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상승 압력에 민간 빚 부담 커질 수도 정책 핵심은 개인이 직면한 문제 해결 지원금 수혈로 골목상권 숨통부터 틔워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 시카고에 살다가 지난해 귀국한 지인이 얼마 전 620만 원에 해당하는 돈이 자신의 미국 계좌에 입금됐다고 자랑했다. 미국 국세청이 가족 1인당 약 155만 원의 지원금을 경기 진작 명목으로 보내준 것이다. 그는 돈을 놔뒀다가 온라인 쇼핑에 쓰겠다고 했다. 그래서 농반진반으로 ‘미국 정부가 석 달 안에 시카고 상권에서만 쓸 수 있게 신용카드 충전 방식으로 돈을 줬더라면 미국 경기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라고 질문했던 일이 있다.
지원금을 줄 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간과 공간을 특정하면 정책 의도와 먼 쪽으로 가는 돈의 흐름을 어느 정도 원하는 쪽으로 돌릴 수 있다. 온라인으로 갈 돈을 지역 상권에서 돌게 할 수 있다. 일정 기간 후 가치가 줄어들게 하면 마이너스 금리 효과도 낼 수 있다. 사용처를 제한하면 특정 조건 사업장에 매출을 몰아줄 수도 있다.
지금 논의되는 재난지원금은, 시간적으로는 코로나19 회복 국면에, 공간적으로는 골목상권에서 쓰이게 만들어야 한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수출과 자산시장 중심 회복이다. 수출로 번 돈이 골목상권으로 흐르는 낙수효과는 잦아든 지 오래다. 위쪽의 돈은 자산시장에서 맴돌고, 아래쪽에선 빚이 쌓이는 형국이다. ‘K자’형 회복이 양극화를 심화시키지 않게 하려면 스마트하게 프로그램된 지원으로 돈을 골목상권으로 순환시켜야 한다.
한국은 이 위험이 더 크다. 주요 선진국에선 코로나 위기 때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원으로 민간의 부담을 떠안았지만, 한국은 금융지원으로 각자 빚내서 버티는 쪽에 주력했다. 앞으로 빚 상환 유예 기간이 끝나면 민간, 특히 소상공인 부문에서 빚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이 금리 상승을 용인하는 추세이므로 한국도 금리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간이 빚을 갚아야 할 시점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비책의 하나로 정부가 손실보상 명목으로 빚을 떠안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한국은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24%로 개도국형 구조를 못 벗어나고 있다. 이 비중이 10% 이하인 미국 일본 독일과는 문제의 차원이 다르다. 이 상황에서 빚 후유증에 대비하는 가장 현실적 방법은 소상공인의 매출을 호황 수준으로 늘려줘 부작용 없이 빚 부담을 줄이게 하는 것이다.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소상공인들에게 매출을 몰아주도록 지원금의 기한과 사용처를 특정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1인당 20만 원만 써도 10명이 한 사업장 매출을 늘려주면 200만 원이다. 이 돈이 자산시장에 흡수되지 않고 지역 상권에서 돌면 더 큰 효과가 따라온다.
그렇다면 지원금은 보편이 좋은가 선별이 좋은가. 미국의 이번 지원금은 연소득 1억2500만 원(가장), 8330만 원(가구원) 이하면 똑같이 1인당 155만 원씩 지급했다. 그 위 소득구간에 대해선 지원금을 점차 줄이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보편 위주에 선별을 가미했다.
비슷한 방식을 쓸 수 있지만, 한국은 영세자영업, 비정형 노동 등 실시간 소득 파악이 어려운 분야가 너무 크다. 형평성 논란이 일고 선별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일단 전 국민에게 1인당 일정 금액의 보편지원금을 주되 코로나 위기가 완전히 끝난 후 일부 회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사회연대세를 만들어 나중에 지원금 범위 내에서 소득에 비례해 돈을 회수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