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광영 사회부 차장
“차라리 죽어버리겠다.”
가해자의 이 말은 이 중사를 향한 그 어떤 협박보다 비열한 것이었다. 진실은 묻어버리고, 나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멍에까지 씌우려는 엄포였으니 말이다. 다른 부대에선 여군 숙소에 침입해 불법 촬영한 부사관 사건을 맡은 군사경찰이 피해를 호소하는 여군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가해자의 목숨을 운운하며 피해자의 입을 막는 일들이 이렇듯 흔하게 벌어진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사망하면 수사기관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한다. 아무리 끔찍한 사건이라도 이 다섯 글자가 전부인 ‘한 줄 사건’이 되고 만다. 나름의 이유는 있다. 가해자가 없으면 실체 규명에 한계가 있고 방어권 행사도 어렵다. 수사해 봐야 실익이 없는 사건에 한정된 수사력을 마냥 투입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는 형사사건 처리를 ‘국가 vs 가해자’의 구도로만 본 것이다. 형사사법제도는 가해자에 대한 단죄뿐 아니라 피해자의 피해를 회복시키는 데 궁극적인 존재 이유가 있다.
성폭력 사건은 대개 명확한 물증이 없다. 그래서 가해자가 사망해 실체 규명이 중단되면 피해자는 곧바로 ‘가해자’로 몰린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사건, 로펌 대표변호사 성폭행 사건 등 많은 피해자들이 이런 2차 피해를 겪고 있다. “어떤 자살은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라고 소설가 정세랑은 책에 쓰기도 했다.
로펌 대표 성폭력 사건 피해자는 가해자의 극단적 선택으로 신원이 드러날 위기에 놓였다. 같은 로펌에 근무했던 여성 변호사들 명단이 각종 단톡방과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와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피해자는 지난 6개월간의 수사로 사건이 거의 마무리된 만큼 수사 결과를 통보해 달라고 경찰에 요청했지만 실현 가능성은 높지 않다.
미국 연방지방법원은 2019년 성범죄로 기소된 억만장자 제프리 엡스타인이 재판 도중 구치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하자 의외의 결정을 내렸다. 검찰의 공소기각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대신 피해자들이 법정에 나와 증언하도록 했다. 피해자가 법정에서 피해 사실을 말할 권리를 보장하는 ‘범죄 피해자 권리법(Crime Victim’s Rights Act)‘을 근거로 그들의 피해를 공식화한 것이다.
“정의가 있다면 저를 명예로이 해주십시오.”
2013년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육군 오모 대위는 이런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국가가 어떤 경우에도 성범죄를 끝까지 밝힐 것이라는 믿음이 있을 때 피해자는 삶을 부여잡을 용기를 낼 수 있고, 가해자 역시 남은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극단적 선택을 피하게 된다.
신광영 사회부 차장 n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