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자리 만들기 실패가 4·7 재보선 참패 주요인
● 소득주도성장은 ‘마차가 말을 끌라는 것’
● 최저임금밖에 못 주는 사람은 ‘가진 사람’ 아냐
● 국가채무 늘면 기업이 투자할 돈 줄고 비용 높아져
● 토목공사는 완공 후엔 일자리 사라져…재정 투입 신중해야
● 재난지원금 10분의 1만 백신 확보에 썼어도 수급 상황 좋을 것
● 서민주택만 열심히 공급하면 서민 집값만 안정된다
● 고급 주택 공급 막으니 희소성 올라가 강남 집값 급등
● 돈, 땅, 사람 꽁꽁 묶어놓은 규제 풀어야 경제가 산다
[지호영 기자]
“사람이 먼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대선 때 내세운 핵심 슬로건이다. 국정 우선순위를 ‘사람’에 두겠다는 약속은 대통령 당선 이후 ‘일자리 대통령’ 행보로 이어졌다. 취임 직후 문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청와대 집무실에 ‘일자리 상황판’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대통령 직속으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했고, 경제부총리에게는 일자리 개선 대책을 주문했다. 그로부터 꼭 4년이 흘렀다. ‘일자리 대통령’ 약속은 얼마나 지켜졌을까.
노무현 정부에서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내고, 이명박 정부에서 청와대 경제수석을 지낸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은 “부동산정책 실패도 그렇지만 더 뼈아픈 것은 청와대에 일자리 상황판까지 내건 대통령이 일자리를 만드는 데 참담할 정도로 실패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 이사장을 만나 문재인 정부가 경제정책에 실패한 원인과 한국 경제 재도약을 위해 차기 정부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백신이 없을 뿐, 우리나라는 백신접종 인프라 선진국
- 문 대통령이 취임 4주년 특별연설에서 ‘백신접종에 차질이 없고 경제지표도 회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 같은 얘기에 동의하나.“현재까지 하는 것 봐서는 백신접종에 차질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다. 두고 보면 알게 되겠지만 우리나라는 접종 인프라가 아주 잘돼 있는 나라다. 문제는 백신을 지금껏 제때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문 대통령은 ‘4% 이상 성장률’을 언급하며 경제회복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성장률은 하나의 거시지표에 불과하다. 코로나 백신접종률이 높은 미국이나 중국 경제가 호전되면서 수출 대기업과 제조업 형편이 나아져 성장률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거시지표가 좋아졌다고 서민 생활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자리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고용 없는 성장’은 국민과 서민 삶에 별 도움이 안 된다. 서민에게 필요한 것은 일자리다. 그래서 문 대통령이 취임 초부터 일자리 만들기에 집중하겠다고 얘기한 것 아닌가. 그런데 가장 중요한 일자리 지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하고, 성장률 수치만 얘기하는 것은 서민이 처한 경제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4월 7일)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서 그런(여당 참패) 결과가 나온 것도 일자리 창출에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 수출이 늘고 경제성장률이 높아지면 낙수효과로 그 혜택이 서민에게도 돌아가지 않나.
“기업들이 공장을 더 짓거나 사람을 더 뽑아야 서민 삶에 의미가 있다. 그런데 지금은 이미 지어놓은 공장 가동률을 높여 수출을 더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수출이 늘면 거시지표인 성장률 상승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일자리 느는 것하고는 상관없다.”
박병원 이사장의 얘기는 기·승·전·‘일자리’로 통했다.
- 문재인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실패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라고 보나.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규제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자본가나 기업가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줘야 그 결과로 일자리가 생겨난다. 그런데 자본과 금융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는 쪽으로만 정책을 펴왔다. 꼭 현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역대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서민 금융 확대해라, 카드 수수료 깎으라’ 오죽 규제가 심했으면 시티은행이 한국에서 소매금융을 접겠다고 나오겠나. 자본에 대한 규제를 강화만 했지 풀어준 적이 없다.”
- 문재인 정부 대표 경제정책이 이른바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이란 말은 그럴싸한데, 실제로는 경기도 못 살리고 오히려 일자리만 줄였다. 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많아져야 임금이 올라간다. 그런데 소득주도성장은 임금 먼저 올려서 투자도 늘리고 일자리도 만들겠다는 발상 아닌가. 이는 마차가 말을 끌라는 것과 같은 소리다. 안 될 일을 하려다 경제를 더 꼬이게 만들었다.”
최저임금밖에 줄 수 없는 사람도 가진 사람 아냐
박 이사장은 소득주도성장이 그 자체로 한계를 갖고 있다고 했다.“이 정부가 소득주도성장을 하려 한 이유가 뭐였나. 수요가 부족해 경기가 침체돼 있으니, 없는 사람들 돈 더 줘서 돈을 더 쓰게 하자는 것 아니었나. 소비가 늘어나면 투자가 늘고, 투자가 많아지면 고용이 늘고, 다시 소비가 진작돼 소득주도로 경제를 성장시킬 수 있다는 게 이 정부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이미 확인됐다.”
- 소득주도성장이 어떤 이유로 작동하지 않았나.
“소득주도성장의 근본적인 문제는 최저임금밖에 줄 수 없는 사람도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최저임금을 올린 결과, 김밥집 사장님 주머니 털어서 김밥집 알바에게 최저임금 더 주고, 편의점 사장님 몫을 떼서 편의점 알바비 올려준 꼴이 됐다. 최저임금을 올렸더니 결과적으로 편의점 사장, 라면집 사장 소득이 줄어 그만큼 돈을 덜 썼다. 그게 소득주도성장의 함정이다.”
그는 소득주도성장이 안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최저임금을 올려 가처분소득을 늘려주겠다는 게 소득주도성장의 첫 번째 기둥이라면, 가계비 부담을 경감해 주는 게 두 번째 기둥이다. 그 대상은 교육비와 의료비, 보육비, 교통비, 통신비처럼 기초생활을 유지하는 데 들어가는 필수비용을 낮춰주는 것이다. 대학 등록금을 13년째 동결하고 의료수가를 낮게 유지하는 게 대표적인 가계비 경감 조치다. 그런데 가격으로 규제하다 보니 병원들이 정상적이고 양심적으로는 돈을 벌지 못한다. 그래서 의료 본업과 상관없는 영양제 주사 놔주면서 과잉 진료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유치원비, 보육료도 올리지 못하게 하니까 갖은 편법을 동원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가계비 부담을 줄여준다는 취지는 좋은데 가격 규제를 하니까 그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입이 늘지 않는다. 결국 제로섬게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교육이나 의료, 보육 등 서비스업 종사자들이 능력만큼 더 벌도록 해줘야 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생긴다. 그런데 가격을 통제하니 투자도 일자리도 생기지 않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의 세 번째 기둥은 사회복지 확대다. 현 정부는 국가채무를 크게 늘려 사회복지 혜택을 대폭 확대했다. 좌파냐 우파냐를 떠나 사회복지를 확대하는 것은 국가가 해야 할 책무다. 문제는 감당할 수준이냐 아니냐다. 지금은 국가채무가 엄청나게 늘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심각해질 지경에 이르렀다. 정부가 (국채 발행으로) 자본시장에서 큰돈을 먼저 가져다 재난지원금이다 뭐다 해서 무분별하게 나눠주는 바람에 기업들이 자본시장에서 조달 가능한 자본의 절대 양이 줄었다. 벌써 시중 이자율이 오르기 시작했다. 기본 금리는 (당국에서) 올리는 것이지만, 시장금리는 수요와 공급에 따라 저절로 올라가는 것이다. 정부가 해서는 안 될 사회간접자본(SOC)에 투자한다고, 결코 만들어서는 안 될 가덕도 공항 같은 것 짓겠다고 몇십 조씩 국채를 발행해 헛되이 갖다 쓰면 기업이 공장 짓고 일자리 만들 돈이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정부도 일회성 소멸성 사업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일자리가 생기는 곳에 투자해야 한다.”
부산항에 수출을 위한 컨테이너가 가득 쌓여 있다. [동아DB]
취업 노동자 과보호 탓에 청년과 미취업자 피해
박 이사장은 “노동과 자본에 대해 근본적인 오해가 있는 것 같다”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오히려 청년과 미취업자의 취업 기회를 가로막았다”고 강조했다.“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규제하는 것이 노동의 입장을 보호하고 유리하게 하는 듯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자본과 노동의 관계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상호 보완적이다. 자본을 투자하지 않으면 일자리(노동)가 생기지 않고, 일자리가 늘지 않으면 임금도 오르지 않는다. 역으로 노동 없이 자본만으로는 기업 활동을 할 수가 없다. 자본이든 노동이든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순망치한(脣亡齒寒) 관계처럼 상호 보완적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자본과 노동을 적대관계로 보고, 자본가의 몫을 노동자에게 더 주려고 한다. 그런데 본질적으로 노동은 노동과 경쟁한다. 이미 취업한 노동자를 과보호한 탓에 아직 취직하지 못한 청년과 미취업자에게 그 피해가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박 이사장은 “취업 노동자 과보호는 이 정부도 심하지만 역대 정부도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정년을 60세로 늘리는 것이 누구에게 좋은 일인가. 이미 취업한 사람은 정년이 연장돼서 좋겠지만, 투자가 늘어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기지 않으면 정년이 연장된 만큼 아직 취업 못한 청년 일자리는 생겨나지 않는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고, 최저임금을 급격히 올리고,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단축한 이 정부도 취업 노동자 위주로 보호하고 있지만, 역대 정부도 취업 노동자만 과보호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특히 문재인 정부가 주 52시간으로 근로시간을 단축했음에도 일자리가 늘지 않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나라가 멕시코 다음으로 주 60시간 이상 세계 최장시간 노동한 이유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장시간 노동의 근본 원인은 한번 채용하면 해고를 못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때문이다. 해고가 어려우니 기업들은 일감이 늘어도 고용을 늘리려 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 고용한 이들에게 일을 더 하도록 한다. 주 40시간 이상 노동하게 하려면 임금의 1.5배를 줘야 하는데도 기업은 새 사람을 뽑는 대신 연장근로를 선택했다. 왜 그러겠나. 일감이 줄었을 때 초과근무를 안 하면 그만큼 비용이 줄지만 사람을 더 뽑으면 일감이 줄어도 내보낼 수가 없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까 그런 것이다. 고용이 유연하지 않으니 인건비가 고정비화 한 것이다. 주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을 줄여도 고용이 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박 이사장은 “돈(자본)과 사람(노동)에 대한 규제도 큰 문제지만, 땅(토지)에 대한 지독한 규제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강조했다.
“대한민국 땅은 사실상 원칙 사용금지나 마찬가지다. 농지 보호, 임야 보호, 자연환경 보존, 군사시설 보호, 문화재 보호 등 땅 하나에 규제가 어찌 많은지, 집을 짓는 것도, 공장을 짓는 것도 뜻대로 할 수가 없게 돼 있다. 그런데 예외가 있다. 토지주택공사와 산업단지관리공단, 두 기관이 나서면 땅에 대한 규제가 확 풀린다. 어느 땅을 ‘가용토지’로 만들지 거기서 결정한다. 그래서 LH사태가 터진 거다. 다른 물건은 공급자가 여럿이어서 서로 사 달라고 경쟁을 붙이니 적정 가격에 흥정이 이뤄진다. 그런데 우리나라 땅은 ‘규제가 풀리느냐 아니냐’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그래서 규제 풀릴 지역에 땅 가진 사람들이 독점적 지위를 누리게 되니 부르는 게 값이 된다.”
토지 규제는 기업 투자에 엄청난 장애 요인
- 땅 가진 사람이 독점적 지위를 누린다? 어떤 경우가 그런가.“반도체 공장을 경기도 용인시에 짓는다는데, 공장 예정 부지에 땅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나올 것 같은가? 시세대로 팔 테니 어서 땅 사서 공장 짓고 사업 잘하라고 할 것 같나? 아니면 ‘내 땅 못 사면 사업을 못 하지’ 하면서 비싼 값에 사라고 끝까지 버티려 하겠나. 반도체 공장뿐만이 아니다. 호텔이든 골프장이든 뭐든 투자해서 사업을 하려고만 하면 그런 일이 벌어진다. 한국에서 기업이 투자하고 사업하는 데 토지 규제는 엄청난 장애 요인이 되고 있다.”
- 임기 후반 들어 문재인 정부는 예비타당성조사를 면제하면서까지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규제에 묶인 기업들이 투자를 안 하니까 정부가 나서서 토목건설업계에 일감을 만들어줘 내수를 진작시키려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하는 토목 건설 사업은 대부분 중장비로 하는 일이라 다른 산업에 비해 고용창출효과가 크지 않다. 결정적인 문제는 사업이 끝나는 순간 일자리가 한순간에 없어진다. 이명박 대통령이 4대강 사업으로 전국에 토목공사를 일으켜 일자리를 많이 만들었다고 생각하는데, 4대강 사업이 마무리된 임기 마지막 해(2012)에는 건설업 일자리가 사라져 취임 첫해(2008)보다 오히려 더 적었다. 4대강 사업이 한창이던 임기 중반에만 반짝 일자리가 늘었던 것이다. 완공과 동시에 일자리가 사라지는 토목공사에는 아무리 많은 돈을 쏟아부어도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한계가 있다. 나라가 빚내서 일자리 창출에 도움 안 되는 토목사업에 큰돈을 쓰면 다른 투자 기회를 막아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박 이사장은 “정치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얘기하고, 그 뒤에 숨은 보이지 않는 비용은 얘기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며 “헛된 곳에 돈을 낭비하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거기에 돈을 안 썼더라면 더 효과적인 곳에 투자해서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기회가 희생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가덕도 신공항’을 대표 사례로 들었다.
“나랏돈을 헛되이 쓰는 그 자체도 문제지만, 부산에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공항을 놔두고 왜 30분 이상 시간을 더 들여 공항을 가게 만드나. 내가 부산 사람인데, 나부터 결사 반대다. 지금은 여야 정치인들이 표를 의식해서 말을 안 하고 있지만, 시민들이 경제성과 편의성을 자각하기 시작하고, 실시설계를 하는 과정에 문제가 가시화되면 (가덕도 신공항은) 추진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 돈은 다른 곳에 투자해서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만드는 데 써야 한다.”
-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정부가 지급한 재난지원금은 적절했다고 보나.
“재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에게까지 지원금을 준 것은 잘못된 일이다. 수요 진작을 통해 경기를 살리려 해서는 효과가 거의 없다는 게 최저임금 인상 때 이미 검증됐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일자리다. 무엇보다 코로나를 빨리 물리쳐 영업을 정상화해서 지속 가능한 소득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몇십만 원, 몇백만 원의 지원금을 바라는 것이 아니다. 재난지원금으로 쓴 돈의 10분의 1만이라도 백신을 빨리 확보하는 데 썼더라면 어땠을까. 백신 수급이 지금보다 더 나았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백신접종률이 높아져 소상공인이나 자영업자들이 업종 제한 같은 제약에서 더 빨리 벗어날 수 있지 않았겠나.”
부동산 수요 규제는 필연적으로 공급 차질 수반
- 부동산 문제는 문재인 정부 4년 내내 뜨거운 감자였다. 투기를 막겠다고 시행한 정책들이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가격만 크게 올려놨다.“수급을 안정시킬 생각을 안 하고, 세금과 규제로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잘못이었다. 투기 수요를 억제하면 집값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수요 규제는 필연적으로 공급 차질을 수반한다. 결국 공급을 늘려야만 집값을 잡을 수 있다. 노태우 정부 때 200만 호 건설, 노무현 정부 때 2기 신도시 건설로 확실하게 집값을 잡은 일이 있다. 효과가 입증된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도 세금 등으로 투기 수요를 억제하겠다고 나섰다가 집값이 다 오른 뒤에야 뒤늦게 3기, 4기 신도시 추진에 나섰다. 문재인 정부도 노무현 정부가 걸어온 부동산정책 실패의 길을 똑같이 걷고 있다.”
- 뛰는 집값을 잡으려면 어떻게 접근해야 된다고 보나.
“주택의 가장 큰 특징은 ‘가격이 올라가면 수요가 더 늘어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집을 사려고 해서 집값이 오르는 게 아니다. 집값이 오르니까 더 늦기 전에 집을 사려고 소위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해서라도 집을 사려고 뛰어드는 바람에 집값이 더 가파르게 오른다.
또 한 가지. 집의 수급을 생각할 때 ‘질’을 고려하지 않고 ‘양’만 보고 공급이 부족하지 않다고 하는 것도 결정적인 실책이다. 공공임대 등으로 싼 집을 많이 공급해서는 더 좋은 집에서 살고자 하는 국민 수요를 충족시킬 수가 없다. 결국 집값을 안정시키려면 공공은 물론 민간에서 좋은 집을 더 많이 공급하도록 해야 한다.”
- 현 시점에 좋은 집을 많이 공급하는 게 가능한가.
“근본적으로 부동산의 문제는 토지의 공급 문제다. 가용토지 공급을 확대하지 않고서는 일자리 창출도 주택가격 안정도 힘들 것이다. 특히 재개발과 재건축은 가장 좋은 위치의 땅을 공급하는 일이다. 그런데 서울의 경우 재개발, 재건축을 틀어막아 놓으니 좋은 집 공급이 부족해졌고, 수요가 많은 강남의 집값이 더 많이 더 빨리 뛰었다. 택지 규제를 풀어 시장에 맡겨놨으면 좋았을 일을 정부가 개입해서 이상한 짓을 굉장히 많이 한다.”
- 이상한 짓?
“가치 있는 땅을 가치 없는 땅으로 만든 것은 이상한 짓이 아니고 뭔가. 강남과 붙어 있는 그린벨트를 풀어 강남보다 더 좋은 집을 지었으면 강남 수요를 분산해 강남 집값이 떨어졌을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개입해서 금싸라기 땅에 서민 임대형 주택을 지었다. 그게 난개발 아닌가. 시장이 작동하도록 했어야 하는데, 정부가 개입해 시장이 작동하지 못하게 한 것이 부동산정책이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이다.”
- 그린벨트에 서민주택을 공급한 것은 이 정부에서 한 일은 아닌데….
“부동산정책 실패는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역대 정부에서도 이상한 짓을 굉장히 많이 했다. 부동산정책 목표가 강남 집값을 잡는 게 돼서는 안 되겠지만, 상징적으로 강남 집값을 꼭 잡아야겠다면 발상을 전환해서 강남 집값을 잡을 수 있는 좋은 택지를 공급하면 된다.”
- 그런 택지가 있겠나?
“예를 들어 성남비행장(서울공항)을 김포공항으로 옮기고, 거기에 고급 아파트를 짓는다고 생각해 보라. 강남 집값을 잡는 데 파괴력이 굉장히 클 것이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때 2기 신도시를 추진하면서 남성대와 특전사를 이전시켜 그 부지에 아파트를 지었다. 그 덕에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 소위 강남 집값이 한동안 안정되지 않았나. 서민을 위한 집만 열심히 공급하면 서민 집값만 안정된다. 고급 주택 공급을 틀어막아 놓으면 희소성 때문에 고급 주택은 되레 더 비싸진다. 사려는 사람이 살 수 있게 해줘야 가격이 안정되는 법이다. 돈 많이 벌면 누구나 좋은 집에 살기를 소망하는데, 고급 주택 공급은 막아놓고 재개발, 재건축 허락해 줄테니 임대주택 지으라고 하는 것은 강남 집값 안정에 역행하는 일이다.”
규제 풀어 시장원리 작동해야 경제성장 가능
- 1년 후면 새 정부가 출범한다. 차기 정부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우리 경제가 당면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뭐라고 보나.“일자리를 늘리는 것이다. 그러려면 돈과 노동, 땅을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 그렇게 안 하면 어느 정부가 들어서더라도 경제를 살려내기 어렵다. 경제 문제를 정치나 사회문제처럼 다루면 실패한다.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는 규제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으면 왜 공산국가들이 여태 저렇게 못사는 나라에 머물러 있겠나. 결국 경제성장과 발전은 시장원리가 작동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어야 가능하다. 지금부터라도 고용창출효과가 큰 의료·바이오산업을 키우고, 농업과 서비스산업에도 투자가 몰리도록 규제를 대폭 풀어줘야 한다. 우리나라가 과거 제조업을 성공시킨 모델을 따르면 된다.”
- 제조업 성공 모델이라면?
“우리는 과거에 제조업 육성을 위해 나라가 나서서 땅을 수용하고 공장 부지를 조성해 줬다. 도로도 깔아주고 수도, 전기까지 놔줬다. 그런 다음 기업들에 공장을 지으라고 했다. 마찬가지다. 제조업만으로는 앞으로 경제성장에 한계가 있다. 이제는 세계 초일류 의료·서비스업이 한국에서 꽃피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서비스업종이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땅이나 건물을 제공해 주고 무엇보다 ‘개방’을 통해 국내는 물론 해외 기업들과 경쟁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경쟁력이 높아진다. 당장은 고급화와 차별화를 막는 가격 규제부터 풀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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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