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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인사이트]또 축소로 기우는 8월 연합훈련… “韓美 대북방어 엇박자 우려”

입력 | 2021-06-02 03:00:00

하반기 한미훈련도 파행 가능성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여야 5당 대표 오찬간담회에서 8월로 예정된 하반기 연합훈련의 축소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연합훈련이 또다시 파행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은 병력을 동원한 대규모 훈련이 어려운 이유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을 들었지만 군 안팎에선 납득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다.

늦어도 7월 하순까지 거의 모든 장병에 대한 코로나19 접종이 완료될 수 있고, 주한미군과 미 증원전력도 대부분 백신을 맞아 연합훈련의 정상적 실시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8월 연합훈련 축소를 남북대화와 북-미 협상 재개용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의중을 내비쳤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군 관계자는 “4년째 지지부진한 연합훈련이 ‘협상칩’으로 계속 활용될 경우 대북방어태세 약화와 함께 북한에 잘못된 시그널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 3년째 멈춰선 대규모 기동훈련, 모의훈련도 파행 거듭


한미 양국군은 매년 상·하반기에 북한의 전면 남침 등 다양한 도발 시나리오를 상정해 컴퓨터 시뮬레이션 방식의 연합지휘소훈련(CPX)과 야외 실기동훈련(FTX)으로 전쟁 수행절차를 점검한다. 미 본토와 주일미군기지 등에서 증원전력을 한반도로 투입하는 절차를 숙달하는 것도 핵심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항모강습단과 전략폭격기 등 주요 전략자산이 실제 투입되기도 한다. 군 관계자는 “유사시에 대비한 한미 연합 작전계획(OPLAN)을 반복적으로 검증해서 고도의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것이 훈련의 가장 큰 목적”이라고 말했다. 연합훈련이야말로 대북 억지력의 요체라는 얘기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연합훈련은 중단·축소되기 일쑤였다. 2018년 남북·북-미 정상회담 이후 한미는 키리졸브(KR·CPX)·을지프리덤가디언(UFG·CPX)·독수리연습(FE·FTX) 등 3대 연합훈련을 모두 폐지하고, 연 2차례의 CPX만 진행 중이다. 이마저도 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부터 취소·축소돼 ‘훈련다운 훈련’을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매년 4월 실시하던 대규모 야외기동훈련인 독수리연습도 2019년 사라지면서 연합 실기동훈련은 대대급 이하에서만 이뤄지고 있다. 대규모 연합상륙훈련(쌍용훈련)과 연합공군훈련(맥스선더·비질런트에이스)도 북한 반발을 의식해 잇달아 축소·폐지됐다. 그 결과 한미 간 연대급 이상의 야외기동훈련은 3년째 전무한 실정이다.


○ 커져가는 한미 대북방어 ‘엇박자’·전투력 약화 경고음


연합훈련의 파행 장기화는 많은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무엇보다 한미 양국군의 대북방어 ‘엇박자’에 대한 우려가 제기된다. 한미연합사령부 고위직을 지낸 한 예비역 장성은 “언어·문화를 비롯해 무기장비와 교리도 다른 한미 양국군이 전시에 ‘원팀’으로 움직이려면 정례적인 대규모 실기동훈련으로 손발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데 이를 폐지한 이유를 납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대급 이하 ‘약식 훈련’으로는 연합 전투태세 확립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군내에서도 컴퓨터 화면을 보며 키보드·마우스로 진행하는 모의훈련만으론 ‘팀워크’를 보장할 수 없다는 인식이 많다. 유사시 한미 양국군의 불협화음은 병력 손실과 작전 실패로 귀결될 수 있기 때문.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 겸 주한미군사령관이 지난달 환송 행사에서 “평시에 땀을 흘려야 전시에 피를 흘리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한 것도 같은 취지로 풀이된다. 또한 한미 양국군은 1, 2년마다 보직이 바뀌기 때문에 연합훈련의 공백이 장기화되면 훈련 경험과 소통 능력을 축적하기도 힘들다.

주한미군 소식통은 “연합훈련이 수년째 파행되면서 한미 양국군 간 조직력과 유대감이 느슨해진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부실한 연합훈련은 전투력 약화로 직결될 공산도 크다. 무기·병력을 대거 투입한 고강도 훈련을 도외시하면 한미 양국군이 실전에서 돌발사태에 원활히 대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사시 투입되는 미 증원전력의 한반도 지형 및 작전환경 숙달 수준도 목표치를 밑돌 소지가 적지 않다. 군 소식통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훈련이 아무리 정교해도 무기병력의 배치운용 등 실제 상황과는 간극이 클 수밖에 없다”며 “그 간극을 메우려면 전구급 규모의 대규모 야외기동훈련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만간 부임하는 폴 라캐머러 주한미군사령관 지명자(현 미 태평양육군사령관)도 지난달 상원 인준 청문회에서 ‘실기동훈련(FTX)을 포함한 대규모 한미연합훈련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의에 “실제 훈련이 컴퓨터 모의훈련보다 훨씬 더 좋다”고 답한 바 있다. 실전 같은 고강도 기동훈련의 실시 여부에 따라 지휘관·장병들의 전투 노하우와 자신감도 현격하게 차이가 날 것이라는 주장과 함께 연합훈련의 지속적인 축소·중단은 북한에 ‘종이호랑이’로 비쳐져 오판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국방부 산하 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연합훈련은 양과 질에서 2018년까지와 비교해 크게 밑도는 수준”이라며 “이를 방치할 경우 머잖아 전투력 약화와 ‘안보 공백’이 가시화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 연합훈련의 ‘협상카드’ 남용은 독(毒)



지난달 한미 정상회담 직후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군 55만 명에 대한 백신 지원 계획을 밝히자 일각에선 연합훈련 정상화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한국군과 밀접 접촉하는 공간에서 근무하는 (주한)미군 보호를 위해 바이든 대통령이 내린 결정”이라는 미 국방부의 입장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실었다.

이에 대해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최근 국회에 출석해 미국의 백신 제공과 연합훈련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고, 미국이 제공하는 100만 명분의 얀센 백신도 현역이 아닌 30세 이상의 예비군과 민방위 대원 등에게 접종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가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처럼 연합훈련을 북한에 ‘당근책’으로만 활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다. 군 관계자는 “북한이 연합훈련을 앞두고 도발에 나설 경우 훈련 여부와 규모를 두고 한미 간 이견을 빚을 개연성이 있다”고 말했다.

연합훈련이 대북 협상수단으로 남용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대북관계 개선을 위한 연합훈련의 연이은 축소·유예가 북한의 핵고도화와 연합방위태세 약화를 초래하는 독(毒)이 됐다는 것이다. 합참 작전본부장을 지낸 국민의힘 신원식 의원은 “연합훈련의 취소·연기·축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핵·미사일 개발에 주력했다”며 “연합훈련을 조속히 정상화해서 대북 방어태세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군 안팎에서도 북한의 잘못된 행동에는 연합훈련 복원이라는 ‘상응 조치’로 대처하는 것이 ‘협상카드’로서의 효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적지 않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