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에서 집을 장만하려면 연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10년 넘게 모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집값 상승과 가계대출 급증세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증가 속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았다.
한국은행이 10일 국회에 제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수도권의 소득 대비 주택가격 비율(PIR·Price Income Ratio)은 10.4배로 추정됐다. 이는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고점인 2007년 3월 말(8.6배)보다도 높다.
PIR는 한 가구의 연소득을 모두 주택 구입에 썼을 때 걸리는 기간을 뜻한다. 10.4년 동안 벌어들인 소득을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만 수도권에서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얘기다.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지난해 말 103.8%로 2년 전(91.8%)보다 12%포인트 뛰었다. 이 같은 상승 폭은 OECD 37개국 가운데 노르웨이(15.4%포인트)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2020년 말 기준으로 OECD 회원국 중 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한국보다 높은 국가는 스위스(133.1%), 호주(123.2%), 덴마크(115.9%) 등 5개국뿐이다.
지난달 말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은 1024조1000억 원으로 4월 말보다 1조6000억 원 감소했다. 은행권 가계대출이 7년 4개월 만에 감소세(전월 대비)로 돌아선 것이다. 하지만 주택 매매와 전세 대출 수요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가계대출 급증세는 계속될 것으로 한은은 평가했다. 박성진 한은 시장총괄팀 차장은 “SK아이테크놀로지 공모주 청약 증거금이 반환되면서 지난달 은행권 가계대출이 일시적으로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1년 전과 비교하면 증가 폭은 여전히 높아 이번 달 다시 증가세로 전환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은은 부동산 등 특정 부문으로 자금 쏠림이 계속되면 경기 변동성을 높이고 성장 잠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형 한은 통화정책국장은 “금융 불균형이 누적돼 내부 취약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대외 충격이 발생할 경우 경기 및 금융 안정성이 훼손될 수 있다”고 했다.
박희창 기자 rambl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