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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 “송영길의 사과,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입력 | 2021-06-10 10:29:00

“조국 늪에 빠져 겨우 코만 내민 민주당”[진중권 인사이트]




벨기에 출신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1898~1967)가 그린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1964). [Rene Magritte]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로 유명한 르네 마그리트. 그 연작 중에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도 있다. 정밀하게 사과의 그림 아래로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라는 문장을 적어 넣은 작품.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조국 사태에 대해 사과를 했단다. 그 사과의 변을 듣고 이 작품이 떠올랐다. ‘이것은 사과가 아니다.’

민주당 사전에 사과란 없다
4·7 재·보궐선거 참패 이후 민주당은 잠시 반성하는 척을 했다. 하지만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회고록을 출간하고, 지지자들이 반응하자 시늉마저 포기하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 버렸다. 지지자들만이 아니다. 이낙연, 정세균, 추미애 등 당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이 일제히 조국에 공감과 연민, 혹은 지지를 표명하고 나섰다.

1심의 판결이 내려져 모든 사실과 증거가 밝혀졌고, 재보선 참패로 그 동안 위선과 허위를 일삼아 온 데에 대한 국민의 심판도 내려졌다. 그런데도 반성이나 사과는커녕 외려 잘했다고 하니, 당연히 국민들은 분노할 수밖에. 그 화를 가라앉히려니 당 대표가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몰린 것이다.

문제는 민주당이 구조상 조국 사태에 사과를 할 수가 없다는 데에 있다. 민주당 사전에 ‘사과’란 없다. 대선 주자들이 경쟁적으로 조국을 감싸고도는 것은 당과 지지층의 핵심에게 조국 수호가 일종의 종교적 신앙이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산토끼도 떠난 마당에 집토끼마저 떠나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사과를 안 할 수도 없다. 이것이 민주당의 딜레마다. 결국 형식적으로는 사과를 하는 척하면서 정작 내용에서는 사과할 대목을 슬쩍 피해가는 곡예를 벌일 수밖에 없다. 그 예상대로 송영길 대표가 사과를 하긴 했으나 찬찬히 뜯어보면 실제로는 사과해야 할 부분은 모조리 피해가고 있다.

진정한 사과의 두 조건

송영길 민주당 대표가 6월 2일 국회에서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 행사를 열고 있다. [뉴시스]

송영길 대표는 6월 2일 국회에서 ‘국민소통·민심경청 프로젝트’ 대국민 보고 행사를 열고 “국민과 청년들의 상처받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점을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며 ‘조국사태’에 대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일단 사과의 ‘형식’은 갖추었다. 그 사과가 진정한 것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갖춰져야 한다.

첫째, 조국과 그의 가족이 한 일은 부덕을 넘어 불법이었다는 사실의 인정이다. 부인 정경심 교수는 기소돼 15개 혐의 중 11개가 유죄로 인정됐다. 그의 재판은 아니지만, 판결문에는 남편인 조 전 장관의 유죄를 인정하는 구절도 들어 있다. 그런데도 그는 여전히 모든 게 “적법”이고 “합법”이라 우기고 있다.

둘째, 그를 비호하기 위해 당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수사를 방해하고, 허위와 날조와 공작으로 사태를 호도하고 국민을 기만해 온 사실의 인정이다. 법원에서는 조국이 “진실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줬다”고 판시했다. 민주당은 진실을 원하는 국민들을 정신적으로 고문해 왔다.

그런데 송 대표의 변을 아무리 살펴봐도 진정한 사과에 필요한 이 두 가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결국 하나마나한 사과를 한 것이다. 그 사과의 변조차도 자세히 뜯어보면 조국의 잘못을 지적하기보다는 여전히 그의 불법을 “적법” 혹은 “합법”으로 호도하는 식으로 그를 옹호하고 변명하는 내용이다.

불법은 없었다?
송 대표는 이렇게 말한다.

“조국 전 장관의 법률적 문제와는 별개로 자녀 입시 관련 문제는 우리 스스로도 돌이켜보고 반성해야 할 문제다.”

법원은 이미 조국 일가가 한 행위의 불법성을 인정했는데, 송 대표는 그것을 “별개”의 문제로 처리한다. 진정한 반성의 첫째 조건을 아예 무시해 버린 것이다.

그의 속내는 다른 데에 있다.

“좋은 대학 나와 좋은 지위 인맥으로 서로 인턴 시켜주고 품앗이하듯 스펙 쌓기 해주는 것은 딱히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런 시스템에 접근조차 할 수 없는 수많은 청년에게 좌절과 실망을 주는 일이었다.”

즉, 조국 일가의 행위가 “법률에 저촉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이는 청문회 국면에서부터 조 전 장관이 내내 취하고 있는 스탠스다. 자신과 가족은 그저 부도덕했을 뿐 불법을 저지른 적 없는데, 윤석열 총장의 검찰이 대통령을 공격하려고 자신과 가족을 “도륙질”했다는 것. 결국 당 대표의 사과가 정확히 조국이 쳐준 가이드라인에 얌전히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조국은 그 ‘사과’를 외려 반길 수밖에.

“민주당 송영길 대표의 이하 말씀을 겸허히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인다.

“‘조국의 시간’에는 물론 그 이전에도 저는 같은 취지의 사과를 여러 번 하였습니다.”

당 대표의 사과가 자신의 가이드라인을 지킨 데에 감사한다는 환영의 메시지다.

또 윤석열 탓
남 탓 하는 것도 여전하다. 잘못한 것은 조국이 아니라 언론이란다. 조국 회고록에 대해 그는 “일부 언론이 검찰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받아쓰기 해 융단폭격을 해온 것에 대한 반론 요지서로 이해한다”고 말했다. 15개 혐의 중 무려 11개가 유죄로 인정됐는데도, 반성은커녕 잘못을 여전히 언론에 돌린다.

검찰 탓도 빠지지 않는다.

“조 전 장관 가족에 대한 검찰수사의 기준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가족 비리와 검찰 가족의 비리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다.”

조국 수사를 가혹한 ‘인권침해’라 부르며 그 관행을 없애려고 ‘검찰개혁’을 한다는 이들이 윤석열 장모에게 ‘인권침해’를 하라고 강요한다.

송 대표의 사과 아닌 사과로 조국의 ‘파렴치함’은 공식적으로 민주당의 ‘뻔뻔함’이 되었다. 입으로는 사과하고 반성한다고 하나, 실제론 이제까지 해온 짓을 더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앞으로 처신이 달라질 리가 없다. 민주당은 조국이라는 늪에 빠졌다. 겨우 코만 내민 상황이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이 기사는 신동아 2021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