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전경.
올해 2월 서울 마포구에 문을 연 무인로봇 카페 ‘스토랑트’. 손님이 키오스크에서 메뉴를 주문한 뒤 테이블에 앉으면 바리스타 로봇이 음료를 만들고 서빙 로봇이 테이블로 가져다준다. 이 카페를 만든 중소기업 ‘비전세미콘’은 원래는 무인로봇과는 거리가 먼 회사였다. 반도체 후처리 공정을 위한 플라스마와 오븐 장비를 설계·생산하던 제조 회사였다. 신사업 진출을 고민하다 자동화 매장 기술을 개발한 이 회사는 대덕특구가 진행한 전통 제조기업의 신사업 전환 컨설팅을 받아 지난해 5월 대전 봉명동에 첫 ‘스토랑트’ 매장을 열었다. 독특한 매장 운영 방식이 입소문이 나면서 현재는 서울 상암점을 비롯해 전국 10개 매장이 운영 중이다.
○기술 혁신부터 신사업 지원까지… 지역 혁신기업 동반자로
1973년 대덕연구단지에서 시작해 2005년 7월 관련법 시행에 따라 부산·대구·광주·전북 등 5개 지역에서 성장한 연구개발특구가 탈바꿈하고 있다. 연구개발특구는 지역 내 대학·공공연구기관 등의 연구 성과를 확산하고 사업화 활성화를 위해 조성한 지역이다. 처음에는 뚜렷한 성과가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최근 들어 혁신기업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홍순정 과기정통부 지역과학기술진흥과장은 “개발도상국들이 국가 혁신이나 지역 성장 거점으로 한국의 연구개발특구를 벤치마킹하려고 한다”며 “대덕특구의 경우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에 대한 외국인 투자도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이 특구에 모여든 가장 큰 이유는 연구소와 대학 등과 시너지 효과를 기대해서다. 비전세미콘 역시 같은 대덕특구에 입주해 있는 한국기계연구원의 도움을 받아 연구과제를 진행하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식당에서 흔히 보이는 아크릴 칸막이 대신 위에서 바람을 불어주고 아래서 흡입하는 방식으로 공기 장벽을 만드는 에어커튼 기술을 적용한 신개념 ‘비말 차단 테이블’을 개발하는 게 목표다.
○신사업 아이디어 제공처… 상장사 99개 배출
연구개발특구는 대학이나 연구기관이 개발한 최신 기술을 새로운 사업 아이템으로 이전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역할을 하고 있다. 연구소기업이 대표적이다. 연구소기업은 정부 출연연구기관이나 대학 등이 보유한 기술의 사업화를 위해 자본금을 출자해 연구개발특구 내에 설립하는 기업이다.
연구소기업 중 스타기업도 탄생했다. 의료용화합물 제조로 유명한 ‘콜마비앤에이치’, AI 신약개발 기업 ‘신테카바이오’, 코로나19 자가검사키트 제조기업 ‘수젠텍’은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이달 26일에는 제147호 연구소기업으로 신속 분자진단 플랫폼 기술기업인 ‘진시스템’이 추가로 코스닥에 상장했다. 연구소기업을 포함해 코스닥 시장에 상장한 특구 내 기업은 99개에 이른다.
○강소특구로 고밀도 혁신생태계 ‘새바람’
정부는 5년마다 수립하는 ‘연구개발특구 육성 종합계획’의 4번째 버전을 4월 확정했다. 탄소중립·디지털 혁신에 방점을 찍고 미래 먹거리와 혁신기업 생태계 고도화에 나선다. 기존 종합계획이 특구 모델의 전국적 확산에 중점을 둔 양적 성장 모델이었다면 4차 종합계획은 특구를 ‘탄소중립 전진기지’로 탈바꿈하겠다는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특히 올해는 1600억 원 규모의 연구개발특구 전용펀드를 활용해 지역 스타트업 투자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특구 내 기술을 토대로 창업한 기업에 직접 투자한 뒤 민간 투자를 활성화하는 게 목표다.
임혜숙 과기부 장관은 “2025년까지 특구 매출 100조 원, 기업 1만 개, 코스닥 등록기업 150개 등을 목표로 지원할 것”이라며 “탄소중립, 디지털혁신 등 혁신 환경 변화 과정에서 혁신 생태계를 활성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