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숨진 채 발견된 A 씨(20)는 경찰이 부실한 대응으로 구할 기회를 여러 차례 놓친 것으로 드러났다.
피해자 A 씨는 경찰에 “가해자인 친구 김모 씨(20) 등 2명에게 4차례 폭행당했다”고 진술했으며, A 씨 가족은 A 씨가 김 씨 등에게 감금돼 있을 당시 가출 신고도 했던 사실이 밝혀졌다.
경찰은 피해자의 상해를 입증할 유력한 증거인 상해진단서와 상처를 입은 사진까지 확보해놓고서도 ‘증거 불충분’을 이유로 수사를 종결했다. 추가 증거를 확보하려는 보강수사도 하지 않았다. 올 1월 가해자 김 씨 등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놓고도 3개월이 지난 4월에야 A 씨에게 대질조사 출석을 요구하는 등 곳곳에서 A 씨를 구할 ‘골든타임’을 놓쳤다.
서울경찰청은 17일 “A 씨 상해 고소 사건을 맡은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범죄 일시 및 장소가 특정되지 않아 증거 불충분으로 검찰에 송치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경찰은 A 씨 가족에게서 2번이나 가출 신고를 받은 데다, 피해자 진술과 상해진단서를 모두 확보한 상태였다. 폭행 증거와 진술을 확보하고도 수사를 종결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종결 과정이 적절했는지 감찰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가족들이 A 씨의 폭행 피해를 처음 알게 된 건 지난해 11월 4일이다. 당시 서울에 머물던 A 씨는 김 씨 등과 한 집에 머물렀는데, 한겨울 반팔 차림으로 거리를 떠돌다 서초경찰서 양재파출소로 임의 동행했다고 한다.
파출소 관계자는 김 씨 등이 “A 씨를 데려 가겠다”고 했지만, 몸에 폭행 흔적들이 보여 A 씨의 아버지에게 연락을 취했다. 이후 A 씨를 대구 집으로 데려온 가족들은 이틀 뒤 김 씨 등을 대구 달성경찰서에 상해죄로 고소했다.
● 3개월 지나서야 대질수사 요청
그런데 영등포서는 1월 24일 피의자 조사를 진행한 뒤 무슨 이유에서인지 3개월이 지나도록 A 씨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김 씨 등은 경찰 조사에서 “폭행한 적 없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다고 한다. 그런데 경찰은 사건 일시와 장소 등을 구체적으로 파악할 대질조사 일정조차 잡지 않았다. 폐쇄회로(CC)TV 확보 등 보강수사도 하지 않았고,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도 없었다.
경찰이 뒤늦게 4월 17일에야 A 씨에게 대질조사 출석을 요구했다. 김 씨 등은 이 직전인 3월 31일 A 씨가 머무는 대구로 찾아가 강제로 서울의 한 오피스텔에 데려가 감금한 상태였다. A 씨는 17일 경찰과 통화에서 “지방에 있다”고 답변을 피했으며, 5월 3일 두 번째 통화에서는 “고소를 취하 한다”고 했다.
하지만 A 씨는 감금된 상태에서 김 씨 등이 시키는 대로 답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4월 30일 A 씨 가족은 달성서에 또 다시 가출 신고를 했지만, 경찰은 A 씨의 답변에 의존해 위치추적 등을 진행하지 않았다.
A 씨 상해 고소 사건을 맡은 영등포서는 보강 수사 없이 지난달 27일 증거 불충분으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하지 않고 종결했다. 이달 1일 김 씨 등이 거처를 옮긴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 앞에선 제대고 걷지도 못해 가해자들이 부축해 집에 들어가는 A 씨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후 집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A 씨는 13일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형법상 살인죄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김 씨 등에게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보복범죄 살인’ 혐의로 변경을 검토하고 있다. 형법상 살인죄의 법정 최고형은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특가법상 보복범죄 가중처벌에 의한 살인은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 유기징역’으로 가중 처벌할 수 있다.
박종민 기자 blick@donga.com
김태성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