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혐의 유죄’ 원심 뒤집어
구치소 나서는 김학의 뇌물수수 혐의로 수감 중이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0일 보석으로 석방돼 경기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 정문을 나서고 있다. 의왕=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 “검사가 재판 전 증인 면담, 진술 신빙성 의심”
김 전 차관의 고교 동창인 최 씨는 2019년 8월 김 전 차관의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뒤 수사 검사와 면담했다. 당시 김 전 차관은 2000∼2011년 최 씨로부터 술값, 상품권, 차명 휴대전화 사용료 등 4300여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였다.
검찰은 2심 재판에서 최 씨를 또다시 증인으로 신청한 뒤 검찰청으로 불러 면담했다. 최 씨는 2심 법정에서 “김 전 차관의 차명 휴대전화 사용료를 내준 건 순수하게 도와주려던 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별생각 없이 한 것이고 뇌물이란 생각은 못했다”는 검찰에서의 진술을 뒤집은 것이었다.
1심은 “최 씨가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며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최 씨 증언의 신빙성을 인정해 김 전 차관의 혐의를 유죄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검사가 면담 과정에서 증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증인의 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검찰수사단’은 “증인 사전 면담은 검찰 사건사무규칙에 근거한 적법한 조치이고 회유나 압박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 사법부, 檢 ‘증인 사전 조사 관행’에 제동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따라 서울고법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이 최 씨로부터 4300여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만 심리하게 된다. 대법원은 김 전 차관이 2006, 2007년 건설업자 윤중천 씨로부터 강원 원주 별장에서 13차례 ‘별장 성접대’를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免訴·기소 면제) 판결했다. 대법원은 김 전 차관의 보석 신청도 받아들여 김 전 차관은 지난해 10월 2심 판결 직후 구속 수감된 지 225일 만에 풀려났다.한 검사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김 전 차관 관련 뇌물 사건과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모두 수사한 수원지검 이정섭 부장검사의 거취를 고심할 것”이라며 “수사팀을 좌천시키고 싶겠지만 검찰개혁 주장의 도화선이 된 김 전 차관 뇌물 사건도 유죄로 끝맺고 싶어 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법정 증언 전 증인 면담 관행을 지적한 대법원의 판단은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 측도 재판에서 “검사가 증인을 사전에 면담해 회유했다”고 주장해 왔다.
고도예 yea@donga.com·배석준·박상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