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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文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한 진짜 이유

입력 | 2021-06-17 12:04:00


영국서 주요 7개국(G7) 정상회담을 마친 뒤 문재인 대통령 부부는 오스트리아와 스페인을 방문했다. 두 나라를 찾아갈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

태평성대 시절이면 또 모른다. 코로나19에다 백신 부족사태 때문에 국민은 옴짝달싹도 못 해 스트레스가 하늘을 찌른다. 믿고 싶진 않지만 김정숙 여사한테 벨베데레궁 국빈 만찬 같은 마지막 선물을 안겨주기 위해 기획한 건 아닌지, 몹시 궁금했다.

오스트리아를 국빈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가 빈 쇤부른궁에서 열린 제바스티안 쿠르츠 총리 초청 오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그 이유를 뒤늦게 알게 됐다. 바로 문 대통령이 15일 2박 3일간의 오스트리아 국빈방문을 끝내고(유럽의 소국치고는 일반인 단체관광으로도 매우 긴 기간이다)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서다.

● 좌우 연립정부로 완전한 통일국가를?
“오스트리아는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이었지만 좌우를 포괄한 성공적인 연립정부 구성으로 승전국들의 신뢰를 얻었습니다. 이후 10년의 분할 통치 끝에 완전한 통일국가를 이뤘습니다. 지금도 이념을 초월한 대연정으로 안정적인 정치구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끝났으면 오스트리아에 대한 덕담이구나,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정도가 아니었다. “이제 우리 차례입니다. 우리는 선도국가, 평화의 한반도를 만들어 세계사에 새로운 시작을 알릴 수 있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충분한 자격이 있고 해낼 능력이 있습니다. … 이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믿을 때라는 생각을 합니다.”

즉 문 대통령은 여야가 함께하는 대연정을 생각한 게 아니다. 1945년 2차 세계대전 종전 뒤 오스트리아는 성공했고 한반도에선 실패했던 좌우합작이 이제 우리 차례라는 거다. ‘평화의 한반도’라는 명분으로 남북연합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 통일을 임기 내 돌이킬 수 없게 만들 작정이냐는 합리적 의심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공산주의와 좌우합작은 불가능하다
오스트리아는 나치 점령국이자 패전국으로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에 분할 점령됐던 독특한 나라다(그래서 미국과 소련에 분할점령됐던 한반도와 비교되기도 한다). 소련은 1945년 4월 빈을 비롯한 오스트리아 동부지역을 장악하자마자 서둘러 사회주의자 카를 레너를 앞세워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다른 연합국이 진입하기 전에 소련의 영향력을 굳히려는 속셈이었다.

사회당 출신으로 제1공화국(1918~1934년) 총리를 지낸 레너는 그러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공산주의는 민주주의의 적(敵)임을 간파한 그는 한때 적대세력이던 천주교 보수계의 국민당과 함께 공산당을 적절히 견제했고, 임시정부 관할권 밖의 정치 지도자들과 유대를 강화해 오스트리아를 공산화의 마수로부터 지키는 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2006년 11월 안병영 연세대 교수가 정년퇴임 고별강연에서 강조한 얘기다.

카를 레너. 동아DB

이 같은 정치인들의 좌우협력 덕분에 연합국 분할점령에도 불구하고 1945년 11월 25일 자유총선에서 오스트리아 전역을 관할하는 단일정부가 수립됐다. 보수계 국민당이 85석, 사회당이 76석을 차지한 반면 공산당은 꼴랑 4석에 불과했다. 1947년 공산당이 제 발로 내각을 떠나면서 오스트리아에선 이념을 초월한 좌우합작이 가능해진 것이다.

●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같은 민족, 다른 나라
문 대통령이 페이스북에 쓴 ‘완전한 통일국가’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만일 ‘같은 민족은 같은 나라여야 완전한 통일국가’라고 문 대통령이 믿고 있다면,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통일되어야 마땅하다.

1919년 1차 세계대전 뒤 오스트리아 임시정부는 독일과의 병합을 강력히 주장한 바 있다. 전쟁 패배로 경제난이 극심해진 나머지 같은 게르만 민족끼리 합치지 않는 한, 살 방도가 없다고 믿었고 승전국 반대로 못했을 뿐이다. 1934년 오스트리아 제1공화국이 무너진 것도 또다시 독일과 병합하자는 전체주의 세력이 정권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2차 세계대전 종전이 가까워졌을 때, 오스트리아와 관련해 연합국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과제 중 하나가 독일과의 분리였다(박수희, 2021년, ‘오스트리아식 영세중립화 통일방안의 한반도 적용 가능성에 대한 재고’). 다시는 게르만 민족이 합치려고 꿈도 꾸지 않게끔 한 민족 두 국가로 끊어두고 싶었을 것이다(세계평화를 위해서). 복잡하고, 또 슬픈 문제이지만 우리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반드시 통일해야만 하는가. 심지어 북조선은 김정은 왕조와 핵을 가진 김일성민족인데도?

● 우리의 좌우합작은… 실패해서 다행이다
물론 문 대통령은 오스트리아 동부지역을 분할 점령 중인 소련군을 내보낸 것을 완전 통일로 봤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묻고 싶다. 문 대통령은 지금 대한민국이 미군에 분할 점령돼 있다고 믿고 사력을 다해 종전선언과 주한미군 철수와 평화선언을 추진하는 것인지를.


1947년12월10일 ‘좌우합작위원회’ 기념촬영. 동아DB

우리나라에서도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위해 1946년 초부터 1947년 말까지 좌우합작운동이 존재했다. 그러나 당시 상황은 오스트리아 상황과 다르다. 소련군의 목표는 한반도 전체에 걸친 좌익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 신탁통치반대운동을 벌인 우익은 제외하려 했다. 반면 미군의 목표는 김규식 여운형 등 중도파를 중심으로 미국의 민주당 정부 같은 진보적 정부를 세우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1945년 오스트리아에는 레너라는, 공산당의 속성을 꿰뚫어본 온건 사회주의자가 존재했다. 우리나라에선 천만다행히도 공산당의 속성을 꿰뚫어본 민족주의자들이 존재했다. 독립운동가이자 미군정에서 경무국장을 지낸 조병옥은 “민족진영과 공산진영이 혈투하는 한국의 사회적 현실에 비춰 볼 때 중간노선이라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 결과는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 남북연방제 개헌으로 갈 참인가
2018년 판문점선언 이후 오스트리아식 통일과 영세중립화에 관한 연구와 한반도 적용 주장이 스멀스멀 나오기는 했다. 주로 좌파학자들 사이에서다. 그래도 그것이 문 대통령의 오스트리아 방문과 소감까지 이어질 줄은 몰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알렉산더 판 데어 벨렌 대통령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젊은 날 위수김동(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을 외쳤던 집권세력이다. 설령 내년 대선에서 진다 해도 순순히 정권을 내놓기 쉽진 않을 것이라고 걱정은 했다. 그렇다고 해서 ‘평화의 한반도’를 만드는 좌우합작, 이를 위한 체제변혁이나 심지어 개헌 같은 판 바꾸기를 궁리할 수도 있다고는 상상도 못 했다.

오스트리아의 좌우연정과 통일정부, 여기서 이어지는 평화의 한반도에 대한 상념을 문 대통령이 혼자, 즉흥적으로 페이스북에 쓰지는 않았을 것이다. 문 정권이 앉으나 서나 북에 집착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문 대통령 위에서 더 큰 그림을 그리는 ‘그림자 정부’가 또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것이 알고 싶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