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역에 ‘임금을 보필하는 건 호랑이를 동반하는 것과 같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위험하다는 뜻이다. 2인자의 가장 큰 덕목이 절대적인 충성심이라는 건 두말할 나위가 없다. 조선 개국 초 정도전과 달리 천수를 누린 하륜처럼 말이다. 최고의 한 자리를 향한 권력 의지, 즉 발톱이 아예 없거나 이를 끝까지 숨겨야 한다. 김종필 전 총리가 문민정부 시절 김영삼 대통령을 홍곡(鴻鵠)으로 치켜세우고 자신은 연작(燕雀)으로 낮췄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회자되지만, 끝내 팽을 당한 것을 보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북한은 전 세계 어느 국가보다도 권력 2인자들의 부침이 심하다. 아니, 2인자가 있긴 했나 싶기도 하다. 장성택 사건이 단적으로 보여준다. 어린 조카 김정은의 집권 후 2인자 행세를 하던 장성택은 “건성건성 박수치며 오만불손하게 행동했다”는 등 불충에 대한 책임으로 전격 처형됐다. 이후 김정은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당시 미 대통령이던 트럼프에게 참수된 시신을 전시해 간부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져 또 한번 세계를 경악하게 했다.
▷장성택 처형 후 확고한 권력을 구축한 김정은 체제에서 그나마 2인자 소리를 가장 많이 들은 인물은 여동생 김여정이다. 김영남 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상징적 수반이었고, 이 자리를 최룡해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이어받았지만 역시 공식 서열 2위일 뿐이다. 백두혈통 김여정을 위한 자리라는 관측과 함께 조용원 당 조직담당 비서를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조용원은 최근 김정은을 밀착 수행하며 새로운 실세로 떠올랐다. 통치 스트레스 분산용인지, 향후 정책 실패를 전가시키기 위한 희생용인지 전문가들 해석이 분분하다. 아직 공석이든, 누가 자리를 맡았든 분명한 건 그 대리인에겐 ‘신기(神技)의 처세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용관 논설위원 yonga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