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존재하는, 살아가는 이유가 당신이란 걸” ‘은사’ 서수용 교장 “선물처럼 나에게로 왔다” 아리스는 함께여서 행복한 “식구”
지난해 9월 군 입대 이후에도 큰 사랑을 받는 김호중. 뉴스1
팬덤 아리스가 만들어낸 기록의 역사
김호중이 노래 ‘살았소’의 가사를 인용해 팬들을 향한 마음을 드러낸 자필 편지. 김호중 ‘네버엔딩 스토리’ 캡처
어디 그뿐인가. 지난해 8월 사흘간 열린 김호중의 팬미팅 실황을 드라마처럼 엮은 영화 ‘그대 고맙소’는 개봉 6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했다. 김호중을 전속모델로 기용한 10여 개의 브랜드도 매출 신장 효과를 톡톡히 본 것으로 조사됐다. 김호중이 남긴 일련의 기록은 그의 팬덤 ‘아리스(ARISS)’의 화력과 궤를 같이한다. 아리스는 독일어로 서정곡을 뜻하는 ‘아리(Arie)’와 ‘스타(Star)’를 합친 말로 ‘트바로티 김호중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별들’이라는 의미다. 김호중이 카페지기인 공식 팬카페 ‘트바로티’에는 11만 명에 육박하는 아리스가 몸담고 있다.
트바로티 카페 회원들은 지역별로 응원방을 만들어 스마트 기기에 익숙지 않은 7080세대 어르신도 음원과 영상 스트리밍(스밍)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다. ‘덕질’만이 아니라 선행도 함께 한다. 지난해부터 지금까지 아리스가 ‘따로 또 같이’ 펼친 나눔 활동은 공식 집계만 45건에 이른다. 누락된 사례도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나눔 활동에 적극적인 아리스들은 “김호중 씨에게 선한 영향을 받았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의 전언에 따르면 김호중은 경제 사정이 좋지 않던 무명 시절부터 꾸준히 재능을 기부했다. 충남 논산에 있는 아동보육시설 계룡학사가 그런 곳으로 꼽힌다.
선한 영향력 키우는 아리스의 기부 백서
아리스는 팬카페 트바로티에서 지난해 4월 2억800여만 원의 성금을 모아 절반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극복성금으로, 나머지 반은 김호중의 모교인 김천예고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김천예고는 이 장학금을 지난해 전교생 300명에게 인당 30만 원씩, 올해 신입생에겐 인당 20만 원씩 지급했다. 팬카페는 지난해 8월 물난리가 났을 때도 약 3억2000만 원의 수재의연금을 마련해 희망브리지 전국재해구호협회에 전달했다.전북아리스 김테너방은 지난해 11월 취약계층에 연탄 4500장을 기부했다. 전북 전주아리스 제공
지난해 12월 송년회 비용을 아껴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한 제주아리스. 제주 아리스 제공
지난 3월 한울타리에 현금과 생활용품을 기부한 경남 진주아리스. 경남 진주 아리스 제공
서울 지역 아리스들도 다양한 나눔 활동을 펼쳤다. 강남아리스는 지난 4월 '나더사' 발매 1주년을 맞아 김천예고에 발전기금 명목으로 2000만원을 기부했다. 빈체로강남아리스는 지난해 12월 계룡학사에 의류와 물품을 기탁했다. 영등포아리스는 같은 달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 조손가정 아동 지원금을 보냈다. 서남아리스는 지난해 11월 소외계층에 겨울이불 100채와 라면 200박스를 후원했다. 중랑구 신내아리스는 3월 김호중의 앨점 296장과 부식 상자를 관내 복지관에 기부했다. 인천 부평아리스는 지난해 11월 어려운 이웃에 연탄 5000장과 수제 마스크 110개, 마스크필터 1100개, 현금 72만4600원을 전달했다. 검단아리스는 지난해 말 관내 보육원에 현금 243만 원과 의류, 간식을 기부했다.
대전·세종 지역 아리스는 지난해 12월 계룡학사에 김장김치를 지원했다. 대전, 세종 지역 아리스 제공
김호중의 아리스, 아리스의 김호중
경기 고양아리스는 4월 30일 월드비전의 아프리카 우물 사업에 200만 원의 지원금을 전달했다. 경기 고양아리스 제공
지난 4월 강릉시청에 성금 300만 원을 전달한 강원 강릉아리스(왼쪽). 김천아리스는 지난해 12월 7일 관내 보육원에 물품을 기증했다.
김호중은 “선행 릴레이를 펼치는 아리스에게 많이 배운다”며 팬들의 사랑에 ‘기부’로 화답하고 있다. ‘최애’와 팬덤이 서로에게 선한 영향을 끼치는 셈이다.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으로 스타덤에 오른 후 김호중이 처음 발표한 음원 ‘나더사’의 판매 수익금도 나눔 활동에 쓰였다. 김호중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전국적으로 확산한 지난해 6월 어르신들을 위한 손소독제 2만 개를 구입해 한국노인인력개발원에 기부했다. 군 입대를 앞둔 9월 초순에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청소년의 꿈을 응원하며 운동화 1000켤레를 한국청소년연맹 사회공헌사업 ‘희망사과나무’에 기증했다. 같은 달 그는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내건 공약을 이행하고자 계룡학사에 자동차 1대와 마스크를 기부했다.
계룡학사는 그와 인연이 깊다. 방송에서 그는 “영화 ‘파파로티’의 OST를 나와 함께 부르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으며 계룡학사와 인연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2013년 개봉된 ‘파파로티’는 성악가로서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김호중과 은사인 서수용 현재 김천예고 교장의 실화를 토대로 한 휴머니티 영화다.
김호중은 울산 태생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성악을 시작한 건 중학교 시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부르는 ‘네순 도르마’를 듣고 나서다. 짧은 준비 기간에도 타고난 기량 덕에 예고 진학에 성공하지만 2학년을 마치기도 전에 전학을 가야 할 처지에 놓인다.
서수용 선생님을 만나기 전까지 김호중은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아’라는 인식에 갇혀 있었다. 이런 김호중에게 서 교사는 학교생활의 재미와 타고난 재능의 가치를 일깨워준 스승이다.
김호중의 ‘네순 도르마’
서 교장은 5월 7일 ‘신동아’와 전화 인터뷰하면서 “처음 만난 자리에서 김호중의 노래를 듣자마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어진 그의 설명이다.
“정말 잘할 수 있는 테너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테너는 여성 음역대의 고음을 낼 수 있느냐가 굉장히 중요해요. 저도 테너지만 그게 쉽지 않아요. 성악을 전공하고 독일에서 10년 정도 유학하면서 테너로서 한계를 많이 느꼈어요. 거기서 오는 좌절감과 자괴감이 엄청났죠. 그런데 호중이에게서 잘할 수 있는 테너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테너는 정말 많지만 잘하는 테너가 얼마나 귀한지 아니까 제 인생의 일정 부분을 걸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저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데 이 아이를 만나려고 많은 길을 돌아왔구나 싶더군요.”.
이날 김호중은 그에게서 “목소리로 평생 먹고살 수 있겠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김호중이 김천예고로 학적을 옮긴 후 그는 6개월 동안 김호중을 매일 대구에서 김천까지 등하교시키는 정성을 쏟았다. 그 이유를 묻자 서 교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이 아이의 단점이 아침에 잘 못 일어나요. 그 때문에 전에 다니던 학교에서 무단결석과 조퇴를 많이 했어요. 이런 아이는 보통 아이보다 더 적극적인 케어가 필요하죠. 그래서 내가 새벽같이 가서 아이를 깨워 등하교를 시켰어요.”
김호중은 당시 그의 집과 자동차로 20분 거리에 있는 대구시의 한 원룸에서 살고 있었다, 서 교장은 그때 김호중에게 ‘네순 도르마’를 연습하게 했다. 성악가가 10년 걸려 배우는 그 노래를 김호중은 3개월 만에 완벽하게 소화했다. 서 교장은 “호중이를 우리 학교에 데려와 가르치면서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살리에르의 콤플렉스와 흡사한 감정에 빠진 적도 있다”면서 “내가 수십 년 동안 공부하면서 고민하고 힘들어했던 걸 이 아이는 너무나 쉽게 해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호중의 음악적 기량은 성장을 거듭했지만 교우관계는 큰 진전이 없었다. 서 교장은 그 당시 아이들이 김호중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 걱정돼 같은 테너인 이재명이라는 학생에게 김호중의 또래 멘토가 돼주라는 ‘특명’을 내렸다.
“호중이가 우리 학교에도 적응하지 못할까 봐 걱정됐어요. 이전에 다니던 예고에 적응하지 못한 건 상대적 박탈감이 크게 작용해서예요. 대도시에 있는 예고에는 집안 형편이 좋은 아이들이 많거든요. 집안이 부유한 아이들은 여러 번 레슨을 받을 수 있는 반면 호중이는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돼서 절망감이 컸던 걸로 알고 있어요. 김천예고는 대도시에 있는 예고보다 그런 위화감이 덜한 편이에요. 문제는 호중이도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었던 거죠.”
먼저 다가와 “친하게 지내자”고 말을 거는 친구가 생기자 김호중의 표정도 밝아졌다고 한다. 서 교사는 “이재명이라는 친구를 통해 호중이가 다른 아이들과도 친해졌다”면서 ”호중이의 웃는 얼굴에서 어린아이의 모습이 보였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은사’ 서수용 “선물처럼 내게 왔다”
김천예고 서수용 교장(오른쪽)과 김호중. 서수용 제공
김호중은 ‘네순 도르마’를 연습하는 과정이 담긴 동영상이 유튜브에서 화제를 모아 뜻밖의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이 영상을 보고 SBS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에서 출연 제의가 들어와 ‘고딩 파바로티’로 알려졌다.
고교를 졸업한 후 김호중은 한양대 성악과에 입학한다. 서 교장에 따르면 당시 서울대 성악과 교수도 김호중을 탐냈지만 수능 최저등급제에 가로막혔다. 한양대를 4년 장학생으로 들어갔음에도 중도에 자퇴한 김호중은 이후 대학이라는 틀에 얽매이지 않고 이탈리아, 독일 등지를 다니며 유명한 선생님에게 배움을 청했다고 한다.
2013년 3월 영화 ‘파파로티’가 개봉된다. 김호중은 같은 달 가수 데뷔곡인 ‘나의 사람아’를 발표한다. 서 교장은 “당초 기대와 달리 존재감이 자꾸 희미해져 호중이가 굉장히 힘들어했다”고 그의 심경을 대변했다. 클래식 전공으로 국내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 성악가로서 설 수 있는 자리가 많지 않았다. 김호중은 작은 음악회에 출연하거나 예식장에서 축가를 부르며 생계를 꾸렸다. 무명 가수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힘겹게 지내던 그에게 지난해 방송된 트로트 경연 프로그램 ‘미스터트롯’(이하 ‘미트’)은 스타로 발돋움하는 발판이 됐다. 서 교장의 말이다.
“호중이에게서 출연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어요. 처음엔 반대했지만 생각해 보니 좋은 기회로 여겨졌어요. 호중이가 소리 천재예요. 한번 들은 것은 그대로 따라 부르거든요. 너무 성악적으로 소리내지 말고 트로트 맛이 날 수 있도록 해보라고 얘기해 줬어요.”
서 교장은 김호중의 ‘인생 멘토’인 셈이다. 그는 기자가 “김호중 씨가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인 것 같다”고 말하자 손사래를 쳤다.
“우여곡절 많은 제 인생에 호중이가 선물처럼 왔어요. 교사로서 이런 보배 같은 아이를 만난 건 행운이에요.”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그는 김호중이 가수 진성의 ‘태클을 걸지마’를 부른 첫 무대부터 예감이 좋았다고 말했다. 아리스 중에도 이 무대를 보고 ‘덕후(팬)’가 된 사람이 적지 않았다. 5월 8일 저녁, 각 지역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아리스 10명과 카카오톡으로 비대면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주 지역 ‘해바라기’, 전북 지역 ‘꽁여사’, 강원 지역 ‘태은맘’, 경남 지역 ‘웡그M’, 대전·세종 지역 ‘아하바’, 거제도 지역 ‘만개’, 경기 지역 ‘새벽별사랑’, 충북 지역 ‘순수지향’, 대구 지역 ‘별이빛나’, 서울 지역 ‘행복버튼’이 그들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 노래를 묻는 질문에는 가수 최진희의 ‘천상재회’라는 답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해바라기’는 “암수술을 두 번이나 해서 ‘천상재회’를 들었을 때는 나를 위해 부르는 노래 같아 눈물이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제어가 안 됐다”고 털어놨다. ’새벽별사랑’은 “현장에서 들으며 머리가 쭈뼛 서고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행복버튼’은 “돌아가신 아빠도 생각나고, 먼저 떠난 친구도 보고 싶어 엄청 울면서 봤다”고 했다, ‘만개’는 “밭에서 노래를 듣다가 소리 없이 울었다”고 고백했다.
팬들과의 소통에 공을 들이는 김호중이 한 말 가운데 심금을 울린 ‘감동 멘트’로 여러 아리스가 ‘식구’를 꼽았다. ‘별이빛나’는 “팬을 식구라 부르며 편지글로 소통하는 배려심에 항상 감동을 받는다”고 말했다. ‘웡그M’은 “팬들을 식구라고 칭하고, 입대 후에는 주말마다 편지로 안부를 전하는 모습이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새벽별사랑’은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 힘들면 힘들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정제되지 않은 그의 고백이 사랑스럽고 더 가깝게 다가온다”고 했다. 이어 “입대 전 고마운 사람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며 ‘늘 사랑하오’ ‘함께 갑시다’라고 한 말이 가슴 뭉클했다. 입대하기 전 ‘네버엔딩 스토리’를 통해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살아가는 이유가 당신이란 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심쿵’ 했다”고 털어놨다. 어떤 면에 매료됐느냐는 물음에 ‘아하바’는 “암 투병으로 고립된 독방에서 처음 ‘미트’를 보는데 표정, 목소리에서 정말 진심이 느껴져 나와 감정이 교류되는 것 같았다. 백 마디 말보다 더 진실한 표정을 잊을 수 없다”고 답했다. ‘꽁여사’는 “노래 가사를 마음으로 전하는 남다른 감성과 진심이 묻어나는 흉내 낼 수 없는 표정에 반했다”고 고백했다.
‘순수지향’은 팬카페와 지역 응원방에서 온라인으로 덕질을 함께 하면서 “삶의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음원이나 영상 스밍을 통해 소속감과 결속력이 강해지는 걸 느낀다” “최애에 대한 설렘으로 죽어 있던 연애세포가 되살아나는 것 같고 젊어지는 기분”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비대면 인터뷰를 마치며 김호중에게 바라는 점을 물었다. 아리스들은 무엇보다 “건강하게, 무탈하게 다시 만나기”를 소망했다. ‘해바라기’는 “울림과 용기를 주는 세계적인 가수가 되길 응원한다”고 말했다. 이들 아리스는 김호중의 노래 ‘살았소’의 가사를 인용해 그를 향한 마음을 고백했다.
“당신을 위해 살겠소. 사랑하고 또 사랑합니다.”
김지영 기자 kjy@donga.com
[이 기사는 신동아 6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