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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향기]나무는 역사를 몸에 새긴다, 전례없는 기후변화까지도

입력 | 2021-05-29 03:00:00

◇나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발레리 트루에 지음·조은영 옮김/340쪽·1만8000원·부키




나무는 나이테에 추위, 가뭄 등 자신의 ‘불만 사항’을 기록한다. 세대마다 패턴을 비교해 작성한 나이테 데이터베이스는 지역에 따라 1만 년을 훌쩍 넘는다. 나무의 행복과 불행은 인간의 융성, 쇠락과 함께했다. 사진 출처 픽사베이

‘나무도 나무도 나이를 먹는다/우리들처럼 나이를 먹는다/아무도 모르는 나무들 나이/나무만 아는 동그란 나이.’(강소천 작사·박흥수 작곡 ‘나무’)

나무는 자신의 연대기를 몸에 적는다. 나이 들면서 갖추는 깊이를 상징하는 연륜(年輪). 곧 ‘나이테’다. 나이테는 알아도 ‘연륜연대학(年代學)’은 다소 생소하다. 저자는 생태학, 기후학, 인류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과 환경의 상호작용을 밝히는 이 학문의 면모와 중요성을 한 권에 요약한다. 세계 첫 연륜연대학 연구소인 미국 애리조나대 나이테 연구소 교수로 70편 이상의 관련 논문을 발표한 전문성이 바탕이다.

나무가 나이테에 기록하는 것은 자신의 ‘불만’이다. 물이 모자라는 곳에서는 비의 양에 따라, 물이 충분한 곳에서는 기온에 따라 매년 그 두께가 결정된다. 산불 같은 재난을 겪었을 때도 나이테는 좁아진다. 좋은 해와 나쁜 해가 이어지면서 모스부호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북아메리카에는 5000살 넘는 나무도 많지만 유럽은 나이 많은 나무도 1000살 안팎이다. 그럼에도 1만 년 넘는 데이터베이스가 구축되어 있다. 오래전 벌목돼 건물이나 가구가 된 나무들, 강바닥에 묻혀 썩지 않은 나무들의 패턴을 살아있는 나무들과 비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축적된 데이터는 지구와 인류의 역사에 대해 수많은 사실들을 전해준다. 벌목돼 집이나 다리, 우물이 된 나무들의 나이테를 들여다보면 가장 오래된 게 기원전 약 6000년이며 이후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을 알 수 있다. 농경이 확산돼 인간이 정착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서기 250년 이후 유럽 나무들의 나이테는 150년 년 넘게 추운 기후가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로마제국의 국력은 쇠퇴했고 생존의 위기에 몰린 게르만족은 대이동을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벌목된 나무의 숫자도 크게 줄어든다. 문명 활동 자체가 서리를 맞았기 때문이다.

미국 플로리다 숲의 나무들이 덜 성장한 1645∼1715년은 카리브해에서 침몰한 목선의 수도 적었다. 그렇지만 이때는 해적선의 전성기로 기록됐다. 태양 흑점이 줄어 기온이 내려갔고 허리케인 발생이 줄어 침몰선 숫자가 감소한 것이다.

이런 역사들의 증인인 나이테에는 다른 증인들도 함께한다. 남극에는 빙하층이, 바다에서는 산호나 조개, 물고기의 귀 뼈에 새겨진 생장띠가 저마다의 연대기를 기록해 나이테 연구를 보완한다. 잘 알려진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도 나이테 데이터와의 비교를 통해 정확한 값으로 보정할 수 있다.

예상대로 저자의 관심은 결국 지구 온난화로 향한다. 서기 1000년 이후의 기온을 나이테로 재구성한 결과는 최근의 지구 온난화가 전례 없음을 명백히 보여준다. 후대 인류는 나이테 기록과 우리의 대응을 비교하며 어떻게 평가할까. 평생 나무에 몰두해 온 저자에게 한 가지는 확실하다. “기후 문제는 나무를 많이 심는 정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