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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류장에 버스 멈춘 순간 5층건물 와르르… 고교생 등 17명 매몰

입력 | 2021-06-10 03:00:00

[붕괴 건물에 버스 매몰]광주 철거건물 버스 덮쳐 9명 사망




건물 잔해에 파묻힌 버스 9일 오후 광주 동구 학동의 철거 건물 붕괴 사고 현장에서 포클레인이 종잇장처럼 구겨진 노란색 버스를 끌어내고 있다. 작은 사진은 오후 9시경 완전히 모습을 드러낸 버스를 수색 중인 소방대원들. 이날 철거 중이던 5층 건물이 무너져 버스 탑승객 9명이 사망했다. 광주=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

“‘펑’ 하는 소리가 나더니 갑자기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더라고요. 땅 전체가 울리는 느낌이었어요.”

9일 오후 4시 22분경 광주 동구 학동에서 철거 공사 중인 5층 건물이 무너졌다. 사고 당시 맞은편 인도를 걸어가던 A 씨는 당시만 생각하면 아직도 온몸이 떨리고 불안감이 밀려든다.

건물이 내려앉으면서 폭음과 함께 건물 잔해가 가림막을 밀어내고 도로 쪽으로 쏟아졌다. 도로 옆 버스 정류장에 승객을 태우기 위해 멈춰 있던 ‘54번’ 시내버스를 순식간에 덮쳤다. 버스는 종잇장처럼 찌그러졌다.

○ 도로 쪽으로 잔해 쏟아져 피해 키워

건물 붕괴 현장 앞을 지나던 시민 3명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며 황급히 현장을 벗어났다. 주변을 지나던 차들은 줄줄이 급제동하며 멈춰 섰고, 일부 운전자는 추가 붕괴를 우려했는지 다급히 차량을 후진하기도 했다. 사고 현장에서 철거작업을 하던 공사 관계자 1명이 흙먼지를 덮어쓰고 허겁지겁 뛰쳐나왔고 주변을 살핀 후 급히 사고 현장을 떠났다.

기울어지듯 건물이 붕괴하면서 잔해가 왕복 7차로 도로의 절반 이상을 가로막아 도로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사고 당시 아찔했던 순간은 현장을 비추고 있던 건너편 상점 폐쇄회로(CC)TV에 고스란히 담겼다.

이날은 건물 주변 정리를 한 뒤 철거 작업을 시작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다. 5층 건물 맨 위에 굴착기를 올려 한 개 층씩 철거하며 내려가는 방식이었다. 건물 안쪽부터 바깥 방향으로 건물 구조물을 조금씩 부숴 갔다.

현장에는 굴착기 1대와 작업자 2명이 있었고 현장 주변에는 신호수 2명이 근무 중이었다. 갑자기 건물에서 ‘뚝’ 소리가 들리자 작업자 4명은 무너진 건물에서 극적으로 피했다. 사고 당시 건물 안에는 작업자가 없었다.

피해자 대부분은 버스를 타고 있던 승객이었다. 버스 안에는 운전사를 포함해 17명이 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버스가 완전히 흙더미에 매몰돼 정확한 인원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오후 11시 현재 9명이 사망했고 8명이 크게 다친 채 구조됐다. 대부분 버스 뒤쪽에서 발견됐다. 건물이 도로 쪽으로 붕괴돼 피해도 컸다.

○ 주민들, 평소에도 불안감 느껴

독자 제공


사고 현장은 학동4구역 재개발사업 구역으로 사업 면적은 12만6433m²다. 재개발 사업은 낡은 상가와 주택을 철거하고 지상 29층, 지하 2층 아파트 19개 동 2282채를 새로 짓기 위해 철거를 하던 중이었다.

주민들은 평소에도 사고 현장을 지날 때 불안감을 느꼈다고 한다. 한 주민은 “철거 공사를 한다는데 보기에도 너무 허술했다. 저러다 무너지겠다 싶었다”며 혀를 찼다.

사고 직후 학동에서 화순 방면 도로 운행이 전면 통제됐다. 퇴근 시간대와 겹치면서 일대에는 교통 대란이 빚어졌다. 소방당국은 날이 저물고 사고 현장에 잔해가 많아 구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버스가 가스 연료를 사용해 폭발 위험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철거 방식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다. 또 다른 주민은 “철거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건물이 무너진 것을 보면 건물의 주요 부분을 건드린 것 아닌가 싶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광주시소방본부 관계자는 “철거 중에 건물이 붕괴했다는 것 외에는 현재로서는 원인을 예단하기 어렵다”며 “구조 작업을 마친 후 합동 조사를 통해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광주=이형주 peneye09@donga.com·이윤태·이기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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