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 지방 붉은 귤나무, 겨울 지나도 여전히 푸른 숲을 이루네.
어찌 이곳 기후가 따뜻해서랴, 스스로 추위 견디는 본성이 있어서지.
귀한 손님께 드릴 수 있으련만 어쩌랴, 첩첩이 길 막히고 아득히 먼 것을.
운명은 그저 만나기 나름이려니 돌고 도는 세상 이치를 억지로 좇을 순 없지.
괜히들 복숭아나 자두를 심으라지만 이 나무라고 어찌 시원한 그늘 없으랴.
江南有丹橘, 經冬猶綠林. 강남유단귤, 경동유녹림.
豈伊地氣暖. 自有歲寒心. 기이지기난. 자유세한심.
可以薦嘉客, 奈何阻重深. 가이천가객, 내하조중심.
運命惟所遇, 循環不可尋. 운명유소우, 순환불가심.
徒言樹桃李, 此木豈無陰. 도언수도리, 차목기무음
-‘인생 소회’(감우·感遇)제7수·장구령(張九齡·678~740)》
이 시는 당 현종 시기 명재상 반열에 올랐던 장구령이 조정에서 밀려나 강남땅으로 좌천되었을 때 지은 작품. 시인은 현종과의 사이가 ‘첩첩이 막히고 아득히 멀어진’ 처지임을 감내하며 이 상황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붉은 귤처럼 귀한 분을 향한 붉은 마음을 오롯이 간직한 채. 한데 세상 사람들이여, 외양이 화려한 복숭아나 자두나무에만 너무 집착하지 마시라. 맛과 향기와 함께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역할이라면 귤나무 역시 하등 손색이 없으니 말이다.
이준식 성균관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