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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채는 산림 ‘치아교정’… 산림에도 ‘수확’ 접목을

입력 | 2021-05-29 03:00:00

[숲에서 답(答)을 찾다- 시즌2]〈1〉산림자원 선순환 고리를 잇다



강원 횡성에 있는 태기산. 산림청과 횡성군, 산주들의 숲가꾸기 사업으로 가꾸기 이전 숲(위쪽 사진)은 잡목이 우거져 있지만 간벌 등 숲 가꾸기 이후(아래쪽 사진)의 모습은 햇빛과 통풍 등 나무생장에 필요한 최적의 환경조건을 갖춰가고 있다. 산림청 제공


《나무는 모든 것을 내어 준다. 굶주릴 땐 껍데기와 열매를, 추울 땐 제 몸통까지 아낌없이 불태웠다. 사람들이 힘들어하면 몸과 마음의 위안을 주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았다. 최근 전 세계가 기후 위기에 빠졌다. 나무와 숲은 문제를 해결할 대안으로 꼽힌다. 지난해에 이어 나무와 숲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숲에서 답(答)을 찾다-시즌2’를 연재한다.》





경기 고양시 일산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이모 씨(30). 대학에서 나무 공예를 공부한 이 씨는 전공을 살려 지금도 나무를 다루고 공예품을 파는 일을 한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이름을 알리면서 그에게 목공을 배우려는 수강생도 꽤 많이 늘었다.

이 씨는 얼마 전 주문을 받고도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일이 있었다. 국내에서 나는 팽나무로 길이 210cm, 폭 90cm 크기의 원목 테이블을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었는데, 나무를 제때 구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목재를 구하기 힘들어 납품 일정을 도저히 맞출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강원 홍천군에 사는 A 씨도 황당한 일을 겪었다. 할아버지 때부터 심고 가꿔온 50년 된 잣나무를 허가까지 받고 벌채를 했지만 언론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3년 전부터 조금씩 나무를 베어내고 그 자리에 어린 나무를 심었는데 ‘무분별한 벌채’라며 혼쭐이 난 것이다. A 씨는 “소나무재선충에 감염되면 한 그루도 건질 수 없다. 벌채 시기도 됐고 나무를 심고 기르는 이유가 수확인데 죄인 취급을 받았다”며 억울해했다. 그는 또 “내가 한 일이 너무 큰 ‘죄’라고 하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한 임업 후계자는 벌채를 치아 교정에 빗댔다. “비뚤비뚤한 치아를 고르게 하는 시술을 받으면 끝날 때까지 보통 2년 걸린다. 보기에 안 좋고 불편하지만 그 시기를 잘 넘기면 더 건강하고 예쁜 치아를 갖게 된다. 벌채도 그런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호소했다.

○목재 자급률 OECD 국가 중 ‘꼴찌’ 수준

우리나라 국산 목재 자급률은 16% 수준이다. 나머지는 모두 수입에 의존한다. 최근에는 미국 주택 사정이 좋아지면서 나무 수입이 더 힘들어졌다. 가격도 크게 올랐다.

국내에서 나는 나무 사용을 늘리고 맑은 공기를 얻기 위해서라도 목재 수확을 늘리는 게 맞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 1970, 80년대 애써 심고 가꾼 나무들이 지금은 산을 풍성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공기를 맑게 하는 나무들의 능력(탄소 흡수 능력)은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 나무를 베고 다시 심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나무를 베는 것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산림과학원 B 씨(임학박사)는 “목재를 ‘탄소통조림’이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며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과정에서 탄소를 저장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B 씨는 최근 목재 논란과 관련해서도 “종이, 펄프 등은 보통 2년 안에 저장하고 있던 탄소의 절반을 뱉어내지만, 목조 건축물은 절반 정도를 내보내는 데 35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국제 사회에서도 수확된 목제품(HWP·Harvested Wood Products)이 온실가스를 줄이는 데 효과가 있다고 여긴다. 2011년 11월 남아공 더반에서 열린 제17차 기후변화협약 총회에서는 ‘국내 산림에서 수확한 원목으로 가공된 HWP’만을 탄소 저장량으로 인정하고 있다. 나무를 베어 목재 건축물을 짓거나 이를 활용할 경우 탄소 흡수로 본다는 것이다. 국내에서 생산된 나무가 목재로 활용될 경우에만 탄소 감소를 인정한다는 게 국제적인 약속이다.

프랑스는 신축 공공건축물의 절반 이상을 아예 목재 등 친환경 소재를 사용하도록 하는 법안을 준비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목재 생산을 위한 벌채는 산에 심어 놓은 나무의 0.5%에 불과하다. △핀란드 3.6% △덴마크 2.9% △독일 2.6% △영국 2.0% △미국 1.0% △일본 0.9%보다 훨씬 적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29개 나라 중에 27위에 머물고 있다.

○산림경영, 건전한 시각으로 인식돼야

산림청은 산림순환경영이란 ‘조림-풀베기-가지치기-솎아베기-수확-조림’ 같은 과정을 되풀이하는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전체 산림 630만 ha 중 234만 ha의 경제림에서만 목재 수확이 제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미라 산림청 산림정책국장은 “전 세계는 산림 관리를 매우 중요한 것으로 생각한다”며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나무를 많이 쓰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나무를 키우는 임업인들도 나무를 기르는 최종 목적을 ‘수확’으로 보고 있다. 한 임업인은 “우리는 나무 수확을 위해 나무를 심었다. 하지만 숲속에 들어가면 답답하고 수확도 못 한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새로운 임업 기계를 개발하고, 임도를 확충하는 등 제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허가받은 벌채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줄이기 위해서다.

산림청은 최근 3년간 벌채 허가를 받은 벌채지 중 5ha 이상인 2146곳(2만4812ha)에서 목재 수확 관련 규정을 잘 지키고 있는지와 친환경 벌채 이행 실태를 확인할 예정이다.

최병암 산림청장은 “산림의 탄소 흡수 능력을 높이고 목재와 바이오매스 등 목재 부산물을 친환경적으로 사용해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하겠다”며 “앞으로 나무를 베는 제도와 탄소중립을 비롯한 산림전략 등에 대해서는 임업인, 환경 전문가 등 각계 관계자들로 협의체를 구성해 국민 공감대를 형성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최종안을 9월까지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이기진 기자 doyo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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