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장편 발표 직후 불의의 사고
하반신 마비돼 1급 지체장애 얻어
단편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
좌절하는 인물 통해 희망 이야기

황시운 작가는 “사고를 당하고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운이 좋다. 손으로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쓸 수 있어 감사하다”고 말했다. 황시운 작가 제공

지난달 25일 소설집 ‘그래도, 아직은 봄밤’(교유서가)을 펴낸 그는 7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추락한 뒤 병원에 실려 갔을 때는 내가 다쳤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고 담담히 말했다. 사고 직후 응급차로 서울로 이송된 뒤 병원에서 3차례 대수술을 했지만 최고의 순간 찾아온 최악의 비극을 차마 받아들이지 못했다는 것. 그는 “6개월에 걸쳐 치료와 재활에 힘썼지만 흉추가 부러져 신경이 망가진 사실을 바꿀 순 없었다.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고 나서야 현실을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황시운은 2007년 신춘문예 단편소설로 등단했다. 학원 강사로 일하며 문학을 독학한 지 7년 만이었다. 신인 작가에게 현실은 가혹했다. 수차례 계간지에 작품을 기고하다 공모전에 도전했다. 그 결과가 2010년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컴백홈이었다. 이를 통해 작가로서의 자립을 꿈꿨다.
소설을 써냈지만 책을 다시 낼 수 있을 거라고 믿지 못했다. 자존감이 바닥까지 내려갔다. ‘책을 내는 건 종이 낭비가 아닐까’ ‘소설을 제대로 쓴 걸까’. 지난해 출판사 연락을 먼저 받고서야 확신할 수 있었다. “등단 후 첫 책을 내기까지 3년 동안 출판 제의를 거절당한 트라우마 때문에 먼저 출간할 생각조차 못 한 거죠. 이제는 그 기억이 자격지심이자 피해의식이라는 걸 알아요.”
그의 경험은 소설에 녹아 있다. 소설 속 인물들은 그의 인생처럼 삶의 파도에 휩쓸려 좌절하곤 한다. 단편소설 ‘매듭’에서 주인공은 결혼 석 달 만에 닥쳐온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편을 돌보고, ‘어떤 이별’의 주인공은 이웃에 사는 정신지체 청년에게 아이를 잃는다. 그는 사고 경험을 담은 에세이를 쓰고 있다. “어느 한 시절의 제가 그랬듯 생을 놓아버리고 싶을 만큼 좌절한 누군가에게 제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쓰고 또 쓸 준비가 돼 있어요. 다른 이들보다 느릴지언정 멈추지는 않을 겁니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