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감염 1년, 이태원 부활 날갯짓
“부모님이 오랫동안 장사하셨던 자리예요. 가뜩이나 ‘이태원 집단감염’으로 이미지도 안 좋은데 무슨 개업이냐고 우려하는 분들도 있지만 청년들한테는 ‘위기가 곧 기회’가 될 수 있잖아요.”
6일 서울 용산구 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 인근에 있는 한 건물.
1층에 ‘24시간 순댓국집’이란 간판을 단 가게는 일꾼들이 오가며 매우 분주한 모습이었다. 89m²(약 27평) 남짓한 가게는 이미 기존 장식이나 기구는 다 거둬낸 뒤 깔끔한 철제 인테리어 소품 등을 들이고 있었다. 오랜 세월을 함께한 간판을 내리는 과정을 지켜보는 한국민 사장(28)은 감회가 새로운 듯했다.
○ 청년들이 되살리는 이태원 희망
한때 ‘유령동네’ 소리까지 들었던 이태원에 새로운 바람이 불고 있다. 이태원은 지난해 5월 관련 확진자가 300명 가까이 발생하는 클럽발 집단감염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후 방문객이 크게 줄자 상인들이 ‘영업제한을 풀어달라’며 연일 집단시위를 벌일 정도로 상권은 존폐 위기까지 겪었다. 하지만 최근 20, 30대 젊은 청년들이 이곳에 터를 잡으며 이태원은 다시 생기가 돌고 있다.4∼6일 둘러본 이태원은 이제 더 이상 휑한 동네가 아니었다. 몇 발자국마다 최근에 문을 연 세련된 매장을 마주칠 수 있었고, 곧 입점할 업소를 단장하는 공사도 곳곳에서 진행됐다. 대부분 20평(66m²) 안팎의 소담한 가게들이었다. 한 부동산 관계자는 “최근 이태원엔 개성 있는 소규모 업소가 많이 들어서고 있다. 용산구청 뒤편 골목 등은 초창기 이태원 분위기가 물씬 풍길 정도”라고 전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N 카페’를 운영하는 김건우 씨(왼쪽 사진)와 올해 2월 보광동 우사단길에 디저트카페를 개업한 박진오 씨가 서빙을 하고 있다. 청년들은 “코로나19가 심각했던 지역에서 가게를 내는 게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권리금이 없고 월세가 상대적으로 싸기도 해 창업을 결심했다”고 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올해 초 이태원에 곡물음료를 전문으로 한 ‘B 카페’를 낸 임성엽 씨(33)는 “코로나19로 건강에 관심이 높아진 이들을 타깃으로 했다”며 “일종의 ‘쇼룸’ 성격으로 가게를 내고 온라인 고객들에게 다가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 또다시 청년들 내모는 일 없어야
비싼 상권이던 이태원에 젊은 청년 창업가들이 몰리는 건 왜일까. 역설적이게도 코로나19로 인한 타격 때문이었다. 상권이 무너지며 이 일대 평균 월세가 내려갔고, 권리금 없이 나온 매장이 많았다. 큰 목돈을 마련하기 힘든 청년들로선 ‘도전’해 볼 여지가 생긴 셈이다. 용산구청 인근에 ‘N 카페’를 낸 김건우 씨(29)도 “주변에선 만류했지만 오히려 적은 비용으로 창업할 좋은 기회라 여겼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금의 이태원 청년 러시는 한때의 불꽃처럼 금방 꺼져 버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금은 급한 불을 끄느라 청년들에게 기회를 제공하지만 상권이 회복돼 다시 월세 등이 올라가면 이 열기를 되살린 청년들은 또다시 밀려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한 이태원 상인도 “과거 이태원만의 개성이 사라졌던 이유도 ‘젠트리피케이션’으로 기존 상인들이 쫓겨났기 때문”이라며 “청년들이 똑같은 아픔을 느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어려워도 시기를 늦출 수는 있다”며 “정부 등이 건물 지분을 매입해 점포가 퇴출되지 못하게 하거나 건물주에게 세제 혜택을 줘서 영세 상인을 내쫓지 못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조응형 yesbro@donga.com·오승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