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vel 아트로드]대나무-정자의 고장 담양

담양 ‘한국대나무박물관’ 뒤편 대숲. S자로 이어진 나무 산책길 주변에는 요즘 ‘우후죽순’처럼 올라오는 죽순을 구경할 수 있다.
《전남 담양은 지금 죽순의 계절이다. 새로 난 죽순이 하루 30∼40cm씩 자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세상은 멈춰버렸지만, 대나무 숲속에서는 매일 어른 팔뚝만 한 죽순이 쑥쑥 올라온다. 죽순의 생명력은 놀랍기만 하다.죽순은 대나무의 땅속줄기에서 나오는 어린 줄기다. 4월 맹종죽부터 시작해 5월 말∼6월 중순에는 분죽, 6월 중순에서 말까지는 왕죽의 죽순이 나온다. 대나무는 죽순이 나오고 약 40일 만에 키가 다 커버린다. 짧으면 10m, 길게는 20m까지 다 자란 이후에는 두꺼워진다. 대나무 죽순은 하루에 1m씩 자라기도 한다. “죽순에 모자를 걸어놨는데 다음 날 가보니 손이 안 닿았다”는 우스갯소리도 전해질 정도다.》
○ 담양 삼다리 대나무숲 ‘죽순회’
담양에는 유명한 대나무숲이 많다. 31만 m²의 공간에 울창한 대나무숲이 조성돼 있는 죽녹원은 연간 1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으며 영화 촬영 장소로도 인기다. 한국대나무박물관 뒤편 대나무품종원 산책로에도 한국에서 자생하는 다양한 대나무 품종을 한꺼번에 볼 수 있다.
그러나 담양에는 동네 뒷산에도 원시림 같은 대숲이 있는 곳이 많다. 대숲에 이는 시원한 바람소리를 듣고, 푸른 댓잎을 통과한 햇살의 따스한 기운을 온몸으로 느끼며 산책할 수 있는 조용한 길이 많다.
요즘 한창 올라오고 있는 죽순.
담양 삼다리 대나무숲의 찻집 ‘명가혜’ 국근섭 대표가 선보이는 ‘죽순회’
○가사문학과 정자문화의 본향, 담양
송강 정철의 ‘성산별곡’의 무대가 된 식영정.
소쇄원 입구에도 대나무숲이 사람을 맞는다. ‘칼의 노래’ ‘현의 노래’의 작가 김훈은 담양의 대숲을 ‘악기의 숲, 무기의 숲’이라고 표현했다. 대나무는 피리를 만들기도 하고, 활과 화살, 창과 같은 무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평상시에는 안락한 휴식과 음악을 주는 대숲은 나라가 어려울 때 의병들의 무기고 역할을 하기도 했다.
소쇄원의 계곡 위에 지어진 사랑채인 ‘광풍각’.
소쇄원 입구에는 ‘대봉대(待鳳臺)’라는 정자가 있다. 주변에는 봉황이 앉는 벽오동나무와 봉황이 먹는 열매인 죽실이 열리는 대나무밭이 있다. 또한 봉황이 마시는 맑은 샘물인 ‘예천(醴泉)’도 있다. 봉황은 스승 조광조가 꿈꾸었던 왕도정치를 펼칠 왕을 상징하는 새다. 담양에서 향토사 전문서점 ‘이목구심서’를 운영하고 있는 전고필 씨는 “소쇄원은 ‘직유’가 아닌 ‘은유’의 공간”이라며 “직접 대놓고 ‘우리가 혁명하겠다’고 말로 하는 대신, 왕도정치를 펼칠 지도자를 기다리는 은자로서의 철학을 건축에 심어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제월당에는 하서 김인후(1510∼1560)가 쓴 ‘소쇄원 48영시(詠詩)’가 걸려 있다. 소쇄원을 지은 양산보의 친구이자 사돈인 김인후는 소쇄원에 정신적, 영적인 의미를 부여한 성리학자다. 소쇄원에는 송순, 정철, 고경명, 기대승, 임억령 등 당대의 내로라하는 선비들이 모여들었다. 훗날 이들을 ‘소쇄원 시단(詩壇)’이라고 불렀다. 마치 유럽이 카페를 중심으로 철학과 시가 꽃피었던 것처럼, 소쇄원을 중심으로 당대 문학과 사상이 꽃피고 무르익었다.
영산강 상류인 자미탄, 창계천이 흘러드는 광주호의 비 오는 날 풍경. 주변에는 소쇄원, 식영정 등 유서 깊은 정자들이 즐비하다.
환벽당(環碧堂)은 말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처럼 둘러싸고 있는 정자’다. 요즘 환벽당은 온통 초록으로 뒤덮여 있다. 환벽당 아래에 있는 조대(釣臺)와 용소(龍沼)는 이 정자를 지은 사촌(沙村) 김윤제가 어린 정철을 처음 만난 곳이라는 이야기가 내려온다.
송순이 면앙정에서 지은 시조도 유명하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삼간 지어내니/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두고/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두고 보리라.” 세 칸 건물 중에 사람이 한 칸을 쓰고, 나머지 두 칸은 툭 터서 달과 바람, 온 강산의 경치를 끌어들인다는 건축의 원리다. 담양의 향토사학자 전고필 씨는 “이 시조에는 조선의 모든 정자와 정원에 적용되는 ‘차경(借景)’의 원리가 담겨 있다”고 해석했다.
글·사진 담양=전승훈 기자 raphy@donga.com
○ 가볼 만한 곳
담빛예술창고의 명물인 대나무로 만든 파이프오르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