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늪에 빠져 겨우 코만 내민 민주당”[진중권 인사이트]
벨기에 출신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가 그린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1964). [Rene Magritt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 그 연작 중에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도 있다. 정밀하게 사과의 그림 아래로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적어 넣은 작품.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를 했단다. 그 사과의 변을 듣고 이 작품이 떠올랐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민주당 사전에 사과란 없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은 잠시 반성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회고록을 출간하고, 지지자들이 반응하자 시늉마저 포기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 지지자들만이 아니다. 이낙연, 정세균, 추미애 등 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이 일제히 조국에 공감과 연민, 혹은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1심의 판결이 내려져 모든 사실과 증거가 밝혀졌고, 재보선 참패로 그 동안 위선과 허위를 일삼아 온 데에 대한 국민의 심판도 내려졌다. 그런데도 반성이나 사과는커녕 외려 잘했다고 하니, 당연히 국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그 화를 가라앉히려니 당 대표가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린 것이다.
그렇다고 사과를 안 할 수도 없다. 이것이 민주당의 딜레마다. 결국 형식적으로는 사과를 하는 척하면서 정작 내용에서는 사과할 대목을 슬쩍 피해가는 곡예를 벌일 수밖에 없다. 그 예상대로 송영길 대표가 사과를 하긴 했으나 찬찬히 뜯어보면 실제로는 사과해야 할 부분은 모조리 피해가고 있다.
진정한 사과의 두 조건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6월 2일 국회에서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 행사를 열고 있다. [뉴시스]
첫째, 조국과 그의 가족이 한 일은 부덕을 넘어 불법이었다는 사실의 인정이다. 부인 정경심 교수는 기소돼 15개 혐의 중 11개가 유죄로 인정됐다. 그의 재판은 아니지만, 판결문에는 남편인 조 전 장관의 유죄를 인정하는 구절도 들어 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모든 게 “적법”이고 “합법”이라 우기고 있다.
둘째, 그를 비호하기 위해 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허위와 날조와 공작으로 사태를 호도하고 국민을 기만해 온 사실의 인정이다. 법원에서는 조국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고 판시했다. 민주당은 진실을 원하는 국민들을 정신적으로 고문해 왔다.
불법은 없었다?
송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조국 전 장관의 법률적 문제와는 별개로 자녀 입시 관련 문제는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할 문제다.”
법원은 이미 조국 일가가 한 행위의 불법성을 인정했는데, 송 대표는 그것을 “별개”의 문제로 처리한다. 진정한 반성의 첫째 조건을 아예 무시해 버린 것이다.
그의 속내는 다른 데에 있다.
즉, 조국 일가의 행위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청문회 국면에서부터 조 전 장관이 내내 취하고 있는 스탠스다. 자신과 가족은 그저 부도덕했을 뿐 불법을 저지른 적 없는데, 윤석열 총장의 검찰이 대통령을 공격하려고 자신과 가족을 “도륙질”했다는 것. 결국 당 대표의 사과가 정확히 조국이 쳐준 가이드라인에 얌전히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조국은 그 ‘사과’를 외려 반길 수밖에.
“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이하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조국의 시간’에는 물론 그 이전에도 저는 같은 취지의 사과를 여러 번 하였습니다.”
당 대표의 사과가 자신의 가이드라인을 지킨 데에 감사한다는 환영의 메시지다.
또 윤석열 탓
남 탓 하는 것도 여전하다. 잘못한 것은 조국이 아니라 언론이란다. 조국 회고록에 대해 그는 “일부 언론이 검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기 해 융단폭격을 해온 것에 대한 반론 요지서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15개 혐의 중 무려 11개가 유죄로 인정됐는데도, 반성은커녕 잘못을 여전히 언론에 돌린다.검찰 탓도 빠지지 않는다.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수사의 기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가족 비리와 검찰 가족의 비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조국 수사를 가혹한 ‘인권침해’라 부르며 그 관행을 없애려고 ‘검찰개혁’을 한다는 이들이 윤석열 장모에게 ‘인권침해’를 하라고 강요한다.
송 대표의 사과 아닌 사과로 조국의 ‘파렴치함’은 공식적으로 민주당의 ‘뻔뻔함’이 되었다. 입으로는 사과하고 반성한다고 하나, 실제론 이제까지 해온 짓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처신이 달라질 리가 없다. 민주당은 조국이라는 늪에 빠졌다. 겨우 코만 내민 상황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이 기사는 신동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