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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미디어 세태풍자로 ‘에르메스 미술상’ 수상한 류성실

입력 | 2021-06-09 03:00:00

“빠른 시간내 이름-작품 알리려 유튜브 승부수 B급 이미지로 권위-전통에 계속 질문 던질것”
‘BJ 체리장’ 기획-연기 실험적 도전
온라인 호평속 ‘숭배’ 팬덤까지 생겨
“여러분, 전 공짜로 돌아오지 않아요”




류성실 작가가 가상의 인물 ‘체리장’을 연기하는 모습. 유튜브 ‘Cherry Jang’ 캡처

남한 한복판에 북한이 쏜 핵미사일이 떨어지기 5분 전. 카운트다운과 함께 영상에는 경극 배우처럼 얼굴을 하얗게 칠한 정체불명의 여성이 등장한다. 그의 이름은 BJ ‘체리장(Cherry Jang)’. 스스로 ‘한민족 평화통일 홍보대사’ ‘FBI 국가비상사태 자문위원’이라고 칭하던 그는 “오빠들도 얼른 대피하셔야 한다. 천국 시민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다”며 운을 띄운다. 얼마 뒤 은행 계좌번호를 슬며시 자막으로 띄운 그는 “계좌로 돈을 저축하셔야만 천국에서 쓸 금은보화를 저축할 수 있다”며 천연덕스럽게 입금을 요구한다. 카운트다운 시계가 0초가 된 순간, 조잡한 그래픽으로 꾸며져 있던 화면은 온통 검게 변하며 영상은 끝난다.

영상을 보고 나면 그야말로 뇌가 찌릿해진다. 시청자들은 “내 정신도 이상해진다. 아무 것도 못 하겠다”며 댓글로 본인의 감상평을 털어놨다. 2018년 말 홀연히 영상으로 나타난 체리장은 천국에서 ‘일등시민’이 된 본인 소식을 2020년 12월 영상을 통해 전하며 현재 자취를 감췄다. 이 영상은 도대체 뭐고, 체리장은 누구일까.

정체부터 먼저 밝히자면 이 영상을 직접 기획하고 체리장을 연기한 건 미술작가 류성실(29·사진)이다. 올해 3월 에르메스재단은 19회 에르메스재단 미술상 수상자로 역대 최연소인 류 작가를 선정했다. 유튜브에서 그가 펼친 ‘1인 미디어 쇼’를 높이 사 신선한 예술로 인정한 것. 온라인에선 류 작가의 예술 세계에 환호하는 이가 늘면서 이미 체리장을 ‘숭배’하는 팬덤까지 생겼다. 그를 사칭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까지 나타날 정도다. 그를 실존 인물로 착각해 “저를 구원해 달라”는 장문의 편지를 보낸 이도 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체리장의 본체’인 류 작가는 “실험적으로 도전한 영상에 많은 분이 반응하고 좋아해주실 줄 정말 몰랐다”며 “많은 이가 제 작품을 볼 수 있는 유튜브에서 예술 실험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의 작품은 ‘K키치’라고 불릴 만큼 토속적 가치나 가부장적 권위를 비틀어 해석한다. 1인 미디어 세태, 음모론, 구시대적 전통 등이 모두 풍자 대상이다. “실체 없이 뜬구름 잡는 예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가 일민미술관, 서울시립 북서울미술관, 백남준아트센터 등에서 선보였던 전시의 연장선이기도 하다.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한 그가 유튜브에 발을 들인 건 나름의 승부수였다. 젊은 미술가로서 상대적으로 설 곳이 좁은 미술 판에서 이름을 빠르게 알리고, 작품으로 증명하고 싶었다. “딱 3년만 해 보겠다”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지난해 팬데믹으로 전시가 어려워지면서 영상 작업에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됐다.

그는 이색적이고 차별적인 영상을 만들기 위해 구글에서 ‘exotic(이국적)’이라는 키워드로 이미지를 검색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이미지에 그래픽, 사진을 덕지덕지 넣은 영상은 촌스럽고 조악해 불편함마저 느끼게 한다. 전부 류 작가가 의도한 감성이다. “기성 사회의 노골적이고 천박한 마케팅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향후 전시 작업과 유튜브에서도 그는 이 주제를 계속 다룰 예정이다.

영상 속 체리장의 스토리 설정상 그는 현재 ‘하늘나라’에 있다. 팬들은 지금도 “언제 돌아오시는 거냐”며 그의 부활과 다음 영상을 원하고 있다. 류 작가가 답했다. “여러분! 체리장은 절대로 공짜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