이가 신선함과 구태의연함을 가른다.
오랜 집콕생활로 편안함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만연해졌다. 익숙해진 재택근무로 근무복의 경계도 흐려진 상황이다. 시원한 여름을 보장하는 반바지는 그 어느 때보다 남녀 모두에게 필수가 됐다. 지난해 여름, 반바지 부흥의 신호탄을 쏘아 올린 와이드 버뮤다 팬츠는 자칫 다리가 짧아보일 수 있어 스타일링이 까다로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올여름의 무릎 위 껑충 짧아진 쇼트 팬츠는 다리는 길어 보이도록 하고 체형상의 단점까지 보완해줘 보다 쉽게 멋과 상쾌함을 누릴 수 있도록 한다.
메종키츠네 칠랙스 폭스 스윔 쇼트. 각 사 제공
짧아진 반바지의 인기는 남성복에서 두드러진다. 보통 반바지의 길이는 바짓가랑이 시접이 만나는 지점부터 밑단까지의 인심(inseam) 길이를 인치(inch)로 표기하는데, 올해는 범용적인 7인치 반바지보다 5인치의 짧은 반바지를 더욱 선호하는 분위기다. 러닝 쇼츠를 비롯한 스포츠 쇼츠가 대중화됨에 따라, 일상복으로 입는 반바지 길이도 덩달아 짧아진 것이다.
허리에 고무밴드를 적용한 속건 소재의 스윔 팬츠는 일상복으로도 활용도가 높다. 파타고니아의 ‘배기스’, 랄프로렌의 ‘프렙스터’ 등 브랜드의 인기 아이템들은 이미 제품명까지 익숙하게 불리고 있다. 여유있는 핏의 쇼츠와 어울리도록 한 치수 큰 피케 티셔츠나 컬러풀한 라운드넥 티셔츠를 선택하고 한껏 끌어올린 스포츠 양말과 스니커즈를 매치하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활동적이고 청량한 시티보이 룩을 완성할 수도 있다.
생각보다 길어진 여름 덕분에 반바지 패션을 선보일 수 있는 기간도 꽤 늘어났다. 여름철 냉방을 고려한다면 루스한 핏의 긴팔 티셔츠를 짧은 쇼트 팬츠와 매치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그레이와 블랙 등 무채색 계열의 컬러로 긴팔 티셔츠에 선선한 기분을 더할 수도 있다. 티셔츠 대신 리넨 셔츠와 코디하면 셔츠의 단정함으로 캐주얼함은 덜고, 한층 업그레이드된 스타일링 감각을 뽐낼 수도 있다. 프레피 룩에서 주로 연출됐던 카디건을 어깨에 두르는 센스도 반바지 패션에는 과하지 않다.
지난해 여름 큰 반향을 불러왔던 사이클 쇼츠 대신, 올해 여성복에서는 재킷과 세트로 제안되는 쇼츠 슈트 패션이 큰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된다. 테일러드 재킷과 함께 입는 쇼트 팬츠로 편안함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반바지 패션에 격을 더했다고나 할까. 여유를 위한 허리선의 터크(tuck) 디테일과 포멀 슬랙스처럼 밑단을 접어 올린 리넨 소재의 쇼트 팬츠는 동일 소재의 릴랙스 핏 재킷과 함께 매치돼 시원하면서도 매너 있는 여름 스타일링을 선보인다. 로퍼나 힐보다는 가죽 소재를 엮은 듯한 피셔맨 샌들이나 레이스업 샌들과 매치해볼 것을 추천한다.
보다 여유 있는 플레어 핏 쇼트 팬츠도 시원한 여름에 어울린다. 꾸준한 워크웨어 트렌드를 반영해 카고 팬츠를 잘라낸 듯한 아웃포켓 디테일의 플레어 쇼츠도 스타일리시하다. 성글게 짜인 니트 스웨터와 매치하면 내추럴한 멋을 연출할 수 있다. 셔츠에 주로 쓰이는 셔팅 스트라이프 소재로 오버핏 셔츠와 트렁크 팬츠를 세트로 구성하거나, 맨투맨과 저지 쇼츠 셋업 등의 아이디어도 집콕 패션에서 유래된 익숙하면서도 낯선 제안이다.
패션은 익숙하지 않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편안해지고 익숙해지는 일련의 과정이 반복되는 것이 아닐까 한다. 뜨겁게 거리를 달구며 급부상한 핫 아이템이 누구나 즐겨 입는 스타일로 안착하는 순간, 너무도 당연하게 여겨졌던 패션이 구태의연하게 느껴진다. 동시에 유행이 지나 한동안 옷장 속에서 잠자던 아이템들이 낯선 매력을 뽐내며 새로움을 찾는 패션피플에게 수용된다. 이런 익숙함과 낯섦 사이의 반복은 트렌드라는 이름으로 패션 변화의 원동력이 돼 왔다.
아직은 조금 낯설지만 짧은 반바지를 과감하게 선택해보자. 경쾌하고 시원한 스타일이 기분마저 상쾌하게 만들어줄지 모른다. 멋스러움은 불과 반바지 길이 1인치로 완성되는 것임을 잊지 말자.
임지연 삼성패션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