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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리케이트에, 통신 제한…美-러 정상회담 하루전, 긴장감 도는 회담장

입력 | 2021-06-15 22:40:00


“여기 공원이라고 들어가면 안 됩니다. 당신, 뉴스도 안 보나요?”

15일(현지시간) 오후 1시. 스위스 제네바에 위치한 레만 호수. 총 면적 580㎢, 길이가 73㎞에 달해 바다같이 보이는 이 호수의 남쪽으로 ‘라 그렁주’ 공원이 보였다.

이 공원에 들어가려 하자, 입구를 지키던 경찰이 거세게 제지했다. 태연하게 ‘난 관광객’이라며 ‘공원인데 왜 못 들어가냐’고 묻자 한 경찰은 ‘신문, TV도 안보냐’며 핀잔을 줬다. 옆에 있던 여경은 예민한 말투로 “오늘 내일 모두 접근 금지다. 옆에 있는 철조망과 바리게이트 안 보이냐. 중요한 행사가 있다”고 말했다.

미러 정상회담이 열리는 빌라 라 그렁주’(Villa la Grange)로 들어가는 입구. 경찰이 막고 검문을 하고 있다. 제네바=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이 공원 내에 건립된 18세기 고딕 양식 저택인 빌라 라 그렁주‘(Villa la Grange)에서는 다음날인 16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79)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69)의 첫 정상 회담이 열린다. 이에 철통같이 경비를 하고 있었던 것.

공원 전체는 바리케이트, 철조망으로 둘러져있었다. 날카로운 철조망처럼, 16일 미러 정상은 이곳에서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을 비롯해 지난해 12월 미 부처 및 기업 대규모 해킹,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 탄압 등 인권 논란, 북한과 이란 핵문제 등을 두고 첨예한 공방전을 벌일 예정이다.

이날 기차역이 있는 제네바 도심은 비교적 조용했다. 푸틴 대통령이 묶을 것으로 알려진 레만호변 포시즌 호텔도 별도의 바리게이트는 없었다. 그러나 협상장이 있는 공원으로 다가갈수록 일대를 무리지어 순찰하는 경찰이 1,2명에서 5~6명으로 급격히 늘어났다. 공원 전체 외곽으로 바리게이트와 그 위 철조망이 설치돼 있었고, 접근금지를 알리는 띠마저 둘러져있었다. 회담장을 배경으로 방송을 진행하기 위해 입구 쪽에는 전 세계에서 몰린 언론사들의 카메라 장비 수십대가 나열했다.

회담 장소 앞에는 순찰 중인 경찰병력과 함께 각종 군장비가 설치됐다. 제네바=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회담장인 ’빌라 라 그렁주‘ 일대 뿐 만이 아니다. 특히 레만호수 내에서 육지방향으로 진입하지 못하도록 호숫가에도 바리게이트와 철조망이 설치됐다. 테러리스트가 잠수 등으로 이동해 회담장을 타격하는 것을 막으려는 조치로 보였다 이를 반영하듯 공원 입구에는 각종 군용 트럭과 장비가 가득했다. 이런 모습이 신기한 듯 사진을 찍던 지역 주민 호버트 씨는 “세계에서 가장 관심이 높은 정상회담이라 기록에 남기려 한다”고 말했다. 회담장 근처로 갈수록 4G나 5G 통신이 먹통이 됐다.

제네가 거리 곳곳에는 미국 성조기와 러시아 국기기가 걸려있다. 왼쪽으로 레만호수의 명물 ‘제트분수’가 보인다. 제네바=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호수 건너 회담장 맞은 편에 위치한 유엔 제네바 사무소 일대도 곳곳마다 이동이 제한됐다. 사무소 인근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묶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회담 하루 전인 이날 스위스에 입국했다. 푸틴 대통령은 회담 당일에 스위스에 입국한다.

양국 정상은 헬리콥터를 이용해 ’라 그렁주‘에 입성하게 된다. 회담 당일에는 제네바 내 학교들까지 하루 방학을 시행한다고 스위스 정부는 밝혔다. 15~17일에는 제네바 상공에 비행기 운항도 금지된다.

레만호수 건너 편에서 본 16일 18세기 고딕양식 저택 ‘빌라 라 그랑주’. 앞에 거대한 흰 천막으로 덮인 미디어 센터가 설치됐다. 제네바=AP 뉴시스

회담장인 ’빌라 라 그렁주‘는 3층 규모에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가진 건축물로 유명하다. 18세기 스위스 명문가 륄랭 가문이 건립한 이 건물은 또 다른 명문가인 파브르를 거쳐 1917년 제네바에 소유권이 이전됐다. 미국-러시아 정상회담 외에도 역사적 의미가 있는 여러 사건이 펼쳐진 장소이기도 하다.

1864년에는 제1대 노벨 평화상 수상자이자 국제적십자위원회의 공동 창시자인 장 앙리 뒤낭(1828~1910년)이 이곳에서 국적에 구애받지 않는 구호활동을 원칙으로 하는 제네바 협약을 체결했다. 1969년에는 교황 바오로 6세가 저택 앞에서 7000명의 군중을 모아두고 세계평화와 사랑을 바라는 미사를 열기도 했다.

16일 미러 정상회담으로 다시 한번 제네바도 국제사회 긴장 완화를 위한 최적의 외교 장소로 조명을 받게 됐다. 실제 1985년 11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전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이 제네바에서 첫 정상회담을 열어 핵무기 감축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곧 냉전종식으로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냉전 이후에도 유럽 국가들의 협상 장소로 자주 활용됐다. 옛 소련 영향 하에 있던 동유럽 국가들과 미국과 서방동맹을 이룬 서유럽 국가들이 제네바를 외교무대로 갈등을 조율했다. 2009년 3월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이 제네바에서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을 처음으로 만나 미러 관계 개선을 추진했다.

당시에는 ’리셋‘ 사건이 화제가 됐다. 클린턴은 당시 라브로프 장관에게 “양국 관계 개선을 재설정하자”며 오바마 대통령이 준비한 붉은 리셋버튼(reset button)이 담긴 노란 박스를 선물했다. 그러나 영어 ’리셋‘을 러시아어로 번역을 잘못해 ’과부하‘(overloaded)란 의미의 ’페레그루즈카‘(peregruzka)를 라벨로 붙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제네바=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