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영화 ‘더 파더’
치매 환자의 시선에 따라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영화 ‘더 파더’의 한 장면. 판씨네마 제공
플로리앙 젤레르 감독의 영화 ‘더 파더’는 치매 노인 이야기다. 우리는 치매 노인에 관련해 슬프고 힘든 이야기들을 이미 많이 알고 있다. 자기 삶을 멸시해 온 사람들도 정작 치매 노인을 보면, 자신이 누려온 삶의 위엄을 새삼 깨닫는다. 가능한 한 자기 의식주와 생리현상을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며, 되도록 민폐를 끼치는 혹 덩어리가 되지 않고자 하는 의지는 인간의 삶을 위엄 있게 만든다. 치매를 겪는다는 것은 그런 삶의 위엄을 땅에 내려놓는 일이다.
치매 노인은 대체로 기억이 온전하지 않고,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하며, 절제되지 않은 언행을 일삼는다. 자기 한 몸을 건사하지 못하다가 결국 돌보아 주는 주변 사람들을 지치게 한다. 급기야는 하나, 둘, 가족마저 곁을 떠나 버린다. ‘더 파더’도 이러한 익숙한 치매 에피소드를 나열한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의 이름은 안소니.
벨기에 화가 얀 판 케설의 바니타스 정물화에 나오는 꽃과 모래시계. 워싱턴 내셔널갤러리 소장
현실에도 괴로운 일들이 넘쳐나는데, 굳이 영화에서까지 이런 에피소드를 보아야 할까. ‘더 파더’는 치매 환자의 일상 에피소드 이상의 것을 담고 있기에 볼 가치가 있다. 영화의 오프닝 시퀀스와 마지막 시퀀스를 비교해 보자. 영화 시작부. 아버지를 방문하러 또각또각 길을 걸어오는 딸의 발걸음을 따라 오페라 음악이 흐른다. 마침내 딸이 아버지 안소니를 만나는 순간 그 음악은 “객관적으로” 울려 퍼지던 음악이 아니라, 안소니가 헤드폰을 쓰고 듣고 있던 음악이었음이 판명된다.
치매란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듣고 있으면서 남들도 그 음악을 듣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 상태다. 인지 기능이 저하된 치매 노인에게 일상은 헤드폰 속 음악처럼 흐른다. 이 음악 좋지 않니? 무슨 음악 말씀이죠? 이 음악 소리 너무 크지 않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데요. 음악 소리 볼륨 좀 키워 봐. 무슨 음악 소리요? 방금 일어난 일상을 왜 너는 모르는 척하니? 영화는 자신이 치매인 줄 모르는 치매 환자의 일상을 충실하게 따라간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기억의 다리가 불타버린 일상, 자신과 타인을 잇는 인지의 다리가 부서져 버린 일상을 보여준다. 그 파편화된 세계를 견디지 못한 딸은 아버지를 요양원에 두고 파리로 떠나 버린다.
고대 로마의 휴양지 스타비아에에서 발굴된 봄을 형상화한 프레스코화. 나폴리 국립고고학박물관 소장
흐느끼는 안소니는 단순히 감정 조절에 실패한 치매 노인이 아니다. 마침내 자신이 치매임을 깨달은 치매 노인이다. 안소니의 울음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을 자각한 자의 울음이다. 안소니는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처럼 묻는다.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은 그 누구도 아닌 존재가 되었다는 메타 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더 파더’의 핵심이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