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서울 중구 CJ대한통운 본사 앞에서 전국택배노조 관계자들이 긴급기자회견을 연 뒤 “CJ대한통운은 교섭에 나서라”고 외치고 있다. 이날 중앙노동위원회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단체교섭 요구를 거부한 것이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뉴스1
원청업체가 하청업체 노동조합의 단체교섭 요구에 직접 응해야 한다는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나왔다. 중노위는 2일 전국택배노동조합이 CJ대한통운을 상대로 제기한 ‘단체교섭 거부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에 대해 노조의 손을 들어줬다. CJ대한통운은 개별 대리점(하청업체)과 계약을 맺고 있는데, 대리점과 계약한 택배기사들이 CJ대한통운에 근로조건 개선 등을 요구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과도 단체교섭을 할 수 있게 되면 택배업계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쳐 혼란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번 판정은 1심에 해당하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결정을 뒤집은 것이다. 서울지노위는 지난해 11월 CJ대한통운이 택배기사의 사용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노조 신청을 각하했다. 당시 ‘단체교섭 당사자와 사용자 개념을 계약관계가 없는 제3자에게 확장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가 인용됐다. 하지만 중노위는 CJ 측이 택배기사와 계약 관계는 없지만 근로여건에 직접 영향을 미치므로 단체교섭을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하청 노동자의 근로여건에 얼마나 영향을 미쳐야 원청에 교섭 책임이 있는지 모호하다는 점이다. 중노위는 “구조적인 지배력 내지는 영향력”을 내세웠는데 이 또한 명확하지 않다. 이 때문에 퀵서비스 기사나 방문 판매원처럼 택배기사와 유사한 경우는 물론, 조선 자동차 등 여러 분야에서 원청 상대 교섭 요구가 급증할 가능성이 커졌다.
하청 구조는 기업 간 자율적인 계약의 결과다. 기업 규모가 크다고 해서 적법한 계약 관계를 허물고 원청업체에 과중한 책임을 지우는 것은 옳지 않다. 더구나 원청업체의 ‘영향력’이라는 모호하고 포괄적인 근거로 단체교섭 상대를 정하면 산업계 혼란과 함께 노사 갈등을 초래할 뿐이다. CJ 측은 법정 소송을 예고했는데, 어떤 판결이든 명확한 요건이 제시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