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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팔아… 망할줄 알았더니 매일 북적”

입력 | 2021-06-12 03:00:00

[위클리 리포트]
‘쓰레기 없는 가게’ 1년… 명소로 떴다
“동네에 쓰레기 없는 가게 만들자”
‘알맹’에 MZ세대 뜨거운 관심
가져오는 쓰레기 모아 재활용



5일 오후 서울 마포구 ‘알맹상점(알맹)’을 찾은 시민들이 가게를 둘러보고 있다. 알맹은 플라스틱 튜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되는 고체 치약과 대나무 칫솔, 필요한 만큼 덜어서 사 가는 화장품과 세제 등을 판매하는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없는) 가게다. 1년 전 알맹이 문을 연 이후 국내 제로 웨이스트 가게는 2개에서 90여 개로 급증했다.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한 번 쓰고 버리는 플라스틱 용기와 빨대, 비닐 포장지를 아예 사용하지 않을 순 없을까. 지난해 6월 서울 마포구에 문을 연 ‘알맹’은 바로 이 같은 물음의 해법을 제시하는 곳이다. 국내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없는) 가게의 롤 모델이 된 알맹의 지난 1년을 짚어봤다.》







쓰레기 없는 가게 ‘알맹’ 1년
“주변에서 다들 한 번쯤 오고 싶어 해요.”

5일 오후 1시 50분. 서울 마포구 ‘알맹상점’(알맹) 앞에 기자를 포함한 7명이 줄을 섰다. 경기 수원시에서 온 이지혜 씨(20·여)는 가게 간판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그는 “알맹 첫 방문 기념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릴 것”이라고 했다. 오후 2시 상점 문이 열리자마자 66m² 남짓한 공간에는 직원 2명과 손님 10여 명으로 북적였다.

‘껍데기는 가라 알맹이만 오라’는 소개 문구처럼, 알맹은 포장재 없는 상품과 업사이클링(재활용품에 디자인과 기능을 더한 것) 제품, 다회용품을 파는 ‘제로 웨이스트’(쓰레기 없는) 가게다. 15일로 문을 연 지 꼭 1년이 되는 이곳은 최근 20, 30대가 꼭 가고 싶어 하는 힙한 장소가 됐다. 국내 제로 웨이스트 가게 증가의 ‘마중물’ 역할을 한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1년 동안 알맹이 일궈낸 변화를 고금숙 공동대표를 통해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달 21일 알맹에서 진행했다.

○ 직접 차린 제로 웨이스트 가게
“왜 우리 동네에는 제로 웨이스트 가게가 없을까 하는 아쉬움만 있었어요.”

알맹의 뿌리는 2018년 서울 마포구 망원시장을 중심으로 비닐봉지·일회용품 사용 줄이기 캠페인을 벌이던 ‘알짜’(알맹이만 원하는 사람들) 활동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 대표를 포함한 알짜들은 2019년 망원시장 안에 있는 카페 한쪽에 세탁세제와 주방세제를 리필해 판매하는 무인 가게를 차렸다. “꼭 필요한 세탁세제를 포장 없이 살 수 없을까 생각하다가” 벌인 이벤트였다. 세탁세제를 가게에 놓아두고, 고객이 직접 덜어 무게를 잰 뒤 가져가는 무인 가게였다. “의외로 잘 팔렸어요. ‘아, 우리 말고도 포장재를 안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하고 깨달았죠.”

잘나가던 무인 가게는 카페 리모델링으로 몇 개월 만에 접어야 했다. 알짜들 사이에서 “그냥 우리가 가게를 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오랫동안 비어 있던 갤러리를 찾았다. 월세 120만 원을 내고 들어갔다. 계약 기간은 딱 1년.

“망할 줄 알고 1년만 계약했어요. 공동대표 3명이 월 40만 원씩 분담해서…. ‘망하더라도 1년간 쓰레기 줄이기 프로젝트 실컷 하고 장렬하게 문 닫자’며 시작했죠.”

알맹은 무포장, 다회용 제품을 판매하는 동시에 각종 생활용품을 리필 판매하기로 결정했다. “화장품, 세탁세제, 주방세제는 현대인들이라면 꼭 쓰는 건데 이건 유독 무포장 제품이 없어요. 이런 것들을 덜어서 사 가는 실험을 해 보고 싶었어요.” 고 대표는 화장품을 소분 판매하는 데 필요한 화장품 제조관리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 ‘무포장’에 몰리는 사람들

가게 문을 열자 사람들이 몰렸다. 평일에는 하루 70여 명, 주말에는 120여 명이 알맹을 찾는다. 경기도나 인천 등에서 바리바리 통을 싸들고 오는 경우도 많다. 알맹 인스타그램 팔로어는 초창기 1800여 명에서 최근 약 23배인 4만1000여 명을 넘어섰다.

알맹이 인기를 끄는 요인에 대해 고 대표는 첫째로 코로나19 확산과 기후변화를 꼽았다. 코로나19 확산으로 비대면 일상이 정착되면서 배달과 택배가 늘고, 그 여파로 집 안에 각종 플라스틱 배달 용기와 택배 포장재가 쌓였다. 그 쓰레기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불편함을 느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지난해 역대 가장 긴 장마철을 겪으면서 기후변화를 위기로 받아들인 것이 사람들이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고 해석했다.

“이상기후 현상이 계속 나타나면서 이제는 환경운동가뿐 아니라 시민들도 기후변화를 실감하고 있어요. 모두가 위기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지구를 위해 가장 먼저 행동으로 옮기기 쉬운 일은 일회용 플라스틱을 줄이고, 쓰레기를 줄이는 거죠.”

알맹의 인기를 끌어올린 두 번째 요인은 MZ세대(밀레니얼세대+Z세대)의 적극적인 참여다. “환경이라는 가치를 중시하고,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데 적극적인 MZ세대는 제로 웨이스트에 전혀 거부감이 없어요.”

고 대표는 MZ세대를 제로 웨이스트 생활에 최적화된 세대라고 정의했다. “얼마 전에 작은 약통을 하나 가져와서 허브티 12종류를 사 간 손님이 있어요. 딸기티 2g, 캐러멜티 2g… 이런 식으로요. 원하는 만큼 다양하게 체험해 보고 본인 취향을 찾겠다는 거죠.” 또 그는 “MZ세대 가운데 1인 가구가 많고, 원룸 등 작은 공간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딱 필요한 만큼만 덜어서 사는 것을 편리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고 해석했다.

○ 커지는 제로 웨이스트 시장
제로 웨이스트 가게로 사람들이 모이자 관련 시장도 커졌다. 알맹을 처음 시작할 때는 포장재 없이 물건을 들여오기도 쉽지 않았다. 알맹은 ‘언제 망할지 몰라서’ 많이 살 수 없었고, 제조업체들 입장에서는 제로 웨이스트 가게가 낯설었다.

“예전에는 다회용 제품인 실리콘 빨대, 스테인리스 빨대도 하나하나 다 포장된 채 들어왔어요. 업체에 전화해 ‘우리가 책임질 테니 포장 빼고 보내 달라’고 요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달라졌어요.”

제로 웨이스트 가게들이 늘어나면서 시장을 키우는 역할을 했다. 알맹이 문을 열기 전에는 제로 웨이스트 가게가 서울과 제주에 2곳 있었지만, 지금은 전국 곳곳에 90여 곳의 제로 웨이스트 가게(카페 포함)가 생겼다. 그동안 일회용품 사용에 문제점을 느끼던 가게들이 빠르게 제로 웨이스트 가게로 전환하고 있는 것이다. 창업 관련 문의도 부쩍 늘었다.

“이제는 제로 웨이스트 생태계가 생기고 있어요. 일부 사람들만 알음알음 사던 천연 수세미를 대량으로 유통하는 이도 생기고, 아예 해외에서 수입할 때부터 현지 공장에 포장지를 빼달라고 요청해서 들여오는 사람도 있어요.”

대형마트도 이런 움직임에 참여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9월 서울 성동구 이마트 성수점을 시작으로 세탁세제와 섬유유연제를 리필해서 사갈 수 있는 ‘에코 리필 스테이션’을 도입했다. 소비자가 전용 용기를 구입한 뒤 그 용기에 계속 세탁세제를 덜어 사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월별 이용객은 지난해 11월 1000여 명에서 올 3월 2300명까지 늘었다. 리필 스테이션이 인기를 끌자 설치 매장은 올 4월 9곳으로 늘었다. 이에 대해 고 대표는 “좋은 변화”라며 “리필 판매가 더 늘어나면 관련 산업도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용 용기에 대해서는 “아쉽다”고 했다. 대형마트에 도입된 리필 스테이션은 전용 용기를 쓰게끔 설정돼 있다. 고 대표는 “전용 용기를 별도로 사지 않고 집에 있는 빈 용기에 담아올 수 있어야 진정한 제로 웨이스트”라고 했다.

환경부에 따르면 세탁세제와 같은 생활화학 제품을 소분 및 리필해 판매하는 국가는 미국 캐나다 독일 영국 등이다. 운영 방식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다. 독일은 전용 용기를 사용해 리필하게 하고, 영국 등은 개인이 지참한 빈 용기에 원하는 만큼 덜어 살 수 있게 한다. 환경부는 “현재 소분 판매에 대해서는 명확한 규정이 없는 상태”라며 “9월까지 이마트의 운영 성과를 평가한 뒤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버리는 쓰레기도 따로 모아 재활용

필요한 만큼 덜어 쓸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고금숙 알맹 공동대표.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아무리 줄여도 결국 버려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알맹은 이 ‘쓰레기’들을 모은다. 어느 정도 모이면 이를 관련 업체에 보내 재활용한다.

“가게 한쪽에 재활용 회수센터를 만들었어요. 손님들이 가져오는 우유팩, 멸균팩, 작은 병뚜껑(플라스틱) 등을 받아요. 가져올 때마다 쿠폰 개념으로 도장을 찍어주고, 10개가 모이면 폐플라스틱으로 만든 치약짜개 등 재활용 ‘굿즈’를 제공하죠.”

별도로 모으면 우유팩은 고급 화장지로, 종이에 비닐과 은박지가 붙은 멸균팩은 키친타월로 재활용할 수 있다. 실리콘은 다시 실리콘으로, 병뚜껑처럼 손바닥보다 작은 플라스틱 조각들은 플라스틱으로 다시 태어난다. 알맹은 매달 우유팩은 주민센터에, 다른 것들은 관련 업체에 보내고 그 내용을 온라인에 공개한다. 회수센터에 모인 재활용 폐기물은 지난해 7월 49kg에서 올해 5월 268kg으로 껑충 뛰었다.

“우유팩, 실리콘…. 제대로만 모으면 다 재활용할 수 있어요. 그런데 수거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으니 마구 뒤섞여 배출되고 그냥 쓰레기가 돼요. 알맹을 찾는 시민들은 정성스럽게 우유팩을 씻어 말려 가져와요. 쓰레기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죠. 지자체들이 적극 나서서 재활용품 분리배출 시스템을 정비해야 해요. 시민들은 행동할 준비가 돼 있어요.”

이달 15일이면 알맹의 건물 계약 기간이 끝난다. 당분간은 그대로 운영한다. 건물 재건축이 확정될 때까지는 그대로 쓰기로 건물주와 협의했다.

새로운 도전도 시작한다. 26일 옛 서울역사 옥상에 조성된 서울역옥상정원에서 ‘알맹상점 리스테이션’이 문을 연다.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플라스틱 재활용 과정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작은 플라스틱들을 색깔별로 나누고, 파쇄하고, 성형 틀에 넣어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과정을 경험하는 거예요. ‘쓰레기가 이렇게 바뀐다고?’ ‘자원 순환이 제대로만 되면 쓰레기가 줄겠네?’라고 생각이 바뀔 거예요. 알맹은 ‘쓰레기는 줄일 수 있다’는 메시지와 그 방법을 보여주는 공간이에요.”

강은지 기자 kej0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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