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못한다는 걸 알고 예전으로 돌아가도, 다시 한화 택할 것" "내 기록 깨는 후배 나왔으면"
“쑥스럽네요.”
한화 이글스의 올드 유니폼을 입은 김태균(39)이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며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은퇴를 선언한 지 약 6개월 만에 잠시 ‘선수’로 돌아온 김태균은 “감회가 새롭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태균은 29일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리는 2021 신한은행 쏠 KBO리그 SSG 랜더스와 경기에 4번 타자 1루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KBO가 올해부터 은퇴 경기 거행 선수를 위한 특별 엔트리를 허용하면서 김태균도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게 됐다. 경기 후에는 김태균의 은퇴식과 영구결번식이 진행된다.
경기를 앞두고 만난 김태균은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배들이 누린 영광스러운 영구결번 지정이다. 내가 이어받아 내 번호가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 계속 남아있고, 팬들이랑 함께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굉장히 기분 좋다”며 밝게 웃었다.
이날 김태균의 은퇴식을 기념해 한화는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간 착용했던 올드 유니폼을 입기로 했다. 강렬한 레드가 특징인 이 유니폼은 김태균의 데뷔 당시 유니폼이기도 하다. 김태균은 입단 첫 해였던 2001년 88경기에서 타율 0.335, 20홈런, 54타점으로 신인왕을 거머쥐었다.
일본에서 뛴 2010~2011년을 제외하고 18시즌을 한화에서만 활약한 프랜차이즈 스타인 김태균은 통산 2014경기에 출전해 타율 0.320, 2209안타 311홈런 1358타점 3557루타 출루율 0.421를 기록했다.
구단은 김태균이 현역 시절 달았던 등번호 52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 영원히 남기기로 했다. 한화의 영구결번은 장종훈(35), 정민철(23), 송진우(21·이상 배번)에 이어 김태균이 4번째다.
-작년 은퇴 기자회견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는데.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때는 눈물을 많이 흘렸지만, 지금은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감흥이 많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구장에 나오니 감회가 새롭긴 하다.”
-지금 가장 고마운 사람은.
“지금 떠오르는 분은 한화 박찬혁 사장님이다. 사장님이 부임하시면서 팀도 많이 변화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사장님이 안 오셨다면 영구결번 지정이나, 오늘 같은 은퇴식의 영광을 누리지 못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박찬혁 사장님이 오셔서 나에 대해 인정해주시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셔서 지금 순간에는 가장 고마운 마음이 든다.”
“굉장히 훌륭한 업적을 남긴 선배들이 누린 영광스러운 영구결번 지정이다. 내가 이어받아 내 번호가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 계속 남아있고, 팬들이랑 함께 할 수 있다는 부분에서 굉장히 기분 좋고, 영광스럽다. 박찬혁 사장님과 정민철 단장님, 구단 관계자분들, 팬들께 감사드린다. 영구결번 지정이라는 선물을 받지 못했을 수도 있었는데, 감사드린다.”
-등번호 52번은 김태균에게 어떤 의미인가.
“제일 어려운 질문이다. 야구를 시작할 때 어떤 번호를 달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데, 아버지가 정해주셨다. (번호가) 둥글둥글해서 복이 안 빠져나간다고 하시면서 추천해주셨는데, 어릴 때는 솔직히 예쁜 번호, 한 자릿수 번호나, 에이스가 떠오르는 번호를 달고 싶었다. 아버지가 항상 반대하셔서 그 번호를 계속 달고 뛰었다. 지금은 이 번호 덕분에 이 자리에 있지 않나 생각도 든다. 의미를 부여한다면 지금의 김태균을 만들어준 번호다.”
-신인 때 입은 유니폼을 오랜만에 다시 입었다.
“한화가 우승할 때 선배들이 이 유니폼을 입고 있던 걸 고등학교 때 봤다. 어떻게 보면 팀의 첫 우승 때 유니폼이고, 내 신인 때 첫 유니폼이기 때문에 굉장히 의미가 있다. 새로 입어보니 은퇴 인터뷰가 아니라 입단 인터뷰를 하는 느낌도 받는다.(웃음) 사실 입단할 때 구단에 교복을 입고 왔다. 오늘은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는 은퇴식이기 때문에 경기 후 은퇴식에서 입는 의상을 교복 스타일의 양복을 맞춰입었다.(웃음)”
-지금 표정은 밝은데, 은퇴식에서도 그럴까.
“모르겠다. 지금 너무 기분 좋다. 은퇴식도 기분 좋게 잘 될 거 같다. 은퇴 기자회견할 때 내가 눈물 흘릴 거라고 상상하지 않았는데. 그때도 (눈물이 나서) 내가 너무 당황했다. 오늘은 당황스럽지 않은 상황이 만들어졌으면 한다. 그런데 그림은 우는 게 좋은 건가.(웃음)”
-아이들과 시구시타 행사를 하게 됐다.
“전에는 한 번도 못했다. 현역 때는 내가 예민해서 가족들이나 지인들이 야구장에 오는 걸 부담스러워했다. 그럴 때마다 성적도 안 좋아서 가족들은 야구장에 와도 숨어서 보는 경우가 많았다. 성적이 안 좋을 때 경기장에서 팬들이 하는 얘기를 듣고 첫째가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서, 그 뒤로 거의 그런 기회가 없었다. 이제 마지막인데 아이들이 시구, 시타를 하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우승을 못하고 은퇴하게 됐다. 우승을 못한다는 걸 알고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도 한화를 택할까.
“우승을 못한 건 나의 단점이 되고, 아쉬운 부분이겠지만 한화 이글스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보고 자란 팀이다. 한화에 와서 선수 생활을 하는 게 목표였기 때문에 다시 그때로 가도, 우승을 못한다는 걸 알고 있어도 올 것 같다. 내가 원했던 팀이다. 우승을 못하는 건 내 개인의 아쉬움이다.”
-우승의 꿈을 이뤄야 하는 후배들에게 한 마디 한다면.
“비록 내가 밖에 있지만, 마음은 항상 한화와 함께 하고 있다. 후배들이 우승하면 나의 아쉬운 부분이나 한으로 남았던 게 풀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가서 한화 경기를 하는 걸 많이 지켜보고 있는데 좋아질 거 같다. 지금 어린 선수들이 경험을 쌓고, 퓨처스나 좋은 신인들이 들어와서 힘을 보태면 충분히 강팀이 될 수 있다.”
-사회공헌활동도 많이 했는데.
“앞으로도 꾸준히 좋은 일을 해나가고 싶다.”
-야구장 밖에서의 삶을 살게 됐는데, 어떤 그림을 그리나.
“야구 해설을 하고 있는데, 지금은 그렇게 지내면서 야구 공부를 병행해 결국에는 현장으로, 한화로 돌아와야 하지 않나. 돌아왔을 때 어설프게 도움이 되기 보다 내가 뭔가 확신을 갖고 와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준비를 잘해야 한다. 야구 공부나 다른 외적으로도 준비를 잘해서 언젠가는 돌아오지 않을까.”
-선수 생활 동안 부인이 옆에서 많은 도움이 됐을 텐데.
“그동안 고생 많이 했다. 내가 굉장히 예민해서 힘들었을텐데 잘 맞춰줬다. 아내뿐만 아니라 부모님, 온 가족이 나에게 모두 포커스를 맞췄다.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고 앞으로는 본인들을 위해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은퇴 후 반년 정도가 지났다. 은퇴를 후회한 적은 없나.
“딱 한번 있었다. 이의리(KIA 타이거즈) 선수가 초반 공이 너무 좋더라. 그때 한 번 ‘은퇴 안했으면 쳐봤을 텐데’ 싶더라. 궁금했다. 어떤 게 좋고, 얼마나 좋은 지. 그때 잠시 후회라고 하긴 그렇지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다음 영구결번이 될 것 같은 선수는.
“많이 있다. 나도 그 나이대는 이런 영광을 누릴 거라고 상상 못했듯 모든 선수가 다 가능성이 있다. 나는 타자입장이니까, 한화에서 홈런 빼고 내 기록이 모든 타격 부분 1위다. 그걸 깨는 후배가 나왔으면 한다. 그 선수가 은퇴할 때는 내 기록이 1위에서 사라졌으면 좋겠다. 그 타자가 내 기록을 깨고, 다음 영구결번이 됐으면 한다.”
[대전=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