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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 소상공인 매출 확대가 핵심이다[동아광장/하준경]

입력 | 2021-06-09 03:00:00

금리상승 압력에 민간 빚 부담 커질 수도
정책 핵심은 개인이 직면한 문제 해결
지원금 수혈로 골목상권 숨통부터 틔워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미국 시카고에 살다가 지난해 귀국한 지인이 얼마 전 620만 원에 해당하는 돈이 자신의 미국 계좌에 입금됐다고 자랑했다. 미국 국세청이 가족 1인당 약 155만 원의 지원금을 경기 진작 명목으로 보내준 것이다. 그는 돈을 놔뒀다가 온라인 쇼핑에 쓰겠다고 했다. 그래서 농반진반으로 ‘미국 정부가 석 달 안에 시카고 상권에서만 쓸 수 있게 신용카드 충전 방식으로 돈을 줬더라면 미국 경기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요’라고 질문했던 일이 있다.

지원금을 줄 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시간과 공간을 특정하면 정책 의도와 먼 쪽으로 가는 돈의 흐름을 어느 정도 원하는 쪽으로 돌릴 수 있다. 온라인으로 갈 돈을 지역 상권에서 돌게 할 수 있다. 일정 기간 후 가치가 줄어들게 하면 마이너스 금리 효과도 낼 수 있다. 사용처를 제한하면 특정 조건 사업장에 매출을 몰아줄 수도 있다.

지금 논의되는 재난지원금은, 시간적으로는 코로나19 회복 국면에, 공간적으로는 골목상권에서 쓰이게 만들어야 한다. 경기가 회복되고 있지만 수출과 자산시장 중심 회복이다. 수출로 번 돈이 골목상권으로 흐르는 낙수효과는 잦아든 지 오래다. 위쪽의 돈은 자산시장에서 맴돌고, 아래쪽에선 빚이 쌓이는 형국이다. ‘K자’형 회복이 양극화를 심화시키지 않게 하려면 스마트하게 프로그램된 지원으로 돈을 골목상권으로 순환시켜야 한다.

세금이 많이 걷혔으니 정부 부채부터 갚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정부 빚보다는 내수경기와 민간 빚 문제가 우선이다. 코로나 이후 회복 과정에서 소상공인의 빚 후유증(debt hangover)이 크게 우려되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아져 가계와 기업이 흑자를 보더라도 과거에 쌓인 빚이 너무 많아 번 돈을 빚 갚는 데 다 쓰게 되면 당장 소비와 투자를 못해 경기가 다시 위축된다. 유럽과 일본이 과거 위기 이후 재정 건전화를 성급히 시도하다 이런 빚 후유증 때문에 불황에 거듭 빠졌던 사례들이 있다.

한국은 이 위험이 더 크다. 주요 선진국에선 코로나 위기 때 정부가 대규모 재정지원으로 민간의 부담을 떠안았지만, 한국은 금융지원으로 각자 빚내서 버티는 쪽에 주력했다. 앞으로 빚 상환 유예 기간이 끝나면 민간, 특히 소상공인 부문에서 빚 후유증이 나타날 수 있다. 게다가 미국이 금리 상승을 용인하는 추세이므로 한국도 금리 상승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민간이 빚을 갚아야 할 시점에 부담이 커질 수 있다.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비책의 하나로 정부가 손실보상 명목으로 빚을 떠안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한국은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중이 24%로 개도국형 구조를 못 벗어나고 있다. 이 비중이 10% 이하인 미국 일본 독일과는 문제의 차원이 다르다. 이 상황에서 빚 후유증에 대비하는 가장 현실적 방법은 소상공인의 매출을 호황 수준으로 늘려줘 부작용 없이 빚 부담을 줄이게 하는 것이다. 재난지원금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소상공인들에게 매출을 몰아주도록 지원금의 기한과 사용처를 특정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1인당 20만 원만 써도 10명이 한 사업장 매출을 늘려주면 200만 원이다. 이 돈이 자산시장에 흡수되지 않고 지역 상권에서 돌면 더 큰 효과가 따라온다.

그렇다면 지원금은 보편이 좋은가 선별이 좋은가. 미국의 이번 지원금은 연소득 1억2500만 원(가장), 8330만 원(가구원) 이하면 똑같이 1인당 155만 원씩 지급했다. 그 위 소득구간에 대해선 지원금을 점차 줄이는 방식으로 설계했다. 보편 위주에 선별을 가미했다.

비슷한 방식을 쓸 수 있지만, 한국은 영세자영업, 비정형 노동 등 실시간 소득 파악이 어려운 분야가 너무 크다. 형평성 논란이 일고 선별 비용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일단 전 국민에게 1인당 일정 금액의 보편지원금을 주되 코로나 위기가 완전히 끝난 후 일부 회수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사회연대세를 만들어 나중에 지원금 범위 내에서 소득에 비례해 돈을 회수하는 것도 생각해볼 수 있다.

온라인에서 쓸 것을 골목에서 쓰게 하고 돈을 줬다 나중에 걷으면 조삼모사 같은 것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경제정책의 많은 부분은 개개인이 직면한 시간과 공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소상공인이 빚에 눌려 힘든 시간을 겪을 때 재정으로 신속히 매출을 도와 빚 후유증을 예방하고, 나중에 민간이 정상화돼 여유가 생겼을 때 재정을 건전화하면 된다. 정부는 성급히 재정긴축에 나서기보다 나라 경제 전체를 보고 긴 시계(視界)에서 정책을 펴야 한다.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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