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맨 선보인 日 ‘가전 거인’ 소니 콘텐츠사업 거쳐 전기차 시대 준비 중
박형준 도쿄 특파원
그런 소니는 1980, 90년대 세계 가전시장을 주름잡았다. 오디오, TV, 컴퓨터 등 소니 가전은 고가였고, 전자매장의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혁신적 제품을 내놓지 못했다. 가전이 포함된 전자사업은 2009년부터 2014년까지 6년 동안 다섯 차례 적자를 냈다. 실적이 곤두박질치자 2014년 컴퓨터 사업을 접었고, TV 사업을 분사시켰다. 당시 소니의 경쟁사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승승장구했다.
현재 소니를 가전회사라고 부르기 힘들다. 2000년 회사 전체 매출에서 전자사업 비중이 69%였지만 지난해에는 21%에 불과했다. 그 대신 지난해 게임 30%, 음악 11%, 영상 8% 등 콘텐츠 관련 사업이 전체의 49%를 차지했다. 요시다 겐이치로(吉田憲一郞)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26일 “(게임, 영화, 음악 등) 콘텐츠를 만들고 전달하는 기술을 중시한다”며 소니가 콘텐츠 기업임을 분명히 했다.
물론 지난해 소니의 호실적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집콕’ 수요의 혜택을 입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일시적 현상”이라는 분석도 내놓는다. 그럼 미래의 성장 가능성은 어떨까. 기자는 가전기업, 아니 콘텐츠 기업 소니가 만든 전기차 ‘비전S’를 주목한다.
소니는 지난해 1월 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0’에서 비전S를 공개했고, 현재 자율주행 등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판매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지만 가와니시 이즈미(川西泉) 전기차 개발 담당임원은 최근 아사히신문 인터뷰에서 “판매 가능성이 제로(0)라고는 말하지 않겠다”며 말을 바꿨다.
비전S에는 주변을 360도 감지할 수 있는 센서 40개가 장착돼 있어 자율주행을 할 수 있다. 차에선 음악과 동영상, 게임 등을 즐길 수 있다. 소니가 현재 지닌 강점인 영상·음향(AV), 이미지센서 등 기술력을 자동차에 접목하고 있는 것이다. 소니는 자동운전 소프트웨어와 차체 디자인, 내장을 맡고, 나머지 주행과 관련된 부분은 다른 기업과 협업하고 있다.
소니 창업주 이부카 마사루(井深大·1908∼1997)는 “10년, 20년이 아니라 30년 뒤, 40년 뒤를 보라”고 주문했다. 소니의 전기차 실험은 그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미래 소니의 경쟁사는 현대차로 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일본의 자존심 소니를 꺾었다”고 말한다면, 그는 소니의 변신을 모른 채 과거만 기억하는 사람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