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리 에세이스트
6년 전 겨울, 이사 온 집을 정리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익숙한 노래가 들려왔다. 물결처럼 잔잔한 도입부가 나를 어린 시절 피아노 학원으로 데려다 주었다. 어딘지 모르게 애틋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아드린느’라는 이름과 한 사람을 위한 ‘발라드’라는 제목이 주는 서정적인 정서 때문일까. 나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울릴 때마다 러브레터를 엿보는 사람처럼 두근거렸다.
장애를 가진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에게 바치는 노래라더라, 어느 아버지가 사랑하는 딸을 위해 만든 노래라더라, 떠도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몰라도 이 노래에는 사랑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집 가까이에서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가 들려왔다. 늘 같은 시간에 꼭 그 노래만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연주를 듣는 일이 어쩐지 소중해져, 나는 6년 동안 조용한 관객으로 지냈다. 나의 한낮을 특별하게 만들어준 작은 비밀이었다.
한눈에 피아노와 어울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나는 이웃들을 살피며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했다. 단 하나의 노래를 매일 같은 시간에 연주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 걸까. 세상에는 우리가 모르는 사람이, 모르는 이야기가 너무나 많다.
언제부턴가 나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를 연주하는 이웃을 ‘아드린느’라고 불렀다. 발라드는 먼 옛날 음유시인들이 노래하던 시에서 유래되었다지. 유려하진 않지만 서툴러도 꾸준하게 사랑의 노래를 연주해 온 아드린느에게. 오랜 시간 그의 연주를 감상했던 조용한 관객이, 발라드 같은 글을 써 보낸다. 친애하는 아드린느 씨, 서정과 낭만과 마음이 깃든 당신의 연주가 나에겐 매일의 시였습니다.
고수리 에세이스트