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리는 ‘농부시장 마르쉐’ 현장 풍경. [농부시장 마르쉐@ 제공]
농부가 손수 키운 작물을 직접 판매하는 ‘일일장터’가 꽤 많아졌다. 얼마 전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이런 장이 열린다기에 아침 일찍 들렀다.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사지 않겠다는 내 결심은 장터 입장과 동시에 연기처럼 사라졌다. 대파, 양파, 부추, 참나물, 아스파라거스, 감말랭이, 버섯 등 채소 한아름을 또 집에 들였다. 두 식구 살림인데다 끼니는 밖에서 해결하기 일쑤인데 욕심이 앞섰다.
봄이 미어터지도록 너를 먹는다
장터에서 사온 채소를 다룰 때는 섬세해진다. 먹을 때도 차분하고 온전하게 음미하고자 한다. [GettyImage]
봄동아,/ 봄이 미어터지도록 너를 먹는다 (중략) 네가 봄이 눈 똥이 아니었다면/ 봄길 지나는 그냥 흔한 풀이었다면/ 와작와작 내게 먹히는 변은 없었을 게 아니냐/ 미안하다만 어쩌겠냐/ 다음 생엔 네가 나를 뜯어 쌈싸 먹으려므나 _ 황상순 詩 ‘봄동아, 봄똥아’
슈퍼마켓에서 산 채소와 농부님 얼굴을 보고 사온 채소는 집에서 다른 대접을 받는다. 키운 사람 얼굴이 떠오르는 채소에는 애착이 더해진다. 황상순 시인처럼 봄동에게 말을 걸게 된다.
장터에서 사온 채소를 다룰 때는 섬세해진다. 먹을 때도 차분하고 온전하게 음미하고자 한다. 편마늘 작은 심지에서 불현듯 위로를 받는 시인처럼.
이번에 장에서 사온 것 중 참나무 아래서 자라는 참송이버섯과 구워 먹으면 맛나다는 칼솟양파가 있었다. 이것들과 아스파라거스를 한데 섞어 올리브유, 소금, 후추로 간을 해 지글지글 구웠다. 부추와 참나물은 고춧가루 양념에 버무렸다. 채소구이와 무침이라는, 특별할 것 없는 찬 두 가지를 놓고 우리 부부는 한참 떠들었다. “쫄깃해” “향이 진해” “정말 달아” “좀 질긴가” “뒷맛은 구수해”라며 진심을 다해 먹었다.
내 속으로 펼쳐지는 푸른 우주
밥 한 술, 콩 한 줌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인처럼, 우리 역시 매일 위대한 자연을 먹고 있다. [GettyImage]
쌀알 하나에 스민 햇살/ 잘게 씹는다/ 콩알 하나에 배인 흙내음/ 낯익은 발자국, 바람결/ 되씹는다/ 내 속으로 펼쳐지는 푸른 우주를 본다 _ 이응인 詩 ‘푸른 우주’
자세히 보면 예쁨을 발견하게 되는 풀꽃처럼 재료와 음식도 그렇다. 보고자하고, 알고자하면 작게 베어 문 한 입에서도 우주를 발견할 수 있다. 우리가 먹는 밥 한 술, 콩 한 줌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한 시인처럼, 우리 역시 매일 매 끼니에 위대한 자연을 먹고 있기 때문이다.
아스파라거스의 질긴 밑동, 칼솟양파의 껍질과 줄기 부분, 파마머리 같은 대파 뿌리는 말끔히 손질해뒀다. 요리 밑국물을 만들 때 넣으면 감칠맛을 보태주기 때문이다. 누가 어떻게 키웠는지 모르는 채소는 버리는 부분이 많다. 농부 장터에 가면 자연을 아끼는 소비자가 되고, 슈퍼마켓에 가면 자연에 가혹한 사람이 되는 꼴이다.
슈퍼 옥수수/ 슈퍼 콩/ 슈퍼 소/ 꼭 그리해야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다면/ 차라리 사람들이 작아지는 방법을 연구해보면 어떨까/ 앙증맞을 집, 인공의 날개, 꼬막 밥그릇/ 나뭇가지 위에서의 잠, 하늘에서의 사랑/ 무엇보다도 풀, 새, 물고기들에게도 겸손해질 수 있겠지 _ 함민복 詩 ‘농약상회에서’
밥상머리에 앉아 지구를 걱정하는 게 일상이다. 지구가 위태로워질수록 우리는 농부의 작물에 점점 더 열광한다. 계절을 거스르지 않고, 깨끗하며, 맛도 좋다. 무엇보다 키운 이가 떠올라 도무지 함부로 다룰 수가 없다. 조그마한 작물일지라도 존중하고, 정성스럽게 대하며 알뜰히 먹는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마음을 다잡게 만드는 대단한 환경 파수꾼이다. 이현주 시인은 ‘밥 먹는 자식에게’라는 시의 도입부에 이렇게 썼다. “천천히 씹어서 공손히 삼켜라.” 맞다.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당연한 게 하나도 없다.
지구가 위태로워질수록 우리는 농부의 작물에 점점 더 열광한다. [GettyImage]
김민경 푸드칼럼니스트 mingaemi@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