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이준석 대표 선출의 정치공학적 유불리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졌다. 그러나 정작 여야 모두 왜 사상 초유의 ‘현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는 별로 들리지 않는다.
‘이준석 현상’의 본질은 여야 모두에 대한 유권자들의 최후통첩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 이상 우리 정치를 지배해 온 이념 논쟁과 진영 논리에 대한 심판인 것이다. 현재 여야 모두 윤석열, 이재명 등 ‘비주류’ 대선후보들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 해석될 수 있다.
‘협치’의 지표라 할 수 있는 정당 간 공동발의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금년에는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전체 공동발의 중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상대 정당 소속 의원들과의 공동발의가 차지하는 비율이 각각 5.5%와 9.5%에 불과했다. 반면 자기 정당 소속 의원들과의 공동발의 비율은 민주당이 94.5%, 국민의힘이 83.9%에 달했다.
우리 정치가 항상 이랬을까. 1987년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는 매년 정치 상황에 따라 상대 정당과의 공동발의 비율이 진보 정당은 19.4%에서 79.6%, 보수 정당은 18.0%에서 53.3%를 오갔다. 1987년부터 2005년까지 평균 상대 정당과의 공동발의 비율은 약 49.4%(진보 정당)와 36.0%(보수 정당)였다. 전반적으로 정당 간 공동발의가 지금보다 훨씬 활발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정당 내 공동발의 비율은 2000년대 중반까지 진보 정당은 20.4%에서 80.6%, 보수 정당은 41.7%에서 74.6%를 오갔다. 평균 50.6%와 57.2% 정도로 지금보다는 확연히 낮았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서로 치열하게 맞서 싸웠던 의원들이 여전히 국회를 주도하던 때에도 오히려 협치가 지금보다 잘됐던 것이다. 민주화의 아이러니라 할 만하다. 반면 현재 두 거대 정당의 핵심 인사들 중 다수는 2000년대 중반부터 우리 정치를 경험해 본 적 없는 수준의 극단적 양극단화로 몰아간 장본인들이다.
2000년대 중반 이후 여야를 불문하고 불과 몇 %포인트 차이로 당선되었음에도 국민으로부터 국가를 갈아엎으라는 명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제왕적 대통령’들과 집권세력 모두가 ‘이준석 현상’ 유발자들로 볼 수 있다. 그러니 ‘이준석 현상’은 역사상 최고 수준의 정치적 양극단화를 초래한 현 여야 기성 정치권에 대한 최후통첩인 셈이다. 내년 대선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도 분명해졌다.
한규섭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