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네브래스카


이정향 영화감독
우디는 한국전에 참전한 대가로 연금을 받지만 평생 술통에 빠져 사느라 미장원을 하는 아내에게 얹혀살았다. 아내는 남편의 술버릇이 지긋지긋하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못마땅해 악담만 퍼붓는, 입이 무척 거친 마누라지만 마음이 약해 남의 청을 거절 못 하고 이용만 당하는 남편의 방패를 자처하며 살아온 인생이다. 우디도 그걸 알기에 아내의 폭언을 묵묵히 견딘다. 장남은 이런 환경 덕에 일찍 철들어 현실적이고, 둘째는 그 반대로 정에 약하다. 이들을 보면 가정은 살아있는 생물체 같다. 서로 부대끼며 변한다. 때로는 상극일까 싶다가도 끊임없이 변화시키며 상생을 도모한다. 그러기에 지금의 나는 가족 모두의 합작품이다. 가족끼리는 서로의 단점에도 책임이 있고, 서로의 장점에도 공이 있다. 만약 다른 부모, 형제를 만났다면 지금의 나랑은 달랐을 거다.
지난주에 아버지와 이별했다. 주변에 부고를 알리지 않았기에 아버지를 기억하는 친척들과 오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아버지를 나와 다르게 기억했다. 혼란스러웠다. 형제들과 닮은 얼굴이면서도 나는 내가 주워 온 자식이 아닐까 종종 의심했다. 그만큼 아버지는 내게만 가혹했다. 이런 아버지와 사사건건 치고받으며 자란 탓인지 형제들은 내가 아버지를 빼닮았다고 입을 모은다. 이건 인정한다. 내가 봐도 그렇다.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