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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이철희]‘줄타기 외교’ 바뀐 것은 없다

입력 | 2021-06-03 03:00:00

韓美 공동성명, 美日 회담과 비교해보니
半클릭 ‘변침’… 美中 ‘낀 외교’는 그대로



이철희 논설위원


5·21 한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의 대(對)중국 외교 기조가 바뀌었다는 평가가 있다. 공동성명에서 대만 문제에다 남중국해, 쿼드(Quad·미국 일본 인도 호주 4개국 협의체)까지 거론한 것을 두고 친중(親中)에서 반중(反中)으로 노선을 변경했다고도 한다. 과연 그럴까. 그 텍스트를 짚어보고 4월의 미일 정상회담 결과와도 비교해봤다.

한미, 미일 회담 결과는 각각 공동성명(joint statement)과 부속 설명서(fact sheet)로 나왔다. 한미 성명은 영문 기준으로 2641단어, A4 용지로 8장가량이다. 4년 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첫 회담 때 나온 성명(1578단어)보다 훨씬 길다. 거기에 비슷한 분량(2428단어)의 설명서까지 추가됐다. 미일 공동성명(2117단어)과 설명서(1271단어)보다도 길기는 하지만, 그 전개 방식이나 흐름에선 별 차이가 없다. 설명서 형식은 거의 판박이다.

미일 성명에는 ‘중국’이 다섯 차례 적시됐다. ‘국제적 규범 질서에 부합하지 않는 중국의 행동’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불법적 영유권 주장과 활동’이라고 중국을 직접 겨냥했다. 나아가 대만 문제는 물론 ‘홍콩과 신장위구르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심각한 우려’도 표명했다. 반면 한미 성명에는 ‘중국’이라는 단어가 없다. 대만 문제가 포함된 것은 분명한 메시지겠지만 ‘대만해협에서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는 게 전부다. ‘홍콩과 신장위구르’ 문제는 빠졌다. 남중국해 부분도 미일 성명보다 한결 완화된 원칙적 표현이 담겼다.

중국을 간접 겨냥한 대목에서도 한미 성명은 미국의 ‘자유롭고 개방된 인도태평양’ 전략을 언급했지만 그것은 ‘한국의 신(新)남방정책과 연계하기 위해 협력한다’는 내용으로 담았다. 쿼드 역시 한국이 그간 표방해온 개방성 투명성 포용성의 다자주의 원칙과 함께 엮어놓았다. 코로나19 기원 논란과 관련해선 ‘투명하고 독립적인 평가와 분석’을 명시했지만, 미일 성명에 있는 ‘(중국의) 간섭과 부당한 영향력 배제’라는 표현은 빠졌다.

또 한 가지, 한미 성명에는 구체적 액수까지 명시된 국제적 기여 또는 투자 약정이 곳곳에 담겨 있다. 한국은 코로나19 백신 지원 프로젝트인 코백스AMC에 ‘상당한 증액’을 약속했다. 글로벌보건안보구상(GHSA)에 ‘5년간 2억 달러’를 기여하고, 미국이 난민 문제로 골치를 앓는 중미 3개국에 ‘4년간 2.2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 미일 사이엔 차세대 이동통신망(5G, 6G) 연구개발에 미국이 25억 달러, 일본이 2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한 게 유일한 금액 약정이다. 한국도 여기에 10억 달러를 약속했다.

물론 외교에서 문서는 일부일 뿐이다. 나아가 눈에 띈 몇 가지 단서로 전반을 평가해서도 안 된다. 다만 “중국 입장에선 한국을 높이 평가할 것”이라는 외교부 차관의 말도, “조 바이든 대통령이 원래 상대방을 띄워놓고 뒤로 빼간다”는 야당 원내대표의 말도 공동성명을 뜯어보면 과히 틀리지 않다. 그런 발언이 적절했는지는 논외로 치더라도 말이다.

아울러 미국의 은근한 압력에 문재인 정부의 외교노선이 미국 쪽으로 얼마간 옮겨간 것은 맞아 보인다. 그것은 전임자와 달리 동맹과 함께 가는 바이든 대통령을 상대로 한 주고받기 외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그런 변침(變針)이 이제야 제정신을 차린 인식의 돌변이라거나 그 반대로 역풍을 걱정할 노선 변경이라는 해석은 무리가 아닐까 싶다.

이철희 논설위원 klim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