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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푸틴에 “러 송유관 사이버공격 받으면 어떻겠나” 직격탄

입력 | 2021-06-17 10:23:00


덕담도 포옹도 없었다. 16일(현지 시간) 제네바에서 열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첫 정상회담은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시작됐다. 두 정상은 서로 눈을 마주치는 것을 피하는 듯했다. 웃음 띈 얼굴로 카메라 촬영에 응한 것도 잠시, 푸틴 대통령은 눈을 치켜뜨고 천장을 응시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입을 꾹 다문 채 정면을 바라봤다. 이후 진행된 회담 시간은 양국 외교장관들만 배석한 소인수회담 및 확대회담을 합쳐 3시간으로, 당초 예상됐던 4~5시간보다 짧았다.


●바이든 “美인프라 공격시 대단히 충격적인 결과 있을 것”


두 정상은 회담 후 각자 단독으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도 상대방의 약점을 꼬집으며 신경전을 이어갔다.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주요한 인프라 공격 등 선을 넘는 행위를 한다면 대응할 것이며, 결과는 러시아에 대단히 충격적(devastating)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의 송유관이 랜섬웨어 공격을 받는다면 어떨 것 같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고 소개했다. 이어 “나는 그에게 우리가 뛰어난 사이버 역량을 보유하고 있음을 알려줬다”며 같은 방식으로 보복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또 푸틴 대통령에게 핵심 인프라 시설들은 사이버 공격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며 공격대상에서 보호받아야 할 16개 분야의 기관 리스트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여기에는 국토안보부가 지정한 통신과 의료, 식량, 에너지 등 분야의 주요 기관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러시아에서 투옥 중인 반체제 인사 알렉세이 나발니의 상황 등 인권 문제도 제기했다. “나는 그에게 인권문제는 언제나 테이블 위에 오를 것이라고 이야기했다”며 “단순히 러시아의 인권침해를 문제삼는 차원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인권 문제를 제기한 것에 대해서는 “이것이 우리나라의 DNA이자 러시아에 투옥돼 있는 미국인의 운명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푸틴 대통령이 비슷한 시각 따로 진행한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1월 의회난입 사태 및 지난해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시위를 러시아 상황과 비교한 것에 대해 “웃기는 일(ridiculous)”이라고 일축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이 행동을 바꾸겠느냐’는 질문에 “전 세계가 러시아의 입지를 약화시키는 방식으로 반응한다면 그들의 행동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그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나가려다가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느냐”는 추가 질문이 나오자 다시 돌아와 날 선 반응을 보이며 “확신하는 게 아니라 사실을 말한 것”이라며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당신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고 훈계하듯 말하기도 했다. 자신이 ‘살인자’라고 불렀던 적대국의 지도자와 마주앉았던 회담의 중압감이 컸던 듯 예상보다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푸틴 “미국이야말로 러시아에 사이버 공격”

푸틴 대통령도 기자회견에서 미국을 겨냥했다. 그는 해킹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는 지적에 대해 “러시아 당국이 무슨 상관이 있냐”며 “러시아의 대미 사이버 공격 주장은 사실이 아니며, 오히려 러시아에 대한 미국의 사이버 공격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나발니가 사망할 경우 대가를 치를 것’이란 바이든 대통령의 경고에는 “그(나발니)는 유죄판결을 받고 집행유예를 위반하는 등 각종 법을 위반해온 사람”이라며 “그는 체포되려고 의도적으로 행동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미국의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과 이로 인해 촉발된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M)’ 캠페인, 미국 대선 뒤 1월 의회난입 사태를 언급했다. “정치적 요구를 갖고 의회로 몰려갔던 사람들 중 400명 이상이 국내 테러리스트라고 불리며 범죄자로 기소되지 않았느냐”며 나발니 상황이 다를 바 없다는 논리를 폈다. “미국의 많은 흑인들이 제대로 항변도 못하고 총에 맞아 죽는다”, “우리는 파괴와 법 위반을 보았고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모든 것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미국의 관타나모 수용소를 언급하면서 “국제법에도 미국 법에도 부합하지 않지만 감옥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건설적 대화…신뢰의 섬광 비쳤다”


다만 푸틴 대통령은 회담 분위기에 대해 “양측 모두 서로를 이해하고 입장을 근접시키는 길을 모색하려는 의지를 보였다”며 “대화는 상당히 건설적이었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과 새로운 이해와 신뢰의 수준에 이르렀나’는 질문에는 ‘인생에 행복은 없으며 오직 행복의 섬광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말을 인용하면서 “현재 (미러 관계) 상황에서 가족 간의 신뢰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지만 신뢰의 섬광은 비쳤다”고 답변했다. 바이든 대통령 개인에 대해서도 “아주 건설적이고 균형 잡혀 있으며 경험이 많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앞서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그를 ‘성인이 된 이후 대부분 정치만 한 직업 정치인’이라고 깎아내렸던 것보다는 좋아진 평가였다.

바이든 대통령도 회담 분위기가 긍정적이었고 서로가 매우 세세한 부분까지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우리의 가치와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두 나라 관계를 상당히 개선할 진정한 전망이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회담장을 나온 직후 리무진에 탑승하기 전 취재진에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기도 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제네바=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