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13일 주요 7개국(G7), 14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15일 미국-유럽연합(EU) 정상회의 등에서 사흘 연속 중국을 압박하자 중국이 무력시위에 나섰다. 역대 최대 규모로 군용기를 동원해 대만을 포위하듯 비행한 것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압력에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해석된다.
16일 롄허보 등 대만 언론 등에 따르면 대만 국방부는 전날 중국 군용기 총 28대가 대만 방공식별구역(ADIZ)에 진입했다고 밝혔다. 대만 국방부가 지난해 9월부터 중국 군용기의 ADIZ 접근 상황을 공개한 이후 최대 규모다. 중국은 “영토를 지키기 위한 정당하고 합법적인 비행”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중 두 나라 항공모함 전단(戰團)이 동시에 남중국해에 진입하면서 군사적 긴장감이 높았던 4월엔 군용기 25대를 대만 상공에 띄운 바 있다.
중국의 이번 무력시위에는 최신 전투기 20대와 폭격기 4대, 조기경보기 2대를 비롯해 적 항공기의 전자 장비를 무력화시키고 통신체계를 마비시키는 전자전기 1대, 잠수함을 경계하거나 공격하는 대잠기 1대 등 각종 군용기들이 총동원됐다. 중국 군용기들은 대만 서쪽에서 접근해 섬을 포위하듯이 둘러싸고 남쪽에서 올라오는 지원 병력을 차단하는 듯한 훈련을 한 뒤 기수를 돌려 왔던 경로로 돌아갔다.
앞서 13일 발표된 G7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 전체의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과 양안(중국과 대만)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장려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14일 나토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중국을 ‘구조적 도전’이라고 명시했다. 15일 미국-EU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는 “대만해협 평화와 안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양안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권장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미국은 대만과 무역투자기본협정(TIFA) 협상을 5년 만에 재개할 방침이다. TIFA는 국가간 협정이어서 체결되면 대만을 국가로 인정하는 셈이다.
G7에 이어 미국-EU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도 중국을 겨냥해 대만을 언급하자 EU 주재 중국 사절단은 곧바로 성명을 내고 “미국-EU 정상회의 공동성명은 케케묵은 냉전 시대의 제로섬 사고로 가득찼다”면서 “이런 식으로 소집단을 만드는 방식은 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평화와 안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사절단은 “대만과 홍콩, 신장, 티베트 문제는 중국의 내정이고 동중국해, 남중국해는 중국의 영토 주권과 해양 권익에 관련된 것”이라면서 “이런 문제는 중국의 근본이익에 관한 것이라 간섭을 용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