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원이 8일(현지 시간) 찬성 68표, 반대 32표로 통과시킨 ‘미국 혁신·경쟁법’이 올해 4월 발의될 때 붙었던 원래 이름은 ‘끝없는 변경법(Endless Frontier Act)’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인 1945년 7월, 미국이 전후에도 과학 최강국 자리를 지키기 위한 전략을 제시한 버니바 부시의 보고서 ‘과학, 끝없는 변경’에서 따왔다. 부시는 레이더, 페니실린, 원자탄 개발에 참여해 전쟁 승리에 기여한 미국 과학연구개발국(OSRD) 총책임자이자 ‘과학영웅’이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토드 영 공화당 의원이 공동 발의한 법안은 향후 5년간 2500억 달러(약 279조 원)를 산업기술 분야에 투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초당적 지지를 받고 있어 하원 통과가 유력하다. 영 의원은 이날 “미래 세대가 새로운 ‘변경’을 바라볼 때 (중국의) 붉은 깃발이 꽂혀 있을 것인가. 우린 오늘 ‘아니다’라고 분명히 말했다”고 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우리는 21세기에도 승리하기 위한 경쟁을 하고 있고, 이제 출발의 총성이 울렸다”며 환영했다. 인공지능(AI), 양자 컴퓨팅 등 신기술 연구개발에 1000억 달러(약 111조6000억 원), 반도체 제조능력 확대에 520억 달러(약 58조 원) 등을 투입하도록 한 법안은 바이든의 대중(對中) 견제 전략에 날개를 달아줄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을 74번 거론했다. 80여 차례씩 등장한 일본, 대만보다 적지만 동맹국이자 정보통신기술(ICT) 강국인 한국은 중국을 배제하고 글로벌 공급망을 새로 짜려는 미국에 빼놓을 수 없는 파트너다. ‘삼성’ ‘LG’ 등 한국 기업 이름도 50번 넘게 나왔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44조 원 들여 미국에 반도체, 배터리 공장 등을 짓기로 약속한 데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다.
▷바이든 정부의 강공에 중국은 역습을 준비 중이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의 ‘반(反)외국 제재법’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구체적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중국을 부당하게 대우한 국가와 해당국 기업에 보복 수단을 마련하는 법안이라고 한다. 철저한 대비와 냉철한 판단이 없으면 한국이 한순간에 경제 전쟁의 파고에 휩쓸릴 수 있는 상황이다.
박중현 논설위원 sanjuc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