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노벨상수상자 무리한 인용이 발단 스위스 기본소득 부결 해석 자의적 “사기성 포퓰리즘” 비판 극복하려면…
천광암 논설실장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의 아브히지트 바네르지 교수와 에스테르 뒤플로 교수는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부부이자 사제 사이로 개발도상국 빈곤 문제에 정통한 두 사람은 2019년 말 ‘힘든 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이라는 공동 저서를 내놨다.
이 책을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읽었는지 여부를 놓고 정치권에서 때아닌 설전이 벌어졌다. 발단은 이 지사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을 겨냥해 4일 오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 이 지사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배너지(이하 바네르지로 표기) 교수와 사기성 포퓰리즘이라는 유승민 의원 모두 경제학자라는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요?”라고 질문을 던진 뒤 “배너지 교수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고, 유승민 의원님은 뭘 하셨는지 몰라도…”라며 유 전 의원을 공격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이 “책은 읽어 보셨나요? 아전인수도 정도껏 하십시오”라고 응수하고 나선 것이다.
바네르지 교수 부부가 자신들의 저서에서 주장한 것은 ‘울트라 기본소득’이다. 기본소득은 모든 국민을 한 명도 빠짐없이 지원 대상으로 하지만 이들이 예시한 울트라 기본소득은 소득 상위계층(25%)을 제외한다. 또한 지원금액 규모에서도 기본소득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 지사의 인용이 무리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이 이 중 어디에 속하는지는 책에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뒤플로 교수가 작년 11월 한 기자회견의 답변에서 충분한 유추가 가능하다. 그는 한국을 “경제 규모가 크고 많이 발전한 나라”라고 하면서 “(한국은) 어떤 사람을 언제 지원해줄지 판단할 수 있는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즉 부유한 나라이고 복잡한 복지 프로그램을 운용할 관리 역량을 갖춘 나라로 본 셈이다.
이런 점들을 윤 의원과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나서서 지적했지만 이 지사는 명확한 해명을 하지 않았다. 대신 5일 오전 SNS를 통해 한국은 ‘전체적으로 선진국이지만 복지는 후진국이어서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추가로 내놨다. 그러면서 이 지사는 2016년 기본소득 법제화가 국민투표에 부쳐졌으나 76.9%의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된 스위스의 사례도 거론했다. 이런 내용이다.
“복지선진국은 사회안전망과 복지체계가 잘 갖춰져 있고 조세부담률이 높아 기본소득 도입 필요가 크지 않고, 쉽지도 않습니다.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이미 높은 조세부담률을 무리하게 더 끌어올리거나 기존 복지를 통폐합해 기본소득으로 전환시키는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같은 복지선진국에서 기본소득 제안 국민투표가 부결된 이유가 이해되시지요?”
그러나 이는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다. 스위스는 과도한 공공복지를 지양하고, 일관되게 가벼운 세금 정책을 펴온 나라다. 일명 ‘복지 느림보’다. 이 지사는 한국이 복지후진국이라는 근거 중 하나로 “OECD 평균에 한참 미달하는” 국민부담률(국민이 낸 세금과 사회보장성 기금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들었는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2019년 스위스의 국민부담률은 28.5%로 37개국 중 30위다. 한 순위 낮은 한국에 비해서는 불과 1.1% 높은 수준이다. 1.1%가 복지선진국과 복지후진국을 가르고 기본소득의 필요성을 재단하는 기준이 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