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여성 장피에르 수석대변인 성소수자 최초 백악관 회견 주재… 바이든 정부서 새로운 역사 써 진보단체 거쳐 정치평론가 활동… 사키 대변인 후임으로도 물망
카린 장피에르 미국 백악관 수석부대변인이 26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받고 있다. 워싱턴=AP 뉴시스
흑인이면서 동성애자이고 이민자이기도 한 여성이 26일 미국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공식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주인공은 카린 장피에르 백악관 수석부대변인(44). 동성애자임을 스스로 밝힌 여성으로서는 미국 사상 최초의 백악관 브리핑이다. 흑인 여성으로는 1991년 조지 부시 대통령 당시 백악관 부대변인이었던 주디 스미스 이후 30년 만에 처음이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장피에르 부대변인은 이날 기자들이 ‘역사적 브리핑’이라며 소감을 묻자 “이 연단에 서는 건 나 한 사람에 관련된 것이 아니라 미국 국민을 대신한다는 뜻”이라며 “정말로 영광스럽고, 이 (브리핑의) 역사적인 성격에 감사한다”고 답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소수자의) 대표성을 중시한다”고도 했다. 자신의 브리핑은 미국의 소수자를 대표하는 성격이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트위터에 “오늘은 백악관과 대변인실에 중요한 날”이라고 썼다. 비백인 여성, 성소수자, 아메리칸 원주민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인물들을 등용해 ‘무지개 내각’으로 불리는 바이든 행정부가 또 하나의 역사를 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부모는 아이티 출신으로 프랑수아 뒤발리에의 독재를 피해 서인도제도 마르티니크로 이주한 뒤 그곳에서 장피에르를 낳았다. 장피에르가 5세 무렵 미국 뉴욕의 퀸스로 이민했고, 아버지는 택시운전사로 어머니는 가정 요양 도우미로 일하며 장피에르와 동생 2명을 키웠다.
바이든 백악관에 합류한 것은 지난해 대선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 후보의 수석보좌관으로 일한 것이 계기가 됐다. 정계 입문은 뉴욕에서였다. 데이비드 딩킨스 전 뉴욕 시장이 멘토였다고 한다. 뉴욕대 공대를 졸업하고 컬럼비아대에서 공공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무브온의 홍보책임자, 정치평론가로 활동했다. 2008년과 2012년에는 버락 오바마 대선 캠프에서 뛰었다. 그는 대학 시절 부모의 기대에 버거움을 느껴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한 적이 있다. 자신의 성공을 실력이 아닌 운이 좋아서라고 믿는 이른바 ‘가면 증후근’에 시달린 적도 있다고 한다.
장피에르는 그동안 대통령 전용기 에어포스원에서 소수의 동행취재단을 상대로 종종 브리핑을 한 적은 있지만 백악관 브리핑룸에서는 사키 대변인이 기자들을 상대하는 동안 배석만 했을 뿐이었다. 26일 장피에르 수석부대변인은 52분간 코로나19 기원 논란에 관한 바이든 대통령의 조사 지시, 캘리포니아주 총기 난사 사건 등에 관해 기자들과 문답을 주고받았다. 백악관 기자단은 이날 브리핑을 일종의 오디션으로 받아들였다. 사키 대변인은 1년쯤 뒤 자리를 내놓을 것이라고 밝힌 상태인데 그가 후임자 중 한 명으로 거론되기 때문이다. 장피에르는 브리핑룸 문이 열리기 전에 긴장을 풀기 위해 사키 대변인과 함께 종종 가볍게 춤을 추기도 한다고 NYT는 전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