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안타깝고 억울한 죽음 초래 軍인권-안보 위해 바로잡을 것” 성추행 피해 女중사 추모소 찾아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 철저 조사-병영문화 개혁 지시
文 “병영문화 폐습 송구”… 靑, 전수조사 검토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인 6일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중사 사건을 “병영문화의 폐습”으로 규정하고 “국민들께 매우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사과했다. 청와대 내부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 내 성추행 실태 등 병영문화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간 군 내부에서 사건을 은폐 축소하면서 곪아온 병영 폐습이 임계점을 넘은 만큼 강도 높은 개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헌화하는 文대통령 문재인 대통령이 현충일인 6일 오후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숨진 공군 이모 중사 추모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을 찾아 헌화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얼마나 애통하시냐. 국가가 지켜주지 못해 죄송하다”고 하자 이 중사의 아버지는 “딸의 한을 풀고 명예를 회복시켜 달라”고 호소했다. 왼쪽부터 문 대통령, 서욱 국방부 장관, 서훈 국가안보실장. 청와대 제공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성추행 등 폐습과 관련한 병영문화 전수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성추행 등 범죄에까지 왜곡된 상명하복 잣대를 들이대 부대 내 사건 사고를 축소 은폐하는 폐쇄적인 문화 탓에 문제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것. 비율이 7.4%인 여군을 동료로 인식하지 않는 남성 중심적 문화가 만연한 것도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사건 발생 뒤 가해자를 비롯해 부대 관계자의 회유, 협박이 공공연하게 이뤄지면서 비밀 유지와 피해자-가해자 분리, 신고 방해 금지가 명시된 군의 ‘부대관리훈령’도 사실상 사문화된 상태다. 그러다 보니 신고를 포기하는 장병도 상당수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대 내 성폭력 고충이 공정한 절차에 따라 처리되고 있다’고 답한 여군 비율은 48.9%로 2012년 실태조사(75.8%) 때보다 크게 줄었다. 군은 2015년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종합대책을 발표했지만 오히려 군의 조치를 불신하는 장병이 크게 늘어난 것이다. 군 당국자는 “군 내 일탈과 범죄를 서로 숨겨주거나 무마하고, ‘제 식구 감싸기’식 처벌로 일관하는 한 병영 폐습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군 11% 성희롱 피해… “신고한들 진급 불이익-따돌림만” 눈물
[軍 성범죄 파문]‘병영문화 폐습’ 대체 어떻기에
성추행 피해를 호소하다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이모 중사의 동료 부대원이 5일 오후 추모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을 찾아 조문하고 있다. 성남=뉴스1
○ 성폭행 등 병영폭력 실태 갈수록 악화
군내 폭행 및 가혹행위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군사법원이 지난해 10월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에게 제출한 군내 폭행 가혹행위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6월까지 총 4275건이 발생했다. 2011∼2015년 6월까지의 발생 건수(3643건)에 비해 600여 건이 증가한 수치다. 올해 1월 축구를 하던 중 공을 가로챘다는 이유로 간부에게 무릎을 가격당해 슬개골 골절상을 입은 육군 22사단 병사는 “가해자가 ‘남자답게 해결하자’고 압박하거나 행정보급관이 신고를 막았다”고 말했다. 2014년 상습 구타와 가혹행위로 인한 ‘윤 일병 사망 사건’이 발생한 뒤 군은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를 발족해 병영문화 쇄신과 복무환경 개선책을 발표했지만 ‘공염불’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 계급·진급 악용한 ‘폐쇄적 카르텔’이 주범
각종 병영 폐습이 뿌리 뽑히지 않는 주된 요인으로 ‘계급’을 악용하고 진급을 ‘미끼’로 사건을 축소·은폐하는 군내 ‘폐쇄적 카르텔’이 지목된다. 군 관계자는 “철저한 대책과 매뉴얼을 만들어도 사건 사고가 나면 출신별 지휘관계를 앞세워 ‘조직 보호’를 명분으로 쉬쉬하고 방관하는 군내 부조리 문화가 병영폐습을 악순환시키는 주범”이라고 말했다.실제로 이 중사 사건은 8년 전 상관의 성추행과 협박, 가혹행위 등에 10개월간 시달리다 약혼자를 두고 스스로 생을 마감한 오모 여군 대위 사건의 ‘재판(再版)’이라는 지적이 많다. 당시에도 오 대위 주변에는 가해자의 횡포를 인지한 이들이 있었지만 관련 수사는 오 대위의 유서가 발견된 뒤에야 시작됐다. 조직적인 축소·은폐 의혹도 제기됐다. 일선 부대의 한 위관급 여군 장교는 “성추행 피해를 신고해봐야 진급 등에서 불이익과 부대 내 따돌림을 당할 텐데 그냥 운이 나빴다면서 넘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말했다.
국방부의 2019년 군 성폭력 실태조사에서도 피해 경험을 신고한 비율은 32.7%에 그쳤다. 미신고 응답자들의 44%가 ‘아무 조치도 취해질 것 같지 않았다’고 답했다. 성폭력 사건 발생 때마다 군이 발표하는 가해자 엄정처벌 등 뒷북 대책이 거의 신뢰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