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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 색깔 싫은데?”…옐로우시티·퍼플섬, 지원인가 간섭인가

입력 | 2021-06-09 12:00:00


지방자치단체장이 지자체의 핵심전략사업 추진을 위해 소속 공무원에게 자택 색깔을 변경하라고 권유한 것은 행동자유권을 침해한 ‘인권침해’라고 최근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단했다.

이를 계기로 전남지역 상당수 지자체들이 전략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색깔마케팅에 대한 인식전환과 함께 전략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광전문가들은 획일화되고 맥락 없는 ‘페인팅 전략’의 한계는 벗어나 지역 고유의 문화, 역사, 생태학적 자원과 연계한 컬러마케팅의 지속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인권위 “특정색으로 주택 색상 도색하라는 권유는 ‘자유권 침해’”

보라색으로 뒤덮인 신안군 반월·박지도© 뉴스1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8일 유두석 전남 장성군수가 장성군 공무원의 주택 색상을 특정색으로 도색하라고 권유한 행위는 ‘자유권 침해’로 규정하고 시정을 권고했다.

인권위는 유 군수에게 원상회복과 함께 피해보상 등의 적절한 조치를 취하라고 권고했고, 유 군수는 즉시 입장문을 통해 “지난해 옐로우시티 도시경관 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개인주택 도색 문제로 심적 고통을 호소한 전 군청 직원에게 이번 기회를 빌려 정중하게 사과드린다”면서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을 존중하며, 권고사항에 따라 진정인의 피해가 하루 빨리 원상회복될 수 있도록 적극 조치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번 인권위 결정을 계기로 지자체가 적극 추진하고 있는 색깔마케팅에 대한 인식전환과 함께 추진방안에 있어서도 전략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장성군이 추진하는 ‘옐로우시티 장성’ 마케팅은 국내 지자체 최초로 도입한 색깔마케팅이다.

사계절 노란색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자연친화적 도시를 목표로 자연, 환경, 문화 등 모든 분야에 통일된 옐로우시티 의미가 깃든 브랜드화, 관광자원화를 추진 중이다.

이를 통해 주민소득이 늘어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희망 넘치는 도농복합도시로 도약한다는 게 장성군의 복안이다.

‘옐로우시티’ 브랜드를 정착시킨 장성군은 기본적인 건물 색깔부터 주변경관을 비롯해 지역 축제와 특산물에도 노란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황룡강 노란꽃축제에 10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찾으면서 내고향 명품축제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부터 출하가 본격 시작된 ‘황금사과’도 남도우수원예작물로 선정되면서 지역 대표 특산물로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퍼플섬’으로 유명한 신안군 반월·박지도는 주민들이 힘을 모아 보라색 섬을 만들어 해외 언론에서도 조명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신안군 안좌도에 딸린 형제섬인 반월·박지도는 51가구에 100여명이 사는 작은 섬으로 지난 2015년 전라남도의 ‘가고 싶은 섬’ 사업에 선정된 이후 신안군은 4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정비에 나섰다.

초기 사업 계획을 구상하던 중 뭔가 차별화된 섬을 조성하는 방안으로 섬 전체에 특정 색을 입히자고 제안됐고, 섬 곳곳에 보라색 꽃을 피우는 청도라지·꿀풀 등이 많은 데서 힌트를 얻어 보라색으로 콘셉트를 정했다.

이후 마을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전체 90% 이상의 집 지붕을 보라색으로 칠하고 섬의 관문인 목교와 도로 이정표, 공중전화 박스, 식당 앞치마, 식기까지 모두 보라색으로 변모했다.

이는 대한민국 최초로 섬 전체를 컬러 이미지 메이킹을 이룬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지역발전 위한 색깔마케팅, 추진 과정서 부작용도

전남 장성군이 시행 중인 ‘옐로우시티 건축디자인 지원사업’. © News1

전국 최초의 컬러마케팅으로 많은 주목을 받으면서, 장성하면 노란색, 옐로우시티가 자연스레 떠올려지는 특색 있는 고장으로 발돋움했지만 지자체 주도의 핵심사업으로 추진되면서 여러 부작용도 나오는 상황이다.

대표적인 게 최근 인권위가 권고했던 ‘공무원 주택 도색 사업’ 후폭풍이다.

장성군청에서 계약직 공무원으로 근무하는 A씨는 최근 인권위에 ‘유두석 군수가 개인 주택의 지붕과 처마를 장성군 이미지와 관련된 노란색으로 칠하라고 강요했다’는 내용의 진정을 제기했다.

A씨는 앞서 지난 2019년 10월 장성군청 인근에 유럽형 신축 주택을 지었고, 군으로부터 군 역점사업인 옐로우시티 경관 조성사업에 협조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A씨는 결국 기존 갈색 지붕과 처마를 노란색으로 도색했고, 이어 담장과 대문 모두 노란색으로 변경했으나 정신적인 고통을 호소했고 인권위에 제소하기에 이르렀다.

이와 관련해 장성군 한 관계자는 “지자체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주민의 100% 동의나 만족도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면서 “하지만 이번 인권위 결정을 계기로 사업추진 방식에 있어 행여 부족한 부분은 없는지 다양하게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종언 신안 반월마을 이장도 “처음에는 보라색으로 섬을 칠한다고 해서 생소하고 갸우뚱했다”며 “이제는 섬이 많이 알려지고 유명해져 주민들 스스로 보라색 마스크를 찾아 쓸 정도로 적극 호응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관광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색깔마케팅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촉구했다.

지역의 고유한 자원이나 문화적 특성 등과 연계해 추진하는 색깔마케팅은 침체된 지역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지만 자칫 획일화되고 맥락 없는 마케팅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한 관광전문가는 “신안이나 장성군의 사례에서 보면 사실 과도하게 추진되면서 사유권 침해나 자유를 침해하는 부작용도 나올 수 있다”면서 “단순히 색깔의 통일성을 넘어 컬러마케팅이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여러 고민들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장성·신안=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