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종류가 늘어나는 가운데, 서로 다른 백신의 교차 접종이 면역 반응을 높이는 것으로 보인다고 9일(현지시간) 미국 과학진흥협회의 ‘사이언스지’가 보도했다.
현재 캐나다와 일부 유럽 국가들이 권고 중인 백신 교차 접종 연구는 원래는 아스트라제네카(AZ)의 혈전 논란에서 시작했다. 백신 접종 초기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AZ 백신을 1회 맞았는데 유럽에서 혈전 발생 문제가 불거지자, 몇 주 뒤 예정한 2회 접종을 강행할지가 고민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혹시 2차 접종을 화이자 백신으로 맞아도 될까’라는 물음에서 시작된 교차 접종 연구는 놀라운 발견으로 이어졌다.
부작용도 거의 없었고, 두 번째 백신 접종 후 강력한 항체 면역 반응이 나타났다. 실험 참가자 129명의 혈액 샘플(표본)을 검사한 결과 전체 샘플이 중화 항체를 보유하고 있었고, 이 같은 연구 결과는 권위 있는 학술지 ‘랜싯’에 실렸다.
독일 베를린 샤리테 대학 병원의 라이프 에릭 샌더 교수 연구팀은 61명의 보건의료 종사자들에게 10~12주 간격으로 두 가지 백신을 접종하는 실험을 진행한 결과, 3주 간격으로 화이자 백신만 두 번 맞은 대조군과 비슷한 수준의 스파이크 항체가 생성된 것을 확인했다. 부작용도 늘지 않았다.
게다가 교차접종을 한 그룹은 항체 생성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티세포(T cells)가 화이자만 맞은 대조군보다 스파이크에 조금 더 잘 반응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연구 결과는 의학논문 사전 공개사이트 메드아카이브(medRxiv)에 게재됐다.
AZ·존슨앤드존슨(J&J) 같은 바이러스 벡터 백신과 화이자·모더나 같은 메신저 리보핵산(mRNA) 백신을 교차 접종하면 면역 체계가 병원균을 더 잘 인식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샌더 교수는 “mRNA 백신은 항체 반응을 잘 유도하는 장점이 있고, 바이러스 벡터 백신은 티세포 반응을 더 잘 촉발하는 특징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영국 옥스퍼드대 백신 전문가인 매튜 스네이프 교수는 “지금까지 나온 교차 접종의 효과가 고무적이라는 점엔 동의한다”면서도 “티세포 반응 개선의 경우 교차접종 때문인지 두 백신 간 접종 간격이 더 길어져서인지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교차접종 관련 연구는 아직 더 진행돼야 하지만, 적어도 교차접종으로 인한 추가 부작용이 없고 예방효과가 비슷하기만 해도 이로 인한 정책 효과는 엄청날 수 있다는 데 전문가들은 동의했다.
스페인 카를로스 3세 보건연구소의 크리스토발 벨다-이니에스타 연구원은 “교차 접종이 안전하교 효과적인 것으로 증명된다면, 전 세계 수십억 명을 보호하려는 백신 접종 노력에 속도가 붙을 수 있다”면서 “이 같은 가능성은 수많은 나라에 새로운 비전을 열어준다. 2차 접종 시기를 맞출 걱정 없이 새로운 백신을 즉각 공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에라스무스 대학병원 임상 약학 책임자인 휴고 반 반 데르 쿠이 교수는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춰야 하는 상황에서 교차 접종 연구는 백신 접근 불평등에 대항하는 또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다”면서 “중국 시노백과 시노팜, 러시아 스푸트니크V 등 유럽 외 지역에서 널리 사용되는 백신들도 포함해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