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노트북은 가성비와는 거리가 먼 제품으로 여겨졌지만 2021년 초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암호화폐 채굴 열풍, 반도체 수급난 등 여러 요인이 겹치면서 주요 PC 부품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몇 가지 원인이 해소되긴 했지만 당장은 가격이 크게 내려갈 기미가 보이지도 않는다. ‘가성비=자가 조립 데스크톱 PC’라는 등식이 예전과 다르게 성립하지 않는다.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필수적인 게이밍 PC의 경우는 더 하다. 그래픽카드 품귀가 워낙 심해 구하기도 힘들뿐더러, 물량이 있어도 웃돈을 크게 줘야 살 수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올인원 데스크톱이나 노트북이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더 좋은 경우도 적지 않다.
특히 최근에는 괜찮은 스펙을 갖춘 게이밍 노트북들이 합리적인 가격에 많이 출시되고 있다. 노트북과 가성비 거리가 멀다는 건 이제 옛말이 된 셈이다. 고급 기종인 ROG 라인업으로 게이밍 노트북 시장을 주름잡고 있는 에이수스도 ‘가성비’를 살린 노트북 라인업인 출시하고 있다. 바로 TUF 시리즈다.
에이수스 TUF 게이밍 F15 (출처=IT동아)
이번에 리뷰할 '에이수스 TUF 게이밍 F15' FX506HM-HN003 모델은 약 170만 원대라는 괜찮은 가격으로 인텔 i9-11900H, 엔비디아 지포스 RTX 3060, 16GB 메모리, 1TB SSD의 구성을 제공한다. 디스플레이는 15.6인치에 FHD(1920x1080) 해상도, 144hz 주사율, 적응형 동기화(어댑티브 싱크)을 지원한다. 게이밍 노트북이니 만큼 고해상도보다는 고주사율을 선택했다.
디자인은 직선적이면서도 중후한 인상을 준다. 흔히 ‘게이밍 기어’하면 달라붙는 화려한 색상이나 LED는 최대한 절제했기 때문에 그런 디자인이 부담스럽다면 환영할 만한 디자인이다. 얼핏 군용 장비를 연상하게 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실제로 군용 장비 수준 내구도 테스트인 ‘MIL-STD-810H’을 통과했다. 특히 냉각 시스템에 먼지를 배출하는 기능이 있어서 먼지로 인한 성능 저하나 고장을 늦출 수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허니콤 그립 덕분에 손으로 잡았을 때 좀 더 안정적이다 (출처=IT동아)
노트북 아래에는 ‘허니콤 그립’이라는 육각형 무늬가 있는데, 내부 냉각 팬이 공기를 빨아들이는 흡기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마찰력을 높여서 쉽게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는 역할도 한다. 실제로 무릎에 올렸을 때나 손으로 잡았을 때 같은 무게(약 2.3kg)의 다른 노트북보다 좀 더 안정적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외관에서 다소 절제한 듯한 ‘게이밍’ 감성은 키보드에는 한껏 발휘했다. 게임에서 방향키로 활용하는 WASD 키만 하얀 반투명으로 처리해 눈에 확 띈다. 점프 키로 활용하는 스페이스 키도 왼쪽이 조금 더 두꺼운 형태라 왼손 엄지를 올려둘 때 좀 더 안정적이다. 키가 눌리는 깊이(키 트래블)도 1.8mm라서 누르는 맛도 충분했다.
게이밍 노트북답게 여러 게임에서 방향 키로 활용되는 WASD만 반투명으로 마감했다 (출처=IT동아)
LED 효과도 빠지면 섭섭하다. 키보드 아래에 여러 색으로 빛나는 LED가 탑재됐다. LED 효과는 펑션 키와 방향키를 조합하면 바꾸거나 밝기를 조절할 수 있다. 키보드 배열은 텐키까지 갖춰진 풀사이즈이기 때문에 문서 작업을 할 때도 불편함이 전혀 없다.
TUF FX506HM의 외부 단자 구성. USB 타입 A 위주 구성에 썬더볼트4를 더했다 (출처=IT동아)
리뷰한 모델에 탑재된 i9-11900H는 인텔 11세대 모바일 프로세서 중에서 8코어 16스레드를 갖춘 최상위 제품군에 속하는 제품이다. CPU 성능 테스트에 많이 사용하는 시네벤치 R23을 실행한 결과, 멀티코어 점수 12470점, 싱글코어 점수 1569점을 기록했다. 이 정도 점수면 CPU 성능이 일반적인 작업 용도나 게이밍에서 발목을 잡을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시네벤치 R23 결과. 전원 연결 상태에서 터보모드로 테스트한 결과다 (출처=IT동아)
GPU는 지포스 RTX 3060 6GB이 탑재됐는데, 제조사 설명에 따르면 기본 90W에 다이나믹 부스트 시 95W로 전력 제한이 걸려있다. RTX 3000 모바일 시리즈는 같은 칩셋이라도 각 제조사가 걸어놓은 전력 제한에 따라 성능 차이가 크게 날 수 있다. 최대 95W라는 제한 때문에 성능이 다소 부족하지 않을까 우려했지만, 실제 테스트를 해봤더니 우려에 불과했다.
먼저 ‘오버워치’의 경우 FHD 해상도, 최상 옵션에 렌더링 스케일 100%로 설정했을 때 연습장 기준 150~220FPS(Frames Per Second, 초당 프레임 수)을 꾸준히 유지했다. 다음으로 우주 비행 시뮬레이터 ‘스타워즈 스쿼드론’ 초반 미션을 진행해보니 FHD 해상도, 최상 옵션에서 120~144FPS를 유지했다. 디스플레이가 어댑티브 싱크를 지원하기 때문에 FPS가 화면 주사율을 뛰어넘을 때 화면이 찢어진 듯 보이는 ‘티어링’ 현상도 나타나지 않았다.
오버워치는 최상 옵션에서 200FPS 내외로 매우 부드럽게 구동됐다 (출처=IT동아)
지포스 RTX 시리즈에서 지원하는 레이 트레이싱 등 효과를 시험할 수 있는 최신 고사양 게임도 테스트해봤다. ‘사이버펑크2077’은 FHD 해상도, 레이트레이싱 울트라 옵션(DLSS 자동)에선 30~40FPS, 높음 옵션에선 50FPS를 유지했다.
사이버펑크2077 같은 고사양 게임도 충분히 소화한다 (출처=IT동아)
‘컨트롤’은 높음/레이트레이싱 높음 설정에 DLSS를 켰을 때는 60프레임 이상을 유지했다. 이렇게 혼자서 느긋이 즐기는 게임이라면 최소 30FPS 이상만 안정적으로 유지해도 문제가 없고, 60FPS라면 ‘부드럽다’는 느낌을 받으며 쾌적하게 즐길 수 있다.
컨트롤도 높음, 레이트레이싱 높음, DLSS 사용 설정에서 원할하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출처=IT동아)
참고로 DLSS(Deep Learning Super Sampling)는 지포스 RTX 시리즈부터 지원하는 해상도 향상 기술이다. FHD(1920x1080p) 설정에서 DLSS를 켜면 실제로 그려지는 화면은 HD(1280x720p) 수준이지만, 인공지능이 화면을 보정해 해상도를 FHD까지 높여준다. 해상도 향상에 따른 성능 저하를 줄여준다.
‘컨트롤’에서 DLSS를 껐을 때는 40프레임 대, 켰을 때는 60프레임 대였다. 약 1.5배 정도 성능이 향상됐다. 빠른 움직임이 있는 화면 등에서 화질 저하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걸 감수할 수 있을 만큼 성능 향상 폭이 크다. FX506HM이 레이 트레이싱과 DLSS를 충실히 지원하는 사양 구성인 만큼, 칼 같은 해상도보다 풍부한 시각 효과와 높은 FPS를 선호한다면 적극적으로 활용해볼 수 있다.
DLSS 껐을 때(왼쪽), DLSS 켰을 때(오른쪽) 차이. 미세하게 텍스처 선명도 차이가 나지만 가까이서 자세히 보지 않으면 구분하기가 힘들다 (출처=IT동아)
FX506HM은 단순 프로세서 성능만 보자면 작업용으로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이다. 다만 디스플레이 색 재현율이 sRGB 62.5% 수준인 게 걸림돌이다. 빈말로도 색 영역이 넓다고는 할 수 없다. 정확한 색 확인이 필요한 프로 수준 영상이나 사진 작업에 활용하려면 외부 디스플레이가 필수적일 듯하다. 물론 취미 수준의 영상 편집에는 이 정도로도 충분할 수 있다.
고성능 노트북이 대부분 그렇듯 배터리나 휴대성에 큰 기대를 걸어선 안 된다. 배터리 용량은 90Wh이다. 제조사 설명에 따르면 웹 브라우징, 비디오 재생 시 최대 14.7시간 유지된다고 한다. 제조사 자체 테스트보다 좀 더 가혹한 상황을 상정해서 최대 밝기, 성능 모드에서 유튜브 FHD 영상을 와이파이 환경에서 연속 재생해 봤다. 배터리 완충 상태에서 전원 부족 알림이 뜨기까지 약 3시간 40분이 걸렸다.
리뷰에 사용한 'FX506HM-HN003' 모델엔 인텔 i9-11900H가 탑재됐다 (출처=IT동아)
같은 조건에서 여러 게임을 돌아가면서 돌렸을 때는 약 1시간 15분이 걸렸다. 사실 유지 시간에 문제가 없더라도, 배터리 상태로 게임을 즐기는 건 추천하기 힘들다. 전력 제한 문제 때문에 제 성능이 나지 않는다. 비교적 성능을 덜 타는 저사양 게임이나 빠른 움직임이 필요하지 않은 턴제 RPG 정도는 괜찮지만, 최신 고사양 게임은 플레이가 어렵다. 배터리 상태로 사이퍼펑크2077를 돌렸을 때 레이트레이싱 울트라 옵션에서 FPS가 8~20에 불과했다.
물론 이는 FX506HM 시리즈 문제라기보다는 현존하는 게이밍 노트북들이 공통으로 안고 있는 한계다. 소음과 발열 문제도 마찬가지다. 무거운 작업 프로그램이나 게임을 돌리면 여지없이 큰 팬 소음과 뜨거운 바람을 내뿜는다.
외부 스피커나 헤드폰을 연결하면 DTS:X 울트라를 이용할 수 있다 (출처=IT동아)
스피커도 약간 아쉽다. 개인적으로 소리가 다소 먹먹하게 들리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하지만 대부분 게이밍 환경에서는 헤드폰을 연결해서 사용하기 때문에 큰 단점은 아니다. ‘DTS-X 울트라’를 지원하기 때문에 헤드폰을 연결하면 가상 입체 음향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내장 마이크도 2방향 노이즈 캔슬링을 지원하기 때문에 키보드 소리나 주변 소리를 거를 수 있다. 음성 채팅이나 화상 회의 때 유용하게 쓸 수 있을 듯하다.
전체적으로 봤을 때 FX506HM은 불필요한 요소를 최대한 덜어내고 실속있는 구성을 선택한 제품이다. 요즘처럼 컴퓨터 부품 가격이 ‘부르는 게 값’인 상황에서 이만한 가격대에 이만한 성능과 구성을 갖춘 게이밍 시스템을 마련하는 건 쉽지 않다. FX506HM 시리즈 가격은 사양 구성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120만 원대부터 시작한다. 리뷰에 쓴 FX506HM-HN003 윈도우 미탑재 모델 기준 온라인 쇼핑몰에서 약 170만 원(2021년 6월 기준), 윈도우 탑재 모델은 약 187만 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동아닷컴 IT전문 권택경 기자 tikitak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