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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재판前 증인 檢조사 문제삼아… 김학의 무죄취지 파기환송

입력 | 2021-06-11 03:00:00

‘뇌물혐의 유죄’ 원심 뒤집어




구치소 나서는 김학의 뇌물수수 혐의로 수감 중이던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10일 보석으로 석방돼 경기 의왕에 있는 서울구치소 정문을 나서고 있다. 의왕=박영대 기자 sannae@donga.com

대법원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징역 2년 6개월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김 전 차관에게 대가를 바라고 금품을 줬다는 사업가의 법정 증언이 믿을 만한지 다시 따져보라는 취지다. 대법원은 검찰이 법정에 나올 예정인 증인을 미리 불러 면담한 것에 대해 “검사로부터 회유나 압박을 받아 법정에서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 전 증인들을 검찰청으로 불러 증언을 확인하는 검찰의 특수수사 관행에 사법부가 제동을 건 것으로 해석된다.

○ “검사가 재판 전 증인 면담, 진술 신빙성 의심”

대법원 3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10일 김 전 차관의 뇌물수수 혐의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내면서 “(사업가) 최모 씨가 법정에서 진술하기 전 검찰에 소환돼 면담하는 과정에서 수사기관의 회유나 압박, 답변 유도나 암시 등의 영향을 받아 기존 진술을 (검찰의)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진술로 변경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 전 차관의 고교 동창인 최 씨는 2019년 8월 김 전 차관의 1심 재판에 증인으로 채택된 뒤 수사 검사와 면담했다. 당시 김 전 차관은 2000∼2011년 최 씨로부터 술값, 상품권, 차명 휴대전화 사용료 등 4300여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상태였다.

최 씨는 검사 면담 후 법정에서 “김 전 차관에게 사건 관련 청탁을 한 적 없다”는 기존 진술과 달리 “김 전 차관으로부터 내가 수사 대상자인 것 같다고 들었고, 직후 검찰이 내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2심 재판에서 최 씨를 또다시 증인으로 신청한 뒤 검찰청으로 불러 면담했다. 최 씨는 2심 법정에서 “김 전 차관의 차명 휴대전화 사용료를 내준 건 순수하게 도와주려던 건 아니었다”고 증언했다. “별생각 없이 한 것이고 뇌물이란 생각은 못했다”는 검찰에서의 진술을 뒤집은 것이었다.

1심은 “최 씨가 진술을 번복한 이유가 불분명하다”며 김 전 차관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은 최 씨 증언의 신빙성을 인정해 김 전 차관의 혐의를 유죄로 판결했다. 대법원은 이날 판결에서 “검사가 면담 과정에서 증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해야 증인의 진술을 믿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전 차관 성접대 의혹 사건 검찰수사단’은 “증인 사전 면담은 검찰 사건사무규칙에 근거한 적법한 조치이고 회유나 압박은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 사법부, 檢 ‘증인 사전 조사 관행’에 제동
대법원의 파기환송 판결에 따라 서울고법 재판부는 김 전 차관이 최 씨로부터 4300여만 원의 뇌물을 받았다는 혐의만 심리하게 된다. 대법원은 김 전 차관이 2006, 2007년 건설업자 윤중천 씨로부터 강원 원주 별장에서 13차례 ‘별장 성접대’를 받았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免訴·기소 면제) 판결했다. 대법원은 김 전 차관의 보석 신청도 받아들여 김 전 차관은 지난해 10월 2심 판결 직후 구속 수감된 지 225일 만에 풀려났다.

파기환송심 재판부가 검사의 회유나 압박이 없었다고 판단한다면 김 전 차관의 혐의를 2심과 같이 유죄로 판결할 수 있다. 하지만 최 씨의 진술이 믿기 어렵다고 판단되면 무죄를 선고할 수도 있다. 이 경우 ‘김 전 차관 불법 출국금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이규원 검사 등은 결국 무죄가 선고된 인사를 상대로 무리하게 불법 출국금지를 한 셈이 돼 불리한 위치에 놓일 수 있다.

한 검사는 “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김 전 차관 관련 뇌물 사건과 불법 출국금지 사건을 모두 수사한 수원지검 이정섭 부장검사의 거취를 고심할 것”이라며 “수사팀을 좌천시키고 싶겠지만 검찰개혁 주장의 도화선이 된 김 전 차관 뇌물 사건도 유죄로 끝맺고 싶어 할 것”이라고 했다.

검찰의 법정 증언 전 증인 면담 관행을 지적한 대법원의 판단은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자녀 입시 비리 혐의 등으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뒤 2심 재판을 받고 있는 정경심 동양대 교수 측도 재판에서 “검사가 증인을 사전에 면담해 회유했다”고 주장해 왔다.

고도예 yea@donga.com·배석준·박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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