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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장택동]DPRK와 PRC

입력 | 2021-05-31 03:00:00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라는 북한의 국호를 소련 군정이 지어줬는지, 김일성이 만들었는지 논란이 있지만 북한에선 김일성의 창작품이라고 선전한다. 그래서인지 공화국이라는 단어에 대한 애착이 강하다. 최고의 영예는 ‘공화국 영웅’이라는 칭호를 받는 것이고, 스스로를 공화국이라고 부른다. 영문 명칭도 ‘North Korea’가 아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번역한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를 쓴다. 미국 정부는 두 개의 북한 명칭을 혼용하다 최근 DPRK로 통일하라는 지침을 내렸는데, 의도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미중 간의 갈등이 고조되던 지난해 5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시진핑 총서기(General Secretary)”라는 표현을 썼다. 국가를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의미가 강한 국가주석(President) 대신 총서기라고 호칭해 공산당의 수장이라는 측면을 부각한 것. 여기엔 중국 정부와 국민을 분리해서 대응하려는 전략이 깔려 있다. 미 정부가 중국의 명칭을 China 대신 PRC(People’s Republic of China)로 쓰기 시작한 것과 같은 흐름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어제 “우리의 국호, 그것은 절세위인들께서 안겨주신 영원한 긍지”라며 국호 관련 기사를 내보냈다. 북한 정권이 미 정부의 국호 표기 관련 조치를 북한에 대한 배려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반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중국의 전례와 조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기조에 비춰보면 북한이 마냥 반길 일은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북한 정권은 DPRK로, 주민을 포함한 북한 전체는 North Korea로 구분해 주민에 대해선 유화적 자세를 취하더라도 정권의 인권침해, 핵개발 등은 계속 문제 삼을 가능성이 있다.

▷미 정부가 국호를 민감하게 여기는 사례로는 미얀마도 있다. 1988년 민주화 시위를 진압한 군부는 1948년 독립 이후 사용하던 버마라는 국호를 1989년 미얀마로 바꿨다. 하지만 지금도 미 정부는 대부분 버마라고 쓴다. 미얀마 미 대사관 명칭도 ‘버마 주재 미국대사관’이다. 독재 세력이 바꾼 나라 이름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이 배어 있다.

▷김씨 일가가 3대째 집권 중인 북한,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인 중국 모두 국호에 인민공화국이 들어가 있다. 루마니아, 폴란드 등 동유럽 국가들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향 아래 있던 시절 국호에 인민공화국을 붙였지만 현실에서 인민은 탄압받는 존재였을 뿐이다. 누가 국호를 지었고 미국이 어떻게 표기하는지보다 중요한 것은 따로 있다. 북은 국호에 들어있는 공화주의와 민주주의의 참된 의미를 받아들여 주민의 삶을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길로 가야 한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