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
제주 해안 길 곳곳에서 오징어 건조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관광객들은 즉석에서 구워내는 반건조 오징어에 맥주를 마시며 색다른 경험을 한다. 오징어 잡는 철이 아님에도 건조하는 곳이 많아서 의아했지만 예사롭게 지나쳤다. 올레길 걷는 사람들이 늘면서 관광 상품의 일환으로 생긴 게 아닐까 추측만 했다. 며칠 전 해안 길을 걷다가 궁금증을 풀 겸 반건조 오징어와 맥주를 시켰다. 석쇠에 오징어를 굽는 주인장께 몇 가지를 물었다. 원양어선에서 대량으로 잡은 냉동 오징어를 건조한단다. 맛과 크기가 오징어와 한치의 중간 정도라 하여 ‘중치’라 부르다가 ‘준치’로 바뀌었다고 한다. 10여 년 전부터 해풍에 말려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구워서 팔았는데 요즘은 제주도 특산품이 됐다.
옆 테이블에 앉은 관광객의 대화가 들렸다. “제주도에서 잡히는 싱싱한 한치를 건조해서 더 맛있다”는 연인 간 대화였다. 한동안 유심히 살폈더니 준치를 한치로 알고 먹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다. 껍질을 벗겨서 말리기 때문에 한치처럼 보였을 터. 오징어와 달리 한치는 다리 길이가 한 치 정도로 짧다고 하여 붙여진 속명이다. 많은 관광객은 껍질 벗긴 오징어와 한치를 구별하지 못했다. 제주시 한경면 자구내 포구 등 서쪽 해안은 한치와 준치를 말리고, 동북쪽 성산읍과 구좌읍 해안도로에서는 주로 준치를 건조한다.
동해의 살오징어, 서해의 참갑오징어 외에도 무늬오징어라 불리는 흰꼴뚜기, 동해산 한치인 화살꼴뚜기, 제주도 한치로 알려진 창꼴뚜기 등이 우리 바다에 서식한다. 요즘 한치잡이로 불야성이다. 주광성인 한치를 유혹하려는 집어등은 가깝고도 아득한 불빛으로 제주의 밤을 둘러싸고 있다. 오징어는 개떡, 한치는 인절미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제주민은 한치에 애정이 깊다. 지금은 준치 인기가 치솟고 있어 개떡에서 백설기 정도로 오징어 위상이 높아진 듯하다. 한치물회와 한치회가 제철이고, 해풍에 말린 준치까지 더해 입이 즐거운 제주다.
김창일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