趙 “권한 한정된 총장 직무대행이 결론 내리기보단 후임이 처리해야”
대전지검 기소 보고에 반대 공문… 실질적 총장노릇 하다 결정은 미뤄
檢내부 “직무유기-직권남용 소지”… 새 총장 취임후 대대적 인사땐
수사팀 해체 사건 흐지부지 가능성… 이광철도 기소 여부 결론 미뤄
조남관 대검찰청 차장검사(검찰총장 직무대행)가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의혹’의 핵심 인물을 기소하겠다는 대전지검의 보고에 대해 “차기 검찰총장과 기소 여부를 다시 논의하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검찰 고위간부 인사와 직제 개편을 앞둔 시점에 조 차장검사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에 대한 기소를 명시적으로 거부한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들에 대한 기소 결정이 미뤄지는 가운데 새 검찰총장 취임 후 인사가 단행돼 수사팀이 해체될 경우 원전 사건 수사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백운규-채희봉 기소, 새 총장 오면 해라” 공문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 차장검사는 ‘월성 원전’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에 “원전 사건이라는 중요 현안에 대해 권한이 한정된 총장 직무대행이 결론을 내리기보다 후임 검찰총장이 와서 사건을 처리하는 게 맞다”는 취지의 공문을 발송했다. 사건 지휘에 관여하는 신성식 대검 반부패강력부장도 기소 찬성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대전지검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압력을 가한 혐의(직권남용) 등으로 채 전 비서관, 백 전 장관,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 등을 기소하겠다는 뜻을 지난달 말부터 대검에 보고해 왔다. 이 3명을 기소하는 선에서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을 일단락 지을 방침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조 차장검사가 차기 총장 후보로 추천되는 등 총장 인선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대검 등에서 기소에 유보적인 기류가 감지됐다. 채 전 비서관이 기소가 적절한지 판단해 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개최를 신청하자 대검에서 “처분을 미루자”는 의견도 나왔다.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대전지검 검찰시민위원회가 7일 채 전 비서관의 신청을 기각한 뒤에도 대검은 기소 승인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다. 결국 대전지검이 대검에 공문을 보내 백 전 장관 등에 대한 기소 여부를 거론하자, 조 차장검사가 공문으로 입장을 회신한 것으로 보인다.
조 차장검사로선 새 총장 취임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직무대행 신분으로 여권 고위 인사들을 대거 기소하는 건 부담이 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노무현 정부 특별감찰반장 출신으로 여권과의 접촉면이 넓은 조 차장검사가 기소에 따른 후폭풍과 책임을 혼자 짊어지기는 부담스럽다는 뜻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검찰청법상 총장 직무대행이자 최고 의사결정권자인 조 차장검사가 결정을 미루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조 차장검사는 여권의 중대범죄수사청 입법 등과 관련해 고검장 회의를 소집했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 땅 투기 사태 때 전국 검사장 화상회의를 진행하는 등 검찰 수장의 역할을 해왔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검찰 내부에선 “차라리 불기소 지휘를 내리는 건 몰라도 ‘나는 지휘를 안 할 테니 대전지검도 사건을 처리하지 말라’는 취지로 지휘하는 것은 직무유기 또는 직권남용의 소지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 새 총장 취임 후 대대적 인사… 수사팀 해체 우려
대검이 월성 원전 사건 관련자 기소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않을 경우 향후 정상적인 사건 처분이 어려워질 수 있다. 수사 초기부터 대전지검으로부터 진행 상황을 보고받은 조 차장검사와 달리 김오수 검찰총장 후보자는 추후 총장으로 취임하면 원점에서 새로 보고를 받아야 한다. 또 새 총장 취임 직후 검사장급 및 중간간부 인사가 단행되면서 이두봉 대전지검장과 이상현 대전지검 형사5부장 등 수사팀이 공중분해될 수도 있다.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수원지검 수사팀(팀장 이정섭 부장검사)도 출금 과정에 개입한 이광철 대통령민정비서관을 기소해야 한다고 대검에 보고했지만 아직 기소 여부에 대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김 후보자는 김 전 차관 사건 관련자로 조사를 받고 있어 “김 전 차관 사건 수사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밝힌 상태다. 수사팀은 새 총장 취임 전 이 비서관을 기소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대검의 결정이 계속 지연되고 후속 인사로 수사팀이 교체될 경우 이 비서관 기소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황성호 hsh0330@donga.com·고도예·장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