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광이 한창일 때 그린 ‘작은 탄천의 노을’(2008년). 탄가루를 비롯한 온갖 삶의 찌꺼기가 흐르는 탄천 위로 쏟아지는 황금빛 노을을 묘사했다.
암흑이다. 온통 검은 상처로 얼룩져 있다. 까만 바탕에 파란 메탈지그, 곧 가짜 미끼가 둥둥 떠다니고 있다. 미끼는 물고기를 잡기 위한 장치다. 과연 미끼는 고기만 잡으려는 낚시 도구에 불과한 것인가. 인간들의 현대사회에 미끼는 없는가. 미끼 뒤의 검은 바탕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는 얼굴 하나. 젊은 여성의 그늘진 표정이다. 바로 선탄부(選炭婦), 고달픈 삶을 이끌고 가야 하는 탄광촌의 생활인이다. 누가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메탈지그와 선탄부’(2004∼2009년), 바로 황재형 화가의 유화 작품이다.
황재형 화가의 ‘메탈지그와 선탄부’(2004∼2009년). 광산촌 현실과 현대사회의 모순을 메탈지그 미끼로 풍자했다.
선탄부의 남편은 원래 광부였다. 하지만 그의 남편은 죽었다. 막장인생이라는 광부의 일생, 바로 고통의 연속이다. 매몰 사고도 많았다. 그래서 광산촌에는 배우자를 잃은 여성이 많다. 석탄 회사는 이들 유가족의 생계 유지책으로 선탄부 자리를 마련해 준다. 과부들의 직장. 이들은 채굴한 석탄 속의 돌 같은 이물질을 골라낸다. 석탄은 거대한 암반의 압박에 눌려 탄화된 것, 바로 극한 상황에서의 결정물이다. 채광 작업은 돌을 깨야 하는 노동이므로 돌과 석탄이 섞여 나올 수밖에 없다. 한 선탄장에 최소 40명 이상의 여성 일꾼이 모여 노동 강도를 높이고 있다. 죽은 광부의 부인들. 이들은 세 개의 하늘을 지고 산다. 광부가 보는 광산촌의 하늘, 막장 속의 하늘(깜깜한 어둠), 남편 사망 이후 선탄부의 한스러운 하늘. 바로 이런 하늘이다. 선탄부의 몫은 한스러운 하늘이다.
황재형은 미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연고가 없는 강원도 태백 광산촌에서 살고 있다. 그는 직접 광부가 됐다. 현실을 제대로 알기 위한 선택이 막장이었다. 폐광된 이후에도 그는 광산촌 노을을 지키면서 작업하고 있다. 그의 생각은 단순하다. 막장은 광산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대도시 서울에도 있다는 것. 1980년대 이래 펼친 그의 리얼리즘은 한국 미술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에 충분했다. 단단한 화면 구성과 치밀한 사실적 묘사, 그러면서도 스토리텔링이 듬뿍 스며 있는 작품. 대중적 관심사의 중심에 위치하게 되었다.
전시장에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정말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황재형 개인전에서는 이런 풍경을 가끔 목도할 수 있다. 왜 그럴까. 황재형의 작품은 그만큼 감동의 울림을 담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진정성 있는 작품은 관객에게 직접적으로 전달되어 감정의 샘을 건드린다. 그의 출세작이라 할 수 있는 ‘황지 330’(1981년)은 죽은 광부의 낡은 작업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인간성보다 번호로만 존재해야 하는 광산촌의 현실을 상징한 작품이다. ‘작은 탄천의 노을’(2008년)은 언뜻 아름다운 풍경 같지만 광산촌의 탄가루와 온갖 오물로 뭉쳐진 작은 개울, 그것도 석양에 여울지는 마을 풍경을 묘사한 걸작이다. 참담한 현실일지라도 화가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광산촌 노을을 아름답게 표현했다. 광산촌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늙고 주름진 표정의 인물들. 할머니 초상의 ‘존엄의 자리’(2010년)나 ‘아버지의 자리’(2011∼2013년) 같은 작품은 사진보다 더 섬세하여 울림을 강하게 전달해 준다. 이런 식으로 황재형은 광산촌의 자연과 인물을 다양한 각도에서 취재하여 화면에 옮겼다.
황재형의 국토 예찬은 그의 ‘백두대간’(1993∼2004년) 같은 대작에서 발휘됐다. 헬리콥터에 올라 백두대간을 관찰하고, 또 그 품 안에 살면서, 동거인 입장에서 자연을 그렸다. 그의 꿈은 갈 수 없는 북부 한반도의 백두대간을 답사하고 화면에 옮기는 것이다. 하지만 분단 조국은 화가의 꿈을 실현시킬 수 없게 막고 있다. 그의 관심사는 백두대간을 넘어 바이칼호수의 ‘알혼섬’(2016년)에까지 뻗치고 있다.
그동안 황재형은 일상생활의 폐기물을 작품 재료로 재활용하기를 좋아했다. 흙을 미술재료로 사용하기도 했지만, 한동안 그의 개인전 명칭은 ‘쥘 흙과 뉠 땅’이었다. 가난한 민초의 입장에서 한 줌이라도 쥘 흙 혹은 몸 하나 뉠 땅조차 제대로 없는 현실을 증거하기도 했다. 물론 ‘삶의 무게와 땀의 무게’는 그가 평생 추구한 예술 세계이기도 하다. 근래 그는 머리카락을 활용하여 작업한다. 수십만 개의 머리카락, 이를 캔버스에 일일이 부착하면서 형상을 일구는 지난한 작업. 머리카락으로 제작한 풍경과 인물은 묘한 울림을 전달한다. 마치 유화처럼 보이는 ‘우리는 늘 소가 넘어갑니다(속아 넘어갑니다)’(2012∼2018년)는 머리카락 작업의 압권이다. 도살장에서 쓰러지는 소의 머리 부분. 캔버스 위에 넘어가는 소로 우리 인간 사회에서 속아 넘어가는 현실을 풍자한 작품이다.
약 13m에 이르는 대형 ‘메탈지그’(2021년) 설치작품.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미끼는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회천’ 전시에서 볼 수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다시 선탄부로 돌아가 보자. 땀과 탄가루로 범벅이 된 얼굴. 광산촌에서 가장 약한 고리로 남았던 존재, 그렇지만 생활을 담보해야 하는 현실. 황재형은 막장 현실을 실감나게 화면에 담았다. 하지만 메탈지그는 무엇인가. 현대 소비사회는 무수한 상품으로 편리함을 제공한다. 포장만 훌륭한 상품도 많다. 그러니까 현대사회에 떠돌고 있는 가짜 미끼는 너무나 많다. 화가는 광산촌 현실과 현대사회의 모순을 미끼로 풍자,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럴까. 서울 삼청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8월 22일까지 열리는 황재형 개인전 ‘회천回天’의 대미(大尾)는 약 13m에 이르는 대형 ‘메탈지그’ 설치작품으로 장식했다. 끔찍할 정도로 거대한 미끼. 날카로운 바늘을 달고 있는 미끼. 과연 누구를 노리는 미끼일까. 선탄부의 한 많은 하늘은 아직도 살아 있는데.
윤범모 국립현대미술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