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
그렇게 보릿고개를 넘듯 1년 가까운 시간을 어렵게 버티고 나니, 더 이상 뉴스에서 신종플루에 대한 소식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관객들은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물러설 수 없었고 제작자로서 특단의 조치를 내려야 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중소기업 대표들에게 손 편지를 보내는 것이었다. 내가 제작한 뮤지컬은 직장인들이 보면 좋은 내용이었고, 직장인들이 단체관람을 와준다면 그동안의 손해를 복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서울 경기지역에 있는 직원 100명 이상의 회사 200곳을 골라 그 회사 홈페이지를 보며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지 파악하고 대표님께 손 편지를 보냈다. ‘귀사의 발전을 바라고, 직원들의 여가 활동과 사기 충전을 위해 술자리 회식 대신 뮤지컬을 보는 회식으로 진행하면 좋겠다’는 내용과 파격적인 할인가로 모시겠다는 내용을 적은 편지지와 일단 대표님이나 관련 부서 직원이 어떤 내용인지 먼저 보고 결정하시라고 초대권 2장을 넣어 보내드렸다. 회사도 파악해야 하고, 대표님 인상도 한번 보고 편지를 쓰다 보니 하루에 스무 장 쓰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보름 동안 매일매일 간절한 마음으로 편지를 보내고, 회사에서 단체관람 연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정확히 100일을 기다렸는데 결국 기업으로 보낸 초대권 두 장만 돌아오고 단체관람은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텅 빈 극장에 혼자 앉아 있는데, 좌절 같은 것이 온몸에서 뚝뚝 떨어졌다. 모두에게 외면받은 것 같고, 왠지 내 생각이 모두 틀린 것 같고, 중요한 경기에서 1점도 못 내고 진 것 같은 기분.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데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내 모습이 유리창에 비쳤다. 쓰러지지 않으려고 버스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데, 내가 버스 손잡이를 잡은 게 아니라 버스 손잡이가 절대 쓰러지지 말고 힘내라고, 내 손을 잡아주는 것 같았다.
이재국 방송작가 겸 콘텐츠 기획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