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강 신동아팀 차장
책상 위에는 두 학자가 펴낸 책 두 권이 놓여 있다. 이들은 같은 대학에서 강의를 했고, 50대 초반에 개혁을 외치다 좌절한 뒤 인고의 시간 끝에 최근 책을 펴냈다.
한 학자는 노무현 청와대에서 대통령정보과학기술보좌관으로 일했다. 대통령과 ‘계급장 떼고’ 토론을 하고 지식기반산업사회를 꿈꾸며 개혁을 시도했다. 과학기술부 장관을 부총리로 승격시켰고, 이공계 박사 50명을 특채해 부처에 전진 배치하며 새바람을 불어넣었다. 그러나 야당과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에 실의에 빠졌고, 자의 반 타의 반 청와대를 떠나야 했다. ‘하늘이 준 기회를 날렸다’는 울분이 밀려오면 옥상에 올라 고함을 쳤다. ‘수상한 느낌’을 받은 경비원이 뒤쫓아 온 적도 다반사였다.
불면의 밤을 보내던 어느 날 새벽, 그는 “조광조는 학문이 완성되기 전에 세상을 바꾸려 했기에 실패했다”는 율곡 선생의 ‘석담일기’ 한 구절에 돈오(頓悟)한다. 자신을 공격한 관료와 야당, 언론을 설득할 만큼의 학문이 완성되지 않았음을 성찰하고는 도시락을 싸서 다니며 연구에 몰두했다. 누구나 탐내는 공직도 고사했다. 사적 모임에 참석하지 않으니 ‘요양병원에 갔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 15년 인고의 시간에 ‘패권의 비밀’ 등 책 5권을 냈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절박함으로 ‘한국의 시간’도 최근 펴냈다. 글로벌 경제 패권의 이동 속에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 국민이 다시 ‘승자가 되는 길’을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써 내려갔다. 이 학자는 김태유 서울대 산업공학과 명예교수(70)다.
개혁에 좌절한 한 학자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의 미래를 대비하고, 개혁에 좌절한 또 다른 학자는 가족의 피를 찍어 글 쓰는 심정으로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대비한다. 두 학자의 인고의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배수강 신동아팀 차장 bs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