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육류회사의 미국 자회사가 최근 사이버 공격을 받은 것에 대해 미국 백악관이 러시아 범죄 조직의 소행 가능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얼마 전 미국 송유관 회사에 대한 랜섬웨어 공격도 러시아 해커들이 연관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어서 비슷한 사건이 잇달아 벌어지는 배경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이달 중 예정된 미러 정상회담을 앞두고 양국 간의 미묘한 신경전도 예상되고 있다.
카린 장-피에르 미국 백악관 수석 부대변인은 1일(현지 시간) 브리핑에서 “글로벌 정육회사인 JBS SA의 미국 자회사가 지난달 30일 사이버 공격을 받았으며 러시아에 기반을 둔 것으로 보이는 범죄 조직으로부터 금품 요구가 있었음을 미 행정부에 통보했다”고 밝혔다.
세계 최대 육류가공업체 중 하나인 JBS는 지난달 31일 사이버 공격을 받은 사실을 발표했다. 회사 측은 이번 사건으로 인해 고객이나 공급자, 종업원의 데이터가 훼손된 것 같지는 않지만 “문제 해결에 시간이 걸리며 고객과의 거래가 지연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 15개국에 사업장을 두고 있는 JBS는 미국에서 쇠고기와 돼지고기 도축량의 20%를 담당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만약 이 회사가 하루라도 문을 닫게 되면 2만 마리 분의 쇠고기가 단 번에 사라지는 꼴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지난달 초에도 미국 최대 송유관 회사인 콜로니얼 파이프라인이 러시아 출신으로 추정되는 해커들의 랜섬웨어 공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 때문에 미 동부지역의 휘발유 공급이 며칠 간 중단되며 주유소마다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는 등 심한 혼란을 겪었다. 당시 러시아 정부는 배후설을 부인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이 러시아의 개입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하며 갈등이 고조된 바 있다. 올 4월에도 미국은 러시아의 대선 개입과 대규모 연방기관 해킹의 책임을 물어 러시아 외교관들을 추방했고 러시아도 이에 대한 보복으로 자국에 있던 미국 외교관들을 맞추방했다.
정육회사에 대한 이번 해킹 사건도 양국 간 긴장을 또다시 고조시킬 가능성이 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필 바이든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이달 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첫 정상회담을 열 예정이라 이에 대한 영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잇단 해킹 의혹을 비롯해 러시아의 약점인 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하겠다는 입장을 이미 밝힌 바 있다. 다만 장-피에르 부대변인은 이번 사건의 정상회담에 대한 영향을 묻는 질문에 “이번 회담은 미국의 이익을 수호할 결정적인 부분이고 양국이 함께 협력할 부분이 많이 있다”며 회담이 그대로 진행될 것임을 확인했다.
JBS는 이번 해킹 공격으로 일부 작업장 가동을 실제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만약 복구가 계속 지연되면 전 세계 육류 공급에 차질이 빚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JBS 측은 1일 저녁 성명을 내고 “사이버 공격 해결에 진전을 보이고 있으며 2일부터 대부분의 공장이 가동을 재개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